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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 Jul 09. 2020

난임, 그 긴 터널에서

교환일기 쓰기 : Y님에게

7월에는 글쓰기 모임 '미작'에서 교환일기를 쓰고 있어요. 

편지라고 생각하고 쓰니까 속 이야기가 술술 나와서 재밌더라고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네요. 



우리의 인연이 벌써 10개월이 되었어요. 독서모임의 문을 두드렸을 때는 몸도 마음도 참 힘든 시기였는데... 이제는 편안한 마음으로 서로의 일상을 응원하고 있네요.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의견을 나누는 든든한 친구가 되었어요. 


처음 독서모임에 참석했을 때는 그저 무기력하게 시간만 보내던 때였어요. 아니, ‘그저 무기력하다’는 말은 취소할게요. 온 신경을 임신에만 쏟고 있었던 때니까 다른 것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는 게 맞는 말이겠네요. 외출을 하면 안 되는 시기였는데 너무 답답한 나머지 말 그대로 뛰쳐나갔던 거예요. 나이는 많지, 결혼을 한지도 2년이 지났지.. 주변에서 조언이랍시고 임신에 대해 하는 말들이 모두 비수가 되어 꽂히던 시기였죠. 놀랍게도 만나는 사람들마다 약속한 듯이 ‘좋은 소식’에 대해 묻고 ‘카더라’라는 정보를 주었어요. 처음에는 나를 위해서 하는 말이겠지.. 싶어서 작은 조언도 유심히 듣고 해 보려고 노력했어요. 


한약을 먹어야 한다, 운동을 해야 한다,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 잠을 잘 자야 한다, 콩주머니로 배를 따뜻하게 했더니 임심이 되었는데 그걸 주겠다, 아는 사람이 어떤 인형을 갖고 있었더니 임신이 됐다더라, 마음을 편하게 먹어야 된다,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아라, 하고 싶은 일을 해라, 좋은 의사 선생님을 찾아 좋은 병원에 가야 한다, 병원에 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부부가 노력하는 거다, 아직 그렇게 절실하지는 않은 거 아니냐, 아직 큰 노력을 하지 않아서 안 생기는 거다, 시험관 12차에 된 사람도 있으니 힘내라... 


‘나 아는 사람이’로 시작하는 그 말들은 신기하게도 모두 달랐어요. 100명을 만나서 100개의 처방전을 받은 저는 그 처방전 중에 어떤 것을 따라야 할지 몰라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지요. 할 수도 없고 하지 않을 수도 없어서 발만 동동 구르는 날이 지루하게 이어졌어요. 알려 준 방법대로 실천하지 않으면 왠지 노력하지 않는 것 같아서, 혹시 모르니까 한 번 해 봐야 하나 싶다가도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더라고요. 대체 어떻게 해야 임신을 할 수 있는 걸까. 대체 어떤 노력을 해야 되는 일일까. 아이를 가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대체 어떻게 임신에 신경 쓰지 않고 편해질 수 있는 걸까. 마음이 편해지기는커녕 점점 더 깊은 늪으로 빠져 들었어요.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가 아이 이야기가 나오면 평온한 표정을 지었지만 실은 화난 고양이처럼 온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아무도 들을 수 없는 화를 냈어요.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점점 사람들을 피하게 되더라고요. 특히 나를 ‘임신해야 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피하고 싶었어요. 게다가 외출할 때면 왜 그렇게 아이들만 눈에 띄는지, 임신한 분들은 또 왜 그렇게 많은지.. 듣기 싫은 것, 보기 힘든 것들이 많아지면서 집에 처박히게 됐죠. ‘카더라’로 가득 찬 정보의 바다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알 수 없는 대상에게 화를 내다가 결국 나에게 화를 내고.. 


그 시기에는 좋아하던 책도 읽히지 않더라고요. 난임에 관한 책을 뒤져보다가 나를 모르는 사람들과 만나서 책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죠. 첫날 어떻게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전 꽤 긴장하고 있었어요. 모두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고, 내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으며, 책 이야기만 나누면 된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고 더듬더듬 말했던 기억이 나요. 그 당시 주제가 ‘자기 계발’이어서 처음에는 깊이 공감하지 못했어요. 첫 모임 책이 ‘습관홈트’였는데 저는 자기 계발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믿었고, 습관을 만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지금 이대로도 좋은데.. 그저 아이만 가지면 소원이 없겠다.. 뭐 그런 생각들을 했던 것 같아요.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Y님이 제게 얼굴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셨죠. 전에 한번 이야기한 적 있는데, 처음 Y님이 그 말을 했을 때 좀 억지스럽다고 생각했어요. 몸이 안 좋았다가 시간이 지나 회복했으니 혈색이 좋아지는 건 당연한 일인데 모임에 나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뭔가 좋아진 것 같다고 해서요. 저에게뿐만 아니라 신입이 들어오고 한 달쯤 지나면 얼굴이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인사처럼 하시더라고요. 제가 볼 땐 처음과 별로 달라진 게 없는데 말이에요. 그래서 ‘얼굴 좋아 보인다’는 그 말은 Y님이 신입을 대하는 어떤 매뉴얼 같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학원에 신입생이 들어오면 좀 더 챙겨주고 별거 아닌 것도 격하게 칭찬해 주면서 빨리 적응할 있도록 관심을 가지거든요. 


그런데 Y님과 자주 만나고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면서 알게 되었어요. 제가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작은 변화를 Y님은 아주 빨리 발견한다는 것을요. 멤버 한 사람 한 사람을 유심히 관찰하다가 긍정적인 변화를 보면 진심으로 기뻐하며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거였어요. 나도 몰랐던 변화를 눈치채고 아주 좋은 일이 생긴 것처럼 표현하는 Y님 덕분에 저, 어두컴컴한 동굴에서 나와 둥글게 말고 있던 몸을 펴고 스트레칭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Y님은 사람들의 밝은 에너지, 각자에게 잠자고 있던 무언가를 끄집어내는 능력이 있어요. 앞장서서 기획하고 직접 진행해 나가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던 제가 ‘매일 글쓰기’를 모집하고 운영할 수 있었던 것만 봐도 그래요. 너무 사소해서 물어봐도 되나.. 싶은 것도 Y님과 상의하면 해결되었어요. 100일간의 모임을 잘 진행하고 마무리할 수 있었던 건 Y님이 늘 곁에서 든든하게 용기를 주고, 변함없이 제 능력을 믿고 격려해 준 덕분이에요. ‘리더’ 자리를 무서워했던 저에게는 굉장히 큰 발걸음이랍니다. 


나의 작은 변화를 알아채서 알려주고 늘 지지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삶의 큰 축복인 것 같아요. 저의 축복이 되어 주셔서 감사해요. 저도 Y님에게 축복이 되면 좋겠어요. 우리 지금처럼 꾸준히 함께 성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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