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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 Jul 11. 2020

이젠 회피하지 않으려고요

교환일기 쓰기 : 멤버들에게

글쓰기 모임 '미작'에서 7월 한 달 동안 쓰고 있는 교환일기의 두 번째 글입니다. 




안녕하세요. 희망입니다. 지난주에 Y님께 쓸 때와는 다른 기분이 드네요. 한 사람에게 쓰는 글과 다수에게 쓰는 글을 대하는 제 마음가짐이 다른 것 같아요. 첫 주에는 저도 모르게 술술 썼는데 이번에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머뭇거리게 되고 선뜻 써지지가 않네요. 지난주와 같은 형식의 글인데 색다른 느낌이 들어서 신선하고 재밌습니다. 


처음 미작을 시작할 때는 딱 한 가지 ‘글을 잘 쓰고 싶다!’라는 마음뿐이었어요. 오로지 글을 잘 쓰기 위해 시작했는데.. 매주 저를 둘러싸고 있는 견고한 벽을 만나게 됩니다. 특히 5,6월에는 매주 힘들었어요. 잘 모르는 사회 문제를 담은 소설을 읽고 ‘내 생각’을 담아야 하는 글을 써야 해서 자주 도망치고 싶었답니다. 저는 제 감정이나 생각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의견이 없는 사람이었거든요. 참 안타까운 일인데요, 제 자신에 대해 너무 몰랐어요.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를 몰라서 그저 세상이 하라는 대로, 친구들이 하자는 대로 따랐어요.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불만이 쌓였죠. ‘도저히 못 참겠다!’ 싶은, 팍! 하고 터지는 순간이 오면... 그 관계에서 도망쳤어요. 


‘나의 이런 모습을 저 사람들이 알면 분명 나를 싫어할 거야.’라는 생각에 가면을 쓰고 좋은 모습만 보이다가 조금이라도 갈등이 생길 것 같으면 또 도망쳤어요. 힘겹게 포장한 모습으로 지내면서 상대에게 맞추다 보면 반드시 힘들어지는 때가 오거든요. 블로그 이웃분이 에니어그램 검사를 해준 적이 있는데요, 상담 과정에서 이런 질문이 있었어요. 


‘갈등 상황에 놓이는 습관적인 요인은 무엇인가? 긍정적 해결책은?’ 


‘갈등을 회피해서 갈등 상황에 놓이지 않는다.’라고 답한 뒤에 긍정적인 해결책으로 제시한 게 뭐였냐면요... ‘갈등을 피한다. 속으로는 다르게 생각해도 상대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처럼 말한다.’였어요. 상담을 하다가 한참을 깔깔거리며 웃었어요. 갈등 상황에 놓이는 요인이 ‘갈등 회피’인데 긍정적인 해결책이 ‘갈등을 피한다’ 라니요. 피하는데 아주 도가 튼 거죠. 다시 생각해도 재밌어요. 


미작(글쓰기 모임)에 참여하면서도 자주 도망가고 싶었어요. 못난 글을 썼을 때도 책을 잘 이해하지 못했을 때도 내 생각이 무엇인지 모를 때도.. 도망쳐야겠다, 더 이상 관계를 진전시키지 말아야겠다, 내 깊은 곳에 있는 부족하고 못난 부분까지 다 알게 되면 어쩌나.. 싶어서 뒷걸음질 쳤어요. 하지만 저, 기특하게도 매주 용기를 내어 참여한 덕분에 결코 깨지지 않을 것 같았던 저만의 벽을 조금씩 허물고 있는 것 같아요. 


엄격한 잣대로 보이지 않는 빨간 줄을 잔뜩 그어 제출한 글도 먼저 장점을 꼭 이야기해 주시고 생각지도 못했던 제 글의 매력을 잔뜩 알려주셔서 자주 감동받아요. 처음에는 칭찬을 들어도 ‘진짜인가?’ 의심하면서 믿지 못했는데 자꾸자꾸 들으니까 받아들이게 됐어요.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서 횡설수설하는 어지러운 글도 꼼꼼히 읽고 조언을 해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답니다. 


하지만 제 글에 대한 피드백보다 더 좋은 건요, 여러분의 진솔한 글이에요. 매주 개성이 묻어나는 매력적인 글들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가족이나 남편이 아닌 타인이 궁금해졌어요. 한 사람을 깊이 알아가는 것이 이렇게 즐겁고 설레는 일이라는 것을 정말 오랜만에 느껴요. 다음에는 어떤 글을 보여주실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까 기대가 돼요. 


또 하나, 미작(글쓰기 모임)을 하기 전까지는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만 마음이 편했어요. 의견이 다르면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서 듣고만 있거나 얼른 대화 주제를 바꾸곤 했죠. 그런데 미작에서는 같은 의견이든 다른 의견이든 다 좋아요. 같으면 같아서 반갑고, 다르면 왜 다른지,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지면서 흥미가 생겨요. 게다가 의견이 다른데도 마음 상하지 않고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해요. 그래서인지 저도 조금씩 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그저 글을 잘 쓰고 싶어서 모임을 시작했는데 삶을 배워요. 내면을 살피며 나를 막고 있는 벽을 허물고, 여러분을 통해 몰랐던 세상을 만나요. 그렇게 차츰 내 안에 머물러 있던 관심을 밖으로 넓혀 나갈 수 있겠죠. 늘 긍정적인 자극을 주고 배움의 즐거움을 주는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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