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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 Jul 24. 2020

나의 도끼 J님에게

교환일기 쓰기

J님 안녕하세요. 희망입니다.


1월부터 함께 하면서 벌써 30여 편의 글을 썼더라고요.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네요. 미작(글쓰기 모임)을 시작하면서 ‘어떤 사람들과 함께 하게 될까..’ 궁금하고 설레었어요. 첫 달부터 함께 하게 되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답니다.


조용조용 차분하게 말씀하시던 첫날이 생각나요. ‘외출한 것만으로도 너무 좋다’ 던 말씀처럼 긴장하면서도 설레는 듯한 모습이 사진처럼 그려집니다. 처음 몇 편의 글은 첫날의 J님처럼 낯을 가리는 듯싶더니, 어느 순간 조금씩 민낯을 드러내는 글들이 참 좋았어요. J님의 글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에 흠뻑 빠졌답니다. 개인적인 글은 써 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에 제가 화들짝 놀랐던 거 기억나세요? 이렇게 아름답고 반짝이는 글들을 혼자서만 간직하고 계셨다니요.. 첫 번째 독자가 되어 J님의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매주 미작이 기다려졌어요.


J님의 글처럼 부드럽고 완성도 높은 글을 쓰고 싶어서 열심히 배우려고 노력했답니다. 합평 때 하시는 말을 한마디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모두 적었어요. 마무리의 신선함, 문단의 배치, 비유의 활용 등, 단순하고 심심했던 제 글을 풍성하게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배웠어요.


자기 이야기를 솔직히 쓰는 것만큼이나 남의 글을 잘 읽고 솔직히 표현하는 것도 공부다.

글쓰기의 최전선 p.125


J님의 합평에는 순서가 있더라고요. 항상 글에서 느낀 좋은 점을 먼저 이야기한 뒤에 궁금한 점이나 아쉬운 점을 말했어요. 제가 봐도 두서없는 글을 제출해서 멤버들의 피드백이 하나도 궁금하지 않고 쥐구멍에 숨고만 싶었던 날에도 꼭 좋은 점을 먼저 말해 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요. 칭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쉬운 점이나 개선해야 할 점, 궁금한 점, 동의하지 않아서 의아한 부분도 어찌나 예쁘게 말씀하시는지 활짝 열린 마음을 가지고 귀를 기울이게 되더라고요. J님의 합평을 관찰하고 따라 하면서 저도 조금 더 예쁘게 ‘다른’ 의견을 말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는 것 같아요.


미작 초반에 저는 ‘29살 호주 여행기’를 정리해서 제출했었죠. ‘과거의 나는 모두 부끄럽게만 여겨져서 즐거운 여행기인데도 보고 싶지 않았다’라고 하면서 ‘부끄럽다’는 표현만 잔뜩 써서 냈던 글이 있었는데요. 그때 J님이 ‘왜 부끄러운지, 부끄러운 게 아니라 다른 감정은 아닌지’ 한번 생각해보라고 하셨답니다. 그 말을 듣고 ‘과거의 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진짜 감정을 파헤치는 시간을 가진 뒤 글을 고쳐서 제출했는데요, 모든 멤버들에게 호평을 받았던 기억이 나요. 그때가 시작인 것 같아요. '부끄러움, 불편함‘등 한 단어로 뭉뚱그려서 처박아두었던 감정들을 하나하나씩 풀어서 대면하기 시작한 것이요.


어떤 느낌, 어떤 감정에 사로잡혔을 때 그것을 당연시하는 게 아니라 왜 그런 기분을 느꼈는지 더 깊고 진지하게 파고드는 작업, 그게 문제의식이다. 우선은 나를 향해 ‘왜’라고 질문하는 것 말이다.

글쓰기의 최전선 p.162


특히 제 안에 있는 견고한 벽에 조금씩 금을 내기 시작하던 때에 들었던 J님의 합평은 소중한 도끼가 되었답니다. 부드럽지만 생각을 깨뜨리는 질문과 조언으로 모임이 끝난 뒤에도 한참을 생각하게 만들었거든요. 덕분에 외면해 왔던, 깊이 숨겨 두었던 다양한 감정들과 만날 수 있었어요. 희미한 이미지로 나를 괴롭히던 것들과 대면하면서 힘들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어요. 사실 아직도 어디에서 시작된 감정인지 모르는 것들이 더 많아요. 하지만 거대한 덩어리 -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느껴지던 막연한 두려움들을 마주하며 과거의 나와 이야기를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참 기쁜 일입니다. J님의 따뜻하면서도 세심한 말들이 없었더라면 아마 더 오랫동안 마음 한구석에 처박혀 있었을 거예요.


상대방을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는 사람,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사람과 깊은 교감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이다.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p.146


매주 글을 쓰면서 삶을 바꾸는 글쓰기의 힘을 느끼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 이 멤버들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깊이 나 자신을 돌아보고 변화할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어떤 일이든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은 참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견고한 벽을 허물고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우리 내일도 함께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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