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동하기보다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그럴듯한 아이디어인 것 같아도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말도 안 되는 망상이라고 결론 내릴 때가 많다. 생각의 끝은 대부분 포기였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무시하고 주어진 것에만 정성을 쏟았다. 늘 안전한 곳 - 실은 익숙한 곳 - 으로만 조심조심 다니면서 자주 하게 된 말은 ‘귀찮다’이다.
귀찮다 : 마음에 들지 아니하고 괴롭거나 성가시다.
1. 새로운 곳에서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출퇴근하기에 교통이 너무 안 좋아. 귀찮아.
지금 하고 있는 수업도 충분히 재밌고 보람 있는데 뭘. 옮기기 귀찮아.
2. 특정 주제로 꾸준히 글을 써보라는 의견을 들었을 때,
그걸 언제 다 정리해. 귀찮아.
3. 공모전에 제출할 독후감을 쓰게 되었을 때,
내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쓰고 싶은데 독후감이라니.. 귀찮아.
이러한 반응은 나의 ‘귀찮아하는 태도’ 때문이라고 여겨왔는데 최근 ‘귀찮다’라는 말 뒤에 숨어 있는 진짜 마음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두려움’이다.
두렵다 : 어떤 대상을 무서워하여 마음이 불안하다.
완벽하게 할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 지금처럼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 좋은 글을 쓰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 완성하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 도전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거창한 무언가를 이뤄내야 한다는 두려움.
숨어 있던 진짜 얼굴 ‘두려움’을 인지하고 마주 보기 시작하자 ‘행동’의 빈도가 높아졌다. 귀찮다고 덮어버릴 때에 비해 좀 더 적극적으로 나 자신을 설득하고 다독여 줄 수 있게 되었다. 머뭇거리거나 포기하는 이유가 어떤 두려움 때문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그 원인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다 보면 산처럼 거대해 보였던 ‘두려움’이 작아진다. 물론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결코 넘을 수 없을 거라고 믿었던 거대한 산이,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낮은 언덕임을 깨닫게 되는 느낌이다.
그때부터 낮은 언덕을 무사히 넘기 위해 각종 전략을 짠다. 완벽하게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완벽이란 내가 만든 나만의 틀일 뿐이라는 것’을 되뇌고, 거창한 계획을 세워놓고 스스로를 다그칠 때는 실패하기 어려운 아주 작은 목표를 세우고 자주 성공하는 기분을 느낀다. ‘지금은 이걸 할 기분이 아니야’라는 마음이 들면 ‘기분이 어떻든, 행동을 한다(시작의 기술 中)’라는 문구를 떠올리며 일단 움직인다.
우리는 두려움에 벗어날 수 없다. 두려움을 차라리 멋진 모험을 함께 하는 동료로 삼는 편이 낫다. 매일 모험을 하라. 조그만 시도든 대담한 시도든 그것을 해내기만 하면 가슴이 벅차오를 것이다. - 수전 제퍼스 p.215 아티스트 웨이
나는 겁이 많지만 뭐든 잘 하고 싶어 하며,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각종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귀찮다’는 포장지를 벗겨내고 두려움을 마주하다 보면 자주 초라해진다. 나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의 가치는 무엇일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들이 또 다른 두려움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두려움이라는 녀석에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지 않고 매일 작은 성공을 하면서, 기분과 상관없이 행동하면서 두려움을 동료 삼아 유연하게 사는 법을 배워나갈 것이다.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