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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 Sep 04. 2020

글쓰기 효과

INFJ 도어 슬램

어렸을 때부터 좁고 깊은 관계를 선호했다. 1:1 관계에서의 나와 '다수 : 나'에서의 내 모습은 많이 다르다. 최근 MBTI 검사가 유행해서 인터넷에 떠도는 무료 검사를 했는데 몇 년 전과 같이 INFJ가 나왔다.


INFJ (선의의 옹호자, 예언자 유형)

인내심이 많고 통찰력과 직관력이 뛰어나며 양심이 바르고 화합을 추구한다. 창의력이 뛰어나며, 강한 직관력으로 말없이 타인에게 영향력을 끼친다. 독창성과 내적 독립심이 강하며, 확고한 신념과 열정으로 자신의 영감을 구현시켜 나가는 정신적 지도자들이 많다. 한 곳에 몰두하는 경향으로 목적 달성에 필요한 주변적인 조건들을 경시하기 쉽고, 자기 안의 갈등이 많고 복합하다. 이들을 풍부한 내적인 생활을 소유하고 있다. (출처 : 나무 위키)


가벼운 성격검사라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방대하고 다양한 자료가 있어서 놀랐다. ‘맞아, 맞아’를 연발하면서 읽게 되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도어 슬램’


도어 슬램(Door Slam)

문을 쾅 닫고 나가듯이 관계를 단절해 버리는 것, 오래된 대상에게 도어 슬램 하는 경우 감정적으로 완전히 차단하고, 인생에서 배제한다. 절교와의 차이점은, 도어 슬램의 경우 연락도 주고받을 수 있고, 모임에서는 회식자리까지도 같이 갈 수 있다는 점이다. 출처 http://naver.me/xhOghC0R 


나는 대부분의 관계에서 좋게 좋게 지내는 편이다. 불편해도 표현하지 못하고 속으로 생각한다.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며 감정을 푸는 것도 아니라서 혼자 고민하고 생각을 정리한다. 계속 마음을 짓누를 때는 빈 종이를 친구 삼아 모든 것을 쏟아내고 종이와 함께 어지러운 감정을 버린다.  


불편함을 느끼는 지점은 친하다는 이유로 선을 넘을 때다. 개인적으로 만날 때는 그러지 않다가 다수가 모인 자리에서 나에게만 함부로 대하는 것 같을 때 속상하다. 친하면 친할수록 더 소중히,  더 친절하게 대하고 싶은데 내가 너무 살갑게 대해서 그런지 어느 순간 선을 넘어버리는 사람이 있다. '우린 친하니까, 쟤는 완전히 내편이니까 그래도 돼'의 느낌. 그 때 말하면 되는데 타이밍을 놓칠 때가 많다. 그 순간에는 나도 왜 기분이 나빠지는지 모르는 거다. '솔직하게 말하면 상대가 상처를 받을까 봐, 관계가 어긋날까 봐' 넘아갈 때도 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직장 동료 중에 웃으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참 부러웠다. 그런데.. 배우려고 해도 잘 안 되더라.


몇 년 전에 한 지인과의 관계가 끊길 뻔한 적이 있는데, 그때 그녀가 말했다.


"불만이 있으면 말을 해. 그런 거 말한다고 우리 사이가 나빠지지 않아. 말을 하지 않으니 무엇 때문에 이러는지 도무지 모르겠어."


사실 그 당시에는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소한 것들이 쌓여 마음의 문을 거의 닫아 버리려던 때다. 무엇 때문에 마음이 식어버렸는지는 기억나지 않고 그저 만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관계를 그 지경으로 만든 건 선을 넘은 상대방이 아니라 침묵하고 있었던 나였다는 것을. '선'이라는 것은 개인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관계의 거리를 조절해 나가야 하는데 내가 말하지 않으니 괜찮은 줄 알고 더 다가온 게 아닐까.


그 일을 계기로 지인과는 더 진한 관계가 되었고, 나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불편한 감정을 표현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한 번에 잘 되지는 않았다. 직접 말하기 힘들어서 카톡이나 문자를 이용하기도 하고, 오랫동안 상처가 쌓인 경우에는 몇 개월 동안 연락을 끊었다가 용기를 내어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 대부분은 "그래? 알았어. 그런 기분이었구나. 미안해. 그때 말하지 그랬어."라며 나를 이해해주었다.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관계가 좋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오해가 생기고 틀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모든 사람과의 관계가 좋아진 것은 아니다. 마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대화가 겉돈다는 느낌을 받고 결국 멀어진 경우도 있다. 인연이 아닌가 보다 하고 흘러가는 대로 두었다.


연습이 계속될수록 '아, 이걸 말하지 않으면 도어 슬램의 씨앗이 되겠구나..'라는 직감이 생겼다. '이걸로 기분이 상한다고?'라고 느낄 정도로 사소한 일도 단절의 씨앗이 될 수 있다. 그때는 지나치지 않고 꼭 이야기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도어 슬램의 성향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불편함을 느끼는 지점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거다.


그런데.. 진지하지 않게, 좀 가볍게 이야기하고 싶다. 그러려면 나에 대해, 내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 잘 아는 수밖에 없다. 불편한 감정이 드는 바로 그 순간에 이유를 정확하게 안다면,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가볍게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감정이란 시간이 지날수록 부풀려지기 마련이니까.


최근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관계에서 불편함을 느끼면 노트북을 열고, 불쑥 솟아오르는 감정들을 마구 풀어놓는 것이다. 신나게 쓰고 나면 날뛰던 마음이 가라앉는다. 얼마 전에 대화를 하다가 기분이 상했던 일이 있다. 그 당시에는 왜 기분이 나빠지는지 몰랐다가 혼자 글을 쓰면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사건이 일어나고 며칠이 지났지만 용기를 내어 마음을 털어놓았다. 고심해서 말을 건넸고 다행히 상대방도 공감하고 이해해줘서 고마웠다.  


글을 쓰다 보면 유독 한 가지 말에 ‘과하게 반응' 하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뭐야, 기분 나빠’에서 그치지 않고 빈 화면을 친구 삼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질투심, 두려움, 원망, 해소되지 않은 묵은 감정 등을 만나게 된다. 상대방의 말 때문이 아니라 내 안의 무언가 때문에 기분이 나빠졌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면, 같은 말을 듣더라도 마음 상하는 일이 차츰 줄어든다.  


어떤 글을 쓰든 나를 만나게 된다. 지금의 나와 과거의 나, 가끔은 미래의 나까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이 궁금해지고 이해하고 싶어 지는 것처럼, 요즘 나는 내가 궁금하다. 어떨 때 기분이 좋은지, 어떨 때 기분이 나빠지는지, 왜 특정한 말을 들으면 평소와 달리 화가 치밀어 오르는지.


나를 알아가는 가장 효과적이고 빠른 방법은 글쓰기다.

그리고 나는 지금, 글쓰기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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