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범’이라는 신조어의 주인공인 ‘이날치 밴드’는 전통적인 판소리에 현대적인 팝을 조화시킨 곡들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룹 이름은 조선 후기 8명창 중 한 명인 ‘이날치’에서 따왔다고 한다.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중독성 강한 곡들이 많다. 현대 음악인 것 같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발성과 리듬이 전통 판소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날치 밴드와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대한민국 현대무용 그룹)가 협업한 한국관광공사의 홍보 영상은 수억 뷰를 기록할 만큼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흥겨운 판소리와 독특한 안무, 화려한 의상이 모든 감각을 붙들어 놓는다.
실력을 논할 수 없을 정도로 힘 있는 소리를 들려주는 이날치 멤버들. 그들의 전통 판소리를 들어보고 싶어서 영상을 찾아봤는데... 지루하다. 이날치에서 만났던 매력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날치의 음악은 판소리이긴 한데 내가 알던 판소리와 다르다. "21세기의 판소리를 담아내는 실험"이라는 이날치. 정말 그렇다.
2.
2019년 국민 독서 실태 조사 (문화체육관광부)
한 달에 5권 이상 책을 구입해서 읽다가 휴직을 하면서 도서관을 이용했다. 독서 플랫폼을 이용하여 이북을 읽기도 하지만 종이책에 비해 집중력이 떨어져서 종이책을 선호한다. 한 달에 평균 7~8권의 책을 읽기 때문에 모든 책을 구입하는 것은 부담이다. 다시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인터넷 서점을 이용한다.
책값 다이어트를 하던 내가 흔쾌히 지갑을 열게 된 프로그램은 “One month one book"이다. 매달 한 권씩 ‘비밀책’을 보내주는 프로젝트다. 운영자의 책을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호기심에 주문했다. 어떤 책이 올지, 언제 도착할지 모른다는 것이 소소한 설렘을 주었다. 첫 번째 책을 흥미롭게 읽은 뒤 매달 신청했다. 할인 없이 택배비까지 내지만 매달 선물을 받는 기분이다. 정성스러운 책 소개 글, 직접 만든 스티커와 엽서, 평소 접해보지 못했던 분야의 신선한 책.. 좁았던 시야가 넓어지고, 책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어 즐겁다.
2020년 7월 잠실에 오픈한 ‘사적인 서점’에서는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책 처방’을 운영한다. 책 처방사와 일대일 대화를 나눈 후 맞춤형 책을 추천받는 프로그램이다. ‘사적인 서점이지만 공공연하게’라는 책을 통해 알게 된 서점인데 책을 읽을 당시에는 ‘책 처방’ 프로그램이 중단된 상태였다. 잠실에 오픈했다는 소식을 듣고 꽤 기뻤다. 임대 기간 2년을 간신히 채우고 문을 닫는 독립서점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서글펐는데 독특한 프로그램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니 반갑고 고맙다.
최근 놀러 가는 독립 서점에는 취향에 맞는 책들이 가득하다. 느긋하게 구석구석을 둘러보다가 책방지기와 대화를 나누며 책을 추천받아 구입한다. 인터넷 서점에서는 느끼기 힘든 공감, 다정한 추천, 책을 통해 교류한다는 느낌으로 참 행복하다. 인터넷에서 책 쇼핑을 할 때 읽었던 책들은 베스트셀러인 경우가 많다. 스스로 골랐다고 생각했지만 화면에 자주 노출되는 책들, 신간인데도 광고나 후기가 많은 책들을 읽게 된다. 내가 골랐지만 실은 광고가 골라준 책들.
3.
이날치의 음악은 판소리일까 아닐까. 논란의 여지없이 분명 우리의 판소리지만 전통적인 판소리와는 다르다. 그들은 시대의 요구를 담아, 지루하게만 여겨지던 판소리를 지속 가능한 문화로 재생산해내고 있다.
독서라고 하면 종이책만 생각하던 시절은 멀고 먼 옛날이야기다. 전자책, 오디오북 등 책의 형태가 다양해졌고, 웹 기반 콘텐츠(웹 소설, 웹툰), 유튜브, 넷플릭스, 모바일 게임 등 책 이외의 즐길 거리가 넘쳐난다. 급변하는 매체 환경 속에서 서점도 ‘이날치’스러운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2015년 97개였던 독립서점은 2020년 551개로 증가했다. ‘서점은 책을 판매하는 곳’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책을 통한 만남’을 주선하는 곳도 함께 늘어나고 있다. 개인에 맞는 책 처방, 독서모임, 글쓰기, 작가 초청, 그림 그리기, 시 짓기, 동화책 만들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서점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이어지고 확장되어 독서가들이 새로운 즐거움을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특색 있는 서점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책을 기반으로 하는 문화’로 받아들이며 즐기기 시작한 나처럼.
좋은 작업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작품을 누가 얼마나 보는지도 중요하다.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 김보람 예술감독)
아무리 훌륭하고 유익한 문화라도 많은 사람들이 즐겨야 가치가 있다.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독립서점들이 각자의 매력을 찾아 다양한 문화를 생산하는 공간으로 성장하기를 희망하고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