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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 Dec 07. 2020

우리 집에 놀러 올래?

픽션입니다.

모자를 눌러쓰고 나가서 커피를 사 왔다. 일주일만의 외출이다. 요즘엔 커피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해서 하루에 3잔은 기본이다. 옷을 입는 게 귀찮아서 일주일 내내 배달을 시켜 먹었다. 한 개만 주문하면 배달비가 아까우니까 세잔 씩. 여름에는 아이스커피를 받자마자 얼음을 빼서 냉장실에 보관하면 저녁에도 먹을만하다. 하지만 애매하게 추운 요즘 같은 날씨에는 아침에 시킨 커피를 저녁에 먹기가 싫다. 향이 다 날아가버린 애매한 온도의 커피는 축 늘어진 나를 마시는 느낌이다.


블로그 댓글 알람이 울렸다. 자주 여행을 다니는 내가 집에 처박혀서 돈을 벌 수 있는 이유는 블로그 덕분이다. 체험단, 대가를 받고 쓰는 리뷰, 인생 상담. 세 가지 블로그를 운영한다. 소득이 가장 높은 곳은 대가를 받고 쓰는 리뷰 블로그다. 블로그를 최적화시켜놓고 6개월 반짝 리뷰를 쓰면 소득이 꽤 쏠쏠하다. 최적화시키는 데까지 오래 걸리기 때문에 평소에 2~3개의 블로그를 돌리면서 키우는 것도 필요하다. 가끔 원고 청탁을 받아 글을 쓰기도 한다. 사실 많이 바쁘다.


가장 애정하는 곳은 인생 상담소 ‘왔슈’다. 블로그 이름은 베프 희정이가 지어줬다. 엉뚱의 대명사인 그녀는 SF 소설을 쓴다. 우리는 지구에 우연히 들러 목적 없이 살다 가는 존재라면서 ‘왔슈’를 추천했다. 깔깔대며 비웃다가 ‘왔슈’로 정했다.


‘왔슈’는 잡다한 상담을 받는 곳이다. 처음엔 재미로 시작했는데 규모가 커지면서 꽤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내 답변이 좋고 도움이 되서라기보다 이야기할 사람이 없어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 글을 읽고 있노라면 참 삶의 모양은 다양하구나.. 실감하게 된다. 희정의 말대로 우리는 우연히 지구에 정착하게 된 것뿐인데 왜들 그렇게 의미를 찾으려고 아등바등인지.


댓글을 읽다 보면 가끔 상대의 실체가 궁금할 때가 있다. 글이라는 건 참 신기해서 글쓴이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시종일관 따뜻한 느낌인데 자꾸 자책하는 사람을 만나면 직접 얼굴을 맞대고 앉아 위로해주고 싶다. 하지만 거울을 보는 순간 ‘너나 잘해’라는 말이 목구멍에 걸린다. 세수를 해야 하는 순간이다.   


최근 흥미로운 사연은 엄마 아빠가 너무 잘해줘서 고민이라는 중학생 ‘밀키’의 글이다. 밀키는 ‘왔슈’가 만들어질 때부터 함께 한 찐왔슈인이다. 초등학생 때 만나서 올해 중학생이 되었다. 초등학생이 블로그에 댓글을? 처음엔 싱거운 어른이 사기를 치는 줄 알았는데 진짜 초등학생이었다. 밀키의 엄마가 독서기록장으로 블로그를 개설해주었다고 한다. 잘해줘서 고민이라니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혀를 차며 읽기 시작했다. 틀려도 직접 하고 싶은데 엄마 아빠가 자꾸 ‘정답’이라며 이상한 걸 들이민다는 거다. 직접 해보고 싶은데 도무지 기다려주지 않아서 무엇을 해도 재미가 없다며 투덜거렸다.


‘언니, 내가 재밌는 게 정답 아니에요? 엄마 아빠는 왜 자꾸 이해할 수 없는 걸 가지고 ‘정답, 정답’ 하는지 모르겠어요. 인생에 정답이 있기는 한가요?‘


그러게. 인생에 정답이 있을까. 잘 나가는 회사를 때려치우고 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를 걱정했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걱정하는 소리를 듣다 보니 길거리의 돌멩이도, 지나가는 바람도 나를 걱정했다. ‘너 괜찮아? 왜 그 좋은 곳을 그만두는 거야? 복을 제 발로 걷어차는구나.. 쯧쯧쯧...’ 바람도 혀를 차는구나. 신기한 경험이었다.


어떻게 하면 평생 여행을 하면서 살 수 있을까 궁리하다가 회사를 그만두고 발길이 닿는 대로 돌아다녔다. 결론은 프리랜서. 닥치는 대로 돈 되는 일을 알아보다가 2년 만에 정착한 것이 블로그다. 최소한의 생활비를 남기고 여행 경비를 모아 세 달에 한번 희정과 여행을 한다. 우연히 지구에 정착한 우리는 내키는 대로 유랑한다. 목적 따윈 없다. 그저 눈 앞에 펼쳐진 시공간을 누릴 뿐.


번듯한 직장, 세련된 옷차림, 사진 찍기 좋은 예쁜 공간, 넓은 아파트, 있어 보이는 사진. 벽돌을 찍어내듯 똑같은 모습을 목표로 사는 사람들은 정말 행복할까. ‘왔슈’를 통해 만나는 사람들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모래알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래알만큼 많은 고민을 떠안고 전전긍긍하며 산다. 내가 볼 때는 완벽한 환경인데 그 환경 때문에 못 살겠다는 사람도 많다. 과연 인간에게 옳고 그른 삶의 형태라는 게 있긴 할까.


외부와의 소통을 차단하고 SNS 세상에 빠져 지내는 3개월은 대부분 집에만 있다. 가끔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언니가 연락해서 답답하지 않냐고 묻는다. 답답하다니. 답답할 새가 없다. 우연히 같은 시대를 살게 된 ‘왔슈’인들의 이야기는 상상할 수 없는 진귀한 것들로 가득하다.


“언니, 몸은 집에 있지만 나는 매일 자유롭게 흘러 다녀.”


뭔 헛소리냐며 전화를 끊는 언니가 야속하다. 내가 왔슈인이라는 걸 알리 없는 언니에겐 미친 소리처럼 들리겠지. 3개월은 온라인 세상에서, 1개월은 낯선 여행지에서 유랑하는 내 삶이 너무나 마음에 든다.


‘밀키야, 네 말이 맞아. 인생에 정답 따윈 없어. 네가 재밌다면...’


주절주절 쓰다가 지우고 한 줄을 써서 등록을 눌렀다.  


“우리 집에 놀러 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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