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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 Dec 01. 2020

엄마의 사치재

엄마에게 비즈로 된 반짝이는 마스크 걸이를 선물했다. 얼마 전 첫째 조카 생일에 조카들에게 마스크 걸이를 사줬는 옆에 있던 엄마도 필요하다고 하셨다. 함께 외출한 날 싸구려 마스크 걸이를 발견하곤 바로 샀다.


대학을 졸업할 때 즈음, 그러니까 약 20년 전 우리는, 엄마와 나는 꼭 필요한 물건을 살 때도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제일 싼 물건을 골랐다. 고속버스터미널 지하상가에서 천 원짜리 옷가지를 고르던 일이 생생하다. 절망 속에서도 아주 조금씩 사정은 나아졌다. 생존을 위한 돈, 매달 갚는 빚을 제외하고는 박박 긁어모아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을 찾아 2년마다 이사를 다녔다. 10년쯤 지난 어느 날, 천 원짜리 옷이 쌓인 매장을 지나치면서 함께 웃던 순간이 기억난다. 싼 물건 대신 적당한 값의 물건을 사고, 배를 채우기 위한 음식보다는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3년 뒤부터는 월급 전부를 내가 관리했다. 갚을 돈이 잔뜩이었지만 엄마는 나를 해방시켜주었다. 동료들을 따라 백화점에 가서 순하고 좋다는 비싼 화장품을 사고 큰돈을 들여 장기 여행을 다녔다. 해가 갈수록 월급이 오르고 맘대로 쓸 수 있는 돈이 많아지면서 엄마에게도 사치재를 선물하기 시작했다. 15년 동안 일하면서 3년 정도는 버는 족족 다 썼고, 7년 차부터 저축을 하기 시작했다.  


적극적으로 소비하던 나와 달리 사정이 나아진 뒤에도 엄마는 아끼고 아꼈다. 특히 엄마 자신을 위한 소비는 전무했다. 뼛속까지 새겨진 가난의 흔적 때문이었을 테지. 지금도 딸들이 선물하지 않으면 엄마는 기본값을 넘어서는 물건을 사는 일이 거의 없다. 미혼일 때는 엄마와 자주 맛있는 것을 먹고, 쓸데없는 물건을 사 드리고 기회가 될 때마다 여행을 갔다. 그 기회라는 것이 자주 오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여행지에서 오감을 활짝 열고 누렸다. 싼 음식을 찾는 대신 멋진 노을이 보이는 레스토랑에서 비싼 저녁을 먹고 매일 투어를 했다.


엄마와 나는 끈끈한 전우애, 동지애 같은 것이 있다. 전쟁 같았던 인생의 한 시기를 온 힘을 합해 이겨냈다는 뿌듯함도 있다. 따스한 보호자이자 친구, 험난한 세상을 함께 이겨낸 동료. 그녀가 늙어가는 것이 보여서 슬프다. 코로나만 아니면 여행을 좋아하는 엄마와 함께 어디라도 다녀왔을 텐데.


비즈 마스크 걸이를 사면서 천 원짜리 옷더미를 뒤지던 우리가 생각났다. 코끝이 시큰해졌다. 더 이상 사치재가 아닌데, 그런 물건도 결코 직접 사는 일이 없는 엄마. 반짝이는 사치재 두 개를 엄마에게 건넸다. 두 눈을 반짝이며 탐내는 조카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탐 내지 마라. 이거 우리 엄마꺼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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