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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 Dec 22. 2020

어른이 되면

인간에 대한 예의

‘혜정’은 발달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13살에 장애인 수용시설에 보내지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혜정의 둘째 언니 ‘혜영’은 싱어송라이터로 영상 제작자로 살다가 서른한 살, 시설에 살던 동생 혜정을 데리고 나와 같이 살기로 한다. 18년 만에 함께 살게 된 자매의 일상 이야기. 혜정의 일상성과 평범성을 회복하여 동생의 인간성을 되찾고 싶어 하는 둘째 언니의 기록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으로 시작한 촬영이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차별을 당연시하는 사회’를 향해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우리 정말 이래도 되느냐’고 묻고 있다. 무겁고 힘겨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담백하고 깔끔하게 읽히는 문체 덕분에 심적 부담 없이 몰입할 수 있었다.


20대에 사회복지시설에서 봉사를 한 적이 있다. 장애가 있는 청소년들의 사회적응을 돕는 활동이었다. 식사 예절, 지하철을 타기 등등. ‘지하철 타기’를 연습하는 날 함께 외출했다. 선생님들이 표 사는 법, 표를 찍고 들어가는 법,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법 등 기본적인 것을 가르쳤다. 아이들이 사회 속에서도 혼자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시설에서 어느 정도의 교육이 끝나면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연결해준다고 들었다. 기억나는 회사는 소품을 만드는 곳. 그때 만났던 부모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늘 피곤해 보였다. 저렇게 지친 웃음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했던 미소. 아이가 시설에 갈 때는, 잠깐이지만 맘 놓고 푹 쉴 수 있다고 했던 한 부모의 말이 기억난다.


한 여자 아이가 유독 나를 좋아했다. 언제나 내 옆에 찰싹 붙어서 졸졸 따라다녔다. 아이는 감정 표현에 적극적이었는데 내 옆에 있으면 얌전하게 나를 따랐고, 떼어놓으려고 하면 크게 반응했다. 아이들과 대화할 때는 반드시 눈을 맞추고 그 사람에게만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때 알게 되었다. 나보다 좀 더 예민하고 반응이 큰 아이들.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가끔 장애인들을 볼 때면 그 아이가 생각난다. 그 아이는 잘 지낼까. 내가 만난 그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지하철을 타고 내리며 자신의 삶을 살고 있을까. 힐끔힐끔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그때보다 조금은 나아졌을까.  


참 신기한 것이 우리나라에 약 260만 명 정도의 장애인이 살고 있다는데 거리에서 장애인을 만나는 건 쉽지 않다. 서울 인구가 약 970만이니까 서울 인구의 1/4만큼이다. 장애인을 자주 만나면 그 지역에 장애인 시설이 있다는 거고, 장애인 시설이 있다는 것은 집값이 오르지 않아 살기 나쁜 동네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지나쳤던 일들이 이 책을 통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오래전 지하철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여자가 통화를 하고 있는데 장애인이 다가와서 주위를 맴돌았다. 통화를 하던 여자는 전화에 집중하는 척했지만 어쩔 줄 몰라하는 것 같았다. 다가가서 그에게 주위를 맴돌지 말라고 말했더니 다른 곳으로 갔다. 우리가 장애인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들의 행동이 예측 불가능하다고 여기기 때문인 것 같다. ‘왜 이 사람이 내 주위를 맴돌지?’ 그녀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그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며칠 전 길에서 장애인을 만났다. (장애인을 만났다고 인식하는 것 자체가 나에게, 비장애인에게 장애인은 특별한 존재라는 반증이겠지.) 그를 지나쳐 집으로 가는데 내 뒤로 그가 따라왔다. 긴장이 되어 자꾸 뒤를 힐끔거리게 되었다. 그 와중에 나는 왜 저 사람을 두려워할까..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그건 그가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돌발 행동은 비장애인도 한다. 장애인의 돌발행동으로 인해 일어나는 사건이나 안타까운 일들은 마음 아프지만 비장애인이 저지르는 사건도 많다. 장애인이어서, 장애인이 아니어서 일어나는 일이 아닌 것이다.


얼마 전 ‘편스토랑’이라는 프로그램에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고 있는 오윤아 씨가 출연했다.  

“아이를 데리고 나오니까 뭐라고 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분들이 잘못됐다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그만큼 안 나와서 이분들도 적응이 안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민이 같은 친구들을 만나면 당황하시는 거예요. 그런 걸 보면서 데리고 많이 나와야 되겠다고 생각해요.”


함께 해보지 않아서, 어울려 살아보지 않아서 만나면 당황하고 불편해하는 게 아닐까. 자주 만나고 부딪히며 살다 보면 모두가 똑같이 존엄한 존재라는 것을 좀 더 빨리, 편하게 인식하게 되지 않을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지 않는 세상에 익숙한 많은 사람들은 부지불식간에 친절한 차별주의자가 된다. 장애인을 대할 때 필요한 것은 배려와 호의, 친절한 태도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예의이다. p.164


애초부터 다른 존재라는 전제하에 배려하고 친절하게 대하려고 노력하기보다, 우리 모두가 ‘존엄한 존재’라는 가치를 바탕으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 그것의 첫걸음이 이 책을 비롯한 다양한 글, 영상 등이라고 생각한다. 브런치에 ‘성실한 베짱이’라는 필명을 쓰는 작가가 있다. 발달장애를 가진 찐이를 키우며 겪는 일들을 통해 가족의 일상을 들여다보게 된다. 다른 존재, 다른 일상이 아니라 그저 아이와 함께 하는 이야기. 자주 접하다 보니 별 다를 것 없는, 사람 사는 이야기로 느껴진다. 자주 접하면 뭐든 익숙해지고 친근해진다. 좀 더 많은 혜정이와 민이, 찐이가 거리로 나와 마음껏 활보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지금 장애인이 우리 옆에 없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들을 격리했기 때문입니다.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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