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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 Dec 30. 2020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사회는 '개인들'로 인해 변한다.

어떤 현상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논할 때 "그래서 대안이 뭔데?"라고 묻는 것이 문제 제기 자체를 봉쇄하는 효과가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p.194)


글쓰기 모임(미작)에서 5~6월에 사회 문제에 관한 책을 읽고 글을 쓸 때 힘들었던 이유가 바로 이거였다. 그 당시에는 대안이 없는 논의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문제 제기를 한다면 반드시 해결책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믿었고, 뚜렷한 대안이 없었던 나는 사회문제에 대한 의견을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다. 문제의식을 갖는 것조차 봉쇄했다.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저자가 만난 소수 대학생들의 주관적인 의견일 거라고 생각했다. 저자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비딱한 시선으로 분석하려고 했던 것 같다. 컨디션이 안 좋거나 읽기 싫은 내용이거나 과제(독서 토론이나 글 제출)가 있는 책일 경우 이런 경향이 심해진다. 편견 없이, 기대 없이 읽으려고 해도 쉽지 않다. 결국 글쓰기 모임 때까지 다 읽지 못한 상태로 글을 써서 제출했다. 완독을 포기했는데 멤버들의 글을 읽고 나서 꼭 끝까지 읽어야겠다고 다짐했고, 다 읽은 지금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2008년 5월, 경기도 소재의 한 대학에서 '인권과 평화'라는 과목을 강의하던 저자는 'KTX 여승무원들의 철도공사 정규직 전환 요구'문제를 보편적인 인권의 차원에서 설명해 나가고 있었다. 당시의 모든 정황상 '사측이 무조건 잘못한 거다'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던 저자에게 한 대학생이 던진 한 마디가 그를 흔들었다. "날로 정규직 되려고 하면 안 되잖아요!" 그 말을 던진 학생이 강의실에서 '수구꼴통 청년'으로 마녀사냥당하지 않도록 상황을 반전시킬 묘수를 고민하던 그는 오히려 대부분의 학생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분위기를 감지하고 순식간에 바보가 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에 지지와 연대를 보내야 이십 대 자신들의 이득이 커짐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이 구조에 대한 의문으로 이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이십 대들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했고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개인의 능력이 중요해지는 사회에서 사회 초년생이 겪는 흔한 어려움이라고 여겼다. 한편으로는 '노력으로 만들어낸 능력'에 따라 차등 대우를 받는 것은 어느 정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능력이라는 것이 정말 '노력을 통해 가진 능력'일까. 책을 읽으면서 자꾸 의문을 가지게 됐다.


맞다. 누구나 힘들 거다. 그런데 누군가는 '더' 힘들다. 사회는 그 힘듦의 불공정한 '차이'를 들여다봐야 한다. 이 차이를 만들어내는 '기회의 불균등'에 대해 사회가 아무런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을 때, 당사자들은 좌절에 빠진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p.209)


학군이 좋다는 서울 몇 군데와 경기도 한 지역에서 수학강사로 근무했다. 강남의 한 지역에서 초등학생을 지도했는데, '수학'의 학습능력을 결정하는 것은 얼마나 일찍부터 수학을 공부했느냐가 아니라 가정에서의 경험 차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충격을 받았다. 놀랍게도 그 지역 아이들은 수학 과정에 나오는 교구를 대부분 이미 가지고 논 적이 있었다. 다양한 교구를 가지고 놀면서 여러 가지 개념을 자연스럽게 익혔다는 인상을 받았다. 해당 과정을 배운 적이 없는 학생들도 이미 교구를 통해 경험했기 때문에 개념에 대한 이해가 빠를 수밖에 없었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서 어릴 때부터 다양한 경험을 하는 그 아이들과 강북에 살고 있는 조카들이 동등한 경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시작부터 다르다는 생각에 씁쓸했다.


초6 수학 문제에 '주식'이 나와서 설명해 주었는데 13명의 학생 중 12명이 주식을 소유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학생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주식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알았다. 초등학생의 경우 수학 문제를 풀지 못하는 이유 중에 '문제 해석을 못해서'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서술형을 강조하는 요즘 분위기에서는 문제 해석 능력이 더욱 중요하다. 때문에 문제에 나오는 용어(수학과 관계없는 용어 - 과학, 음악, 사회 등 사회 전반에 걸친 내용이 문제로 제시된다)의 이해가 필수다. 수학 개념뿐만 아니라 기본 상식이 풍부한 아이들이 학습 속도가 빠르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겉으로는 동일한 출발선인 것 같아 보여도, 이렇게 여러 상황과 조건에 따라 기회는 균등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p.211)


예전에는 이러한 문제 제기에 '그래서 뭐.. 내가 어떻게 할 수 있겠어. 사회가 이런 걸.. 어쩔 수 없지.'라는 생각에 외면했는데 이제는 뚜렷한 대안이 없어도 논의하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우리의 문제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독서토론을 통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아니 내가 취해야 할 태도를 조금씩 수정하며 만들어가면 되지 않을까.


책에 따르면 요즘 이십 대들은 대학을 서열화하고, 소속된 대학에 따라 우월감과 패배감을 동시에 갖는다. 기존의 학력주의와 다른 점은 같은 학교, 같은 과 안에서도 서열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일단 내가 살고 봐야 한다는 생각 아래 자기 계발에 몰입하게 된다는 이야기에 나도 비슷한 것 같아서 답답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죽도록 노력해서 자수성가'한 자기 계발서의 사례를 보며 노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자책하기도 하고, 더 열심히 살고 싶지만 무얼 해야 할지 몰라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할 때가 많다. 능력에 따라 대우받는 것이 당연하다 것을 전제로 '모두의 파이를 키울 생각보다 내가 노력해서 남들보다 더 큰 파이를 얻어야겠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자기 계발서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4장 자기 계발 권하는 사회를 치유하자!'가 가장 좋았다. 구체적인 통계와 사례를 통해 '시작과 과정'이 공정하지 않은 사회에서 능력주의는 불공정을 단단하게 만드는 도구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허쉬'에서 지방대라는 이유로 정규직 전환이 되지 못한 직원이 자살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책 속 이야기라고 믿고 싶은 상황을 드라마에서 만나게 되다니.. 마음이 아팠다. 한 사람의 노력을 시작으로 다수가 모여 '평범한 목표를 가지고 살더라도 인간다움이 지켜지는 사회(p.234)'를 만들어가기를 꿈꾼다. 우리의 목소리가 공동체 전반의 변화를, 아주 작은 변화라도 이끌어 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인류가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하고 어린이를 교육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장애인의 권리를 인정하고 인종차별을 부당하게 여겨 철폐하고.. 이런 변화는 기존의 사회가 문제 많다는 걸 직시한 개인들의 노력에서 시작된 일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다만 그것이 왜 문제인지, 또 문제라면 이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모를 때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원래의 것이 옳은 듯 착각할 뿐이다. 그러나 착각이 깨지면 그 사회는 절로 좋은 쪽으로 구성원들을 이동시킨다. 사회는 그렇게 '개인들'로 인해 변하는 것이다.
(우리는 차별을 찬성합니다.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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