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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 Mar 13. 2021

무한한 상상력

달러구트 꿈 백화점 / 이미예

워낙 유명한 책이라 읽고 싶으면서도 '뭐가 그렇게 좋을까..' 반신반의했는데 금세 빠져들어 순식간에 읽었다. 누구에게나 따스한 위로를 줄, 모두를 위한 동화책.


잠들어야만 입장할 수 있는 독특한 마을. 그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주인공 페니는 누구나 들어가고 싶은 꿈의 직장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 면접을 보고 합격한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서는 꿈 제작자들의 다양한 꿈 - 하늘을 나는 꿈, 좋아하는 사람이 나오는 꿈, 트라우마 극복을 위한 꿈 등 - 을 판매한다. 꿈 값은 후불로, 꿈을 꾼 뒤 구매자가 느끼는 감정으로 지불된다.


상상력이 정말 대단하다. '꿈'이라는 소재로 어쩜 이렇게 환상적인 공간을 창조해낼 수 있는지. 나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미래를 상상해보라는 질문을 받으면 철저하게 현재를 기반으로 미래를 그린다. 허무맹랑하고 얼토당토않은, 비현실적인 상황이나 공간, 에피소드를 떠올리지 못한다. 그래서 더욱 신기했다.


많은 에피소드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6장 이달의 베스트셀러'에서 올해의 그랑프리를 수상한 킥 슬럼버의 이야기다. '절벽 위에서 독수리가 되어 날아가는 꿈'을 제작한 킥 슬럼버는 선천적으로 오른쪽 다리의 무릎 아랫부분이 없는 채로 태어났다.


모두가 제 꿈을 꾸고 극한의 자유를 느꼈다는 찬사를 보낼 때, 어린 저는 자유의 불완전함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꿈에서는 걷고 뛰고 날 수도 있는 저는, 꿈에서 깨어나면 그러지 못합니다. 바다를 누리는 범고래는 땅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하늘을 하는 독수리는 바다에서 자유롭지 못하죠. 정도와 형태의 차이만 있을 뿐, 모든 생명은 제한된 자유를 누립니다.

여러분은 언제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끼십니까?

여러분을 가둬두는 것이 공간이든, 시간이든, 저와 같은 신체적 결함이든... 부디 그것에 집중하지 마십시오. 다만 사는 동안 여러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데만 집중하십시오. 그 과정에서 절벽 끝에 서 있는 것처럼 위태로운 기분이 드는 날도 있을 겁니다. 올해의 제가 바로 그랬죠. 저는 이번 꿈을 완성하기 위해 천 번, 만 번, 절벽에서 떨어지는 꿈을 꿔야 했습니다. 하지만 절벽 아래를 보지 않고, 절벽을 딛고 날아오르겠다고 마음먹은 그 순간, 독수리가 되어 훨훨 날아오르는 꿈을 완성할 수 있었죠. 저는 여러분의 인생에도 이런 순간이 찾아오길 기원합니다. p.216


생각이 많은 나의 경우에는 '부정적인 생각'이 스스로를 가두고 제한하는 것 같다. '이건 못해. 이 정도면 충분해. 자신 없어. '등의 마음속 말들. 거기에 집중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나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고민해 보았다. 재밌게도 나에게 무엇은 '긍정적이고 감사하다는 생각'이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처럼 '엉뚱한 생각'도.


작년 한 해 동안 글을 쓰면서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억누르고 외면하기만 했던 생각들을 마구 풀어놓는 시간을 가졌다. '그랬더니 생각이 없어졌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생각은 더욱더 샘솟았다. 대신 정돈되는 느낌이 들었다. 외면하고 억누르기만 했을 때는 머리가 아프고 답답한 느낌이 있었는데 머릿속이 어지러울 때마다 글로 풀어놓으니까 머리뿐만 아니라 속이 시원했다.


똑독 독서모임 발제문 중

8장에서 달러구트는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 두 가지를 페니에게 말합니다.
1) 아무래도 삶에 만족할 수 없을 때는 바꾸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2)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만족한다.

여러분은 자신을 어떻게 사랑하나요? 여러분만의 방법은 무엇인가요?


그런 의미에서 위 발제문이 매우 반가웠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만족해야 변화도 가능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는 중이었는데 책을 읽고 발제문을 통해 정리하는 과정에서 보다 분명해졌다.  


2018년 말, 내 삶을 바꾸기 위해 무엇이든 할 작정으로 열심히 노력하기 시작했다. 유산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쉬면서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난임도 원인이었지만, 오랫동안 일을 하면서 번아웃 상태였던 것 같다. 몸과 마음이 너무 약해졌음을 알게 되었고 학원 강사가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참 좋지만 밤낮이 바뀐 상태로, 일과 삶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로 밤늦게까지 일에만 매달리고 싶지 않았다.


처음에는 각종 모임에 참여하면서 다른 '일'을 찾는데 집중했다. 하지만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잠깐 열정이 불탔다가 무기력해지기를 반복했다. 표면적인 것이 아니라 무의식에 새겨 있는 부정적인 것들을 뿌리 뽑고 싶었다. 어떤 일을 하든 결정적인 순간에 포기하게 하는 무의식 속 생각들. '난 안 돼. 내가 어떻게 할 수 있겠어. 나는 이 정도면 충분해.'


의지를 불태웠다가 무기력해지고, 이건가 싶어서 도전했다가 포기하는 과정을 통해 변화를 위해서는 '나 자신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만족하는 것'이 먼저 충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존의 나를 부정하고 새로운 내가 되려고 할수록 무기력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그때부터 새로운 직업이나 일, 변화가 아닌 나 자신에게 집중했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없는 것에 집중해서 스스로를 못마땅해하는 대신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돌아보며 받아들이고 있다.


나에게 나를 사랑하는 방법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면서, 매일 조금씩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로 인한 가장 큰 변화는, 이제 더 이상 쏟아지는 '생각'을 억누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러운 마음, 좌절, 무기력 등으로 생각이 많아지면 글을 통해 풀어놓는다. 더 이상 '나는 왜 이렇게 쓸데없이 생각이 많아'라며 자책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이런 사람이다. '생각'과 친구가 되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읽고 토론을 하면서 '생각'과 친구가 된 것에 그치지 말고 최대한 엉뚱한 무언가를 자꾸 떠올리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글을 쓸 때도 너무 '허무맹랑한 거 아냐'라는 마음속 검열관의 말을 흘려보내고 내 생각들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도록 하고 싶다.  


무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동화 같은 이야기에 마음이 따뜻해지고 곳곳에 숨은 '인생의 교훈'들이 머리를 깨운다. 특히 최근 경험과 들어맞는 부분이 있어서 푹 빠져 읽었다. 초반에 비해 뒷심이 약하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이 정도의 상상력과 에피소드라면 누구라도 '달러구트 꿈 백화점'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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