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망 May 08. 2020

나의 울타리 - 엄마

강화길, 음복(飮福), 2020 제11회 젊은 작가상 대상

여성이기 때문에 차별받는다는 이야기, ‘가부장제의 부역자’로 불리는 가족 내 여성 구성원 이야기. 그런 이야기는 늘 나를 불편하게 한다. 한창 뜨거웠던 ‘82년생 김지영’에 대해 대화할 때도 마음속에서는 소용돌이가 쳤다. 여성이기에 받았던 차별을 나열하며 분노하는 사람들 앞에서 나도 그랬다고 맞장구치며 욕해야 할 것 같고 함께 화를 내야 할 것 같아서다. 공감하지 못하는 건 내가 너무 무지하고 무심하며 상황을 꿰뚫어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부끄럽기도 했다. 이해하지 못한 채로 공감하는 척해야 하는 것이 힘들어서 빨리 대화를 마치고 싶어 진다. 


오은교 작가의 해설을 읽기 전까지 나는 작중 화자의 '남편'과 같았다.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가도 전혀 몰랐다. 시댁의 고모는 누구지? 시할머니는 남편이 시할아버지와 똑같이 생겼기 때문에, 똑같이 이상한 토마토 고기찜을 좋아해서 싫어하나? 시어머니는 아들을 보호하고 싶은 건가? 시할머니에게 고모는 감정의 배출구이자 스트레스를 푸는 대상일까. 


우리 집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긴 하다. 할머니가 딸들에게 기대면서도 아들만 예뻐하는.. 신기한 점은 할머니는 큰 아들보다 둘째 아들을 더 좋아한다는 것이다. 근데 그게 나는 할머니가 살았던 시대의 사회적 분위기와 할머니의 특별한 특성이 만나서 생긴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들을 중시하는 것은 그 시대의 분위기 때문이고 첫째 아들보다 둘째 아들을 더 좋아하는 것은 할머니의 특성이라고. 어쩌면 모든 차별은, 남자도 겪고 있을 그 어떤 차별은 모두 인간이기 때문에 겪게 되는 그런 것이 아닐까.. 싶은 거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받는 차별이나 부당한 일들이 크게 와 닿지 않는 이유는 가정에서 그런 일을 경험한 적이 없어서인 것 같다. 우리 집은 딸만 둘이다. 첫째이기 때문에 받았던 모든 관심과 사랑이 내 안에 있다. 동생은 매우 똑똑하고 야무지다. 어렸을 때부터 모든 것을 나보다 잘했다. 모든 것이라고 해봐야 어릴 때 우리를 비교할 만한 것은 성적뿐이다. 그런데 부모님이 성적으로 나와 동생을 비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공부를 잘하라고 잔소리를 하신 적도 없다. 심지어 밤 12시 전에 자라고 극성이셨다. 다른 부분에서도 차별을 받은 기억이 없다. 


우리 집에서도 제사를 지낸다. 어렸을 때부터 학원 강사 일을 시작할 때까지 매년 제사를 도왔다. 제사를 지낼 즈음만 되면 엄마는 유난히 날이 서 있었다. 그건 그저 음식을 차리는 게 너무 힘들어서, 명절까지 합하면 제사상을 차리는 날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모든 것을 준비하고 나는 돕기만 했다. 그마저도 직장 생활을 시작한 뒤에는 내가 너무 피곤해하니까 자게 했다.

  

내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 엄마는 시집에서 받았던 차별이나 스트레스를 이야기한 적이 없다. 할머니를 싫어하시는 것 같았지만 격하게 싫어한다기보다는 할머니가 특이하셨기 때문에, 내가 불편해하는 것처럼 엄마도 그런 줄로만 알았다. 


약 10년 동안 미래가 안 보일만큼 큰 빚을 갚으며 가족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냈다. 빚을 갚기 시작한 지 3년쯤 지났을 때, 엄마가 내 월급만큼의 돈을 받게 되면서부터 나에게 기본 생활비 이외의 돈은 모두 맘대로 쓰라고 하셨다. 그때부터 여행을 다녔다. 서른에 복잡한 심경으로 호주 여행을 갔을 때, 30대 중반에 학원 일이 힘들어서 훌쩍 유럽 여행을 떠났을 때, 엄마는 내게 그곳이 좋다면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내가 도망가고 싶었던 만큼 엄마도 그랬을 텐데 단단한 나무처럼 나를 보호할 울타리를 쳐놓고 정작 나는 세상에 풀어주었다. 마음대로 나가 떠돌게 했다. 자유를 한껏 누리라며 등을 떠밀어주었다.  


우리 집에서는 내가 소설 속 ‘남편’이었을까. 집안에서 일어나는 피곤한 감정싸움, 친척들 간의 다툼, 그 속에서 속이 문드러져갔을 엄마. 직장 생활을 하기 전까지는 몰랐다. 나에게도 나도 모르게 쥐어진 권력이 있었던 것일까. 아마도 아니 분명히, 내가 누릴 수 있었던 ‘무지’라는 권력은 엄마의 철저한 방어, 오랜 세월 지켜온 침묵, 울타리가 되어주고 나를 세상에 풀어준 엄마 덕분이다. 나를 차별로부터 완벽하게 보호하고 그 안에 발 담그지 않게 해 주었다. 내가 누린 이 모든 호사가, 무심함이, 세상을 너그럽게 볼 수 있는 마음이 실은 엄마의 무던한 노력과 힘겨움 덕분이었다.


여전히 나는 지금도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유통기한이 지난 두부를 먹어도 되는지, 국을 끓일 때 무엇을 먼저 넣어야 하는지, 김치가 너무 익은 것 같은데 무얼 해 먹으면 좋을지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한다. 직접적인 애정을 표현하지는 않지만 언제나 한결같이 나를 사랑해주고 위해주고 배려해준다는 것을 안다. 그녀는 여전히 나의 든든한 울타리다.

작가의 이전글 나를 알아간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