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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 May 04. 2020

나를 알아간다는 것

카페 갈래?

“카페 갈래?”


내 기분을 풀어주고 싶을 때 내편이 하는 말이다. 나는 카페에 있는 시간이 참 좋다. 책을 읽어도 좋고 커피만 마셔도 좋고 멍 때리기에도 좋다. 계획을 짜고 중요한 일을 결정하고 대화를 나눌 때도 집보다 카페가 좋다. 집에서 하면 되는 활동인데도 굳이 카페를 찾을 때가 많다. 왜 이렇게 카페를 좋아하는 걸까?

               

대학생이 되어 서울에 올라온 뒤 최근까지, 나에게 집은 잠만 자는 곳이었다. 내 집이 아니었고, 좁았고, 불편했다. 근 20년 동안 10여 곳에서 살았지만 마음을 붙이고 편히 쉬었던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래서 쉽게 여행을 떠났는지도 모르겠다. 어디를 가든 집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여행지에서도 숙소에서 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일어나자마자 밖으로 나가서 밤이 되어서야 숙소로 들어갔다. 정말 잠만 잤다. 여행을 할 때 숙소는 내게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잠을 잘 수 있는 곳, 잠자리가 편한 곳이면 된다.


참 재미있게도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집에서는 잠만 자는 줄 알았다. ‘집은 쉬는 공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당연히 청소도 대충 했다. 내 공간이 아니었고,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곳에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하루를 살든 일 년을 살든 내가 머무는 공간인데 좀 너무했다. 그만큼 집에 대한 애정이 눈곱만큼도 없었다는 거겠지.


‘나의 친애하는 적’에서 허지웅 씨가 집을 청소하면서 ‘청소란 그 공간을 완전히 이해하게 만든다’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공감하지 못했다. 공간을 완전히 이해할 필요가 있나, 뭘 그렇게까지 집에 의미를 두나.. 싶어서. 그런 내가 유일하게 마음 편히 쉬는 곳이 바로 카페였다. 놀랍게도 카페가 나를 위로하는 유일한 공간이었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야 깨달았다. 

  


3월부터 ‘매일 글쓰기’를 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떠올리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것들을 20개 작성하는 것’이었다. 그 많은 항목을 언제 다 찾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금방 채웠다. 항목만 쓰기에는 아쉬워서 이유를 간단히 적었다. ‘카페’에 대해서 쓰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두 페이지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아니 왜?


글쓰기를 멈추고 쓴 글을 읽어보았다. 지금까지 살았던 집, 집주인 때문에 고생했던 일, 힘든 일은 결국 지나간다는 이야기 끝에 ‘카페는 내가 유일하게 편히 쉴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었다는 문장이 나를 붙들어 세웠다. 아, 그런 거였구나. 그래서 학원 강사로 일할 때도 출근 전에 꼭 카페에 들러서 공부를 하고 책을 읽었던 거구나. 공부도 독서도 쉬는 것도 모두 카페를 이용했다. 집보다 더 집이었던 셈이다. 카페는 삶에 지친 나를 위로하고 쉬게 해 주는 공간이었다.


이제야 모든 것이 이해된다. 


혼자 카페에 갈 때는 자리를 고를 때 정말 신중해진다. 

특히 처음 가는 카페라면 커피를 주문하기 전에 모든 공간을 천천히 둘러본다. 따사로운 햇살을 받을 수 있는 창가, 향긋한 커피향이 진하게 나를 감쌀 수 있는 곳, 4인용보다는 2인용 좌석, 주변 테이블과 적당히 떨어져 있을 것, 옆자리가 비어있는 곳, 너무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곳, 아늑한 공간일 것 등을 기준으로 머물 곳을 탐색한다. 선호하는 자리는 카페의 구조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행인들과 눈이 마주치는 창가는 싫다. 이런저런 조건을 엄격하게 따지는 것 같지만 결국 가장 아늑해 보이는 곳을 찾는 거다.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으로! 맘에 든다 싶어서 앉았는데 기대했던 편안함이 느껴지지 않으면 과감하게 일어나서 다른 자리를 찾는다. 아주 가끔 세 번이나 옮겼는데도 뭔가 불편해서 난감할 때가 있다. 그런 카페는 다시 찾지 않게 된다.            

                                   


신중하게 선택한 자리에 앉으면 커피를 앞에 두고 나만의 세상으로 빠져든다. 주변 소음을 음악 삼아, 어떤 날은 이어폰을 타고 들려오는 감미로운 음악을 파티션 삼아 온전히 나만을 위한 공간을 만든다. 시야도 소리도 희미해지고 주위에 있던 공기가 쫀쫀하게 나를 감싼다.


여행을 가면 매일 카페에 들러서 커피를 마신다. 앉아 있을 시간이 없을 때도 어떻게 해서든 들러서 포장이라도 해온다. 커피를 좋아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커피를 카페와 동의어로 생각해 왔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커피가 안 맞는 체질이다. 커피를 2잔 이상 마시거나 늦은 저녁에 마시면 심장이 두근거리다 못해 온몸이 두근거린다. 그런 내가 매일 꼭 한 잔씩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되었다. 카페를 좋아하니까 커피도 좋아진 거네.


카페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고를 때마다, 여행지에서 시간이 없는데도 매일 꼭 커피를 마셔야 한다고 우길 때마다 그냥 까다로운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쉼을 책임질 나만의 공간을 찾는 건데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나? 까다로운 사람으로만 치부했던 과거의 나에게 사과한다. 내가 나를 이렇게 몰랐구나. 이번 주말엔 나랑 카페에 가자. 자리를 둘러볼 시간은 충분히, 아주 충분히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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