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수술을 하게 되었다. 노화 때문에 생긴 문제라서 어찌할 수가 없다. 생명에 지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약한 엄마가 수술을 잘 이겨낼지 걱정이다. 병원에서 무리하지 말고, 무거운 물건을 들지 말고, 잘 쉬어야 한다고 했는데도 엄마는 마트에 가서 무겁게 장을 보고 자주 김치를 담근다. 배추를 사 올 때마다 들고 오는 게 힘들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차 싶어서 배추를 사게 되면 미리 말해달라고 했다. 장을 보고 나올 때쯤 차를 가지고 가서 픽업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된 건 엄마가 김치를 담그는 횟수다. 많아야 두 달에 한 번쯤 담그시겠지~했는데 한 달에 한 번은 배추를 구입하시는 것 같다. 아빠가 김치를 좋아하시고 동생 집에서도 잘 먹는다. 나는 김치가 필요 없다고 말해도 꼭 내 몫을 챙기신다. 고생하지 말고 사 먹으면 좋겠는데 살림을 하는 엄마 입장에서는 아깝기도 하고 '김치는 뚝딱할 수 있다'라고 여기시는 것 같다. 게다가 가족들 모두 엄마 김치를 좋아한다. 심하게 맛있다.
오늘 엄마와 배추를 사러 갔다. 엄마가 장을 보면 시간 맞춰 마트 앞으로 가겠다고 했다가, 일정이 어중간해서 마트에 같이 갔다. 막상 가니까 픽업도 문제지만 배추를 사서 계산하는 과정에서도 무거운 배추를 들었다 내렸다 해야 했다. 휴... 어차피 갈 거 같이 장을 보면 좋은데 뭘 그렇게 귀찮아했는지. 게다가 오늘은 배추가 품절돼서 훨씬 무거운 절임배추를 살 수밖에 없었다. 무거워진 마음으로 계산대에 가려는데 엄마가 오징어를 사러 가자고 했다. 낮에 오징어를 샀는데 너무 싱싱해서 나에게도 사 주고 싶다고 하셨다.
나는 이제 막 집밥을 해 먹기 시작한 요린이다. 오징어를 집에서 데쳐 먹는 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장을 손질하고 데쳐서... 아.. 귀찮다.'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하지만 내색할 수 없었다. 무거워진 마음 때문인지, 엄마가 아까 슬쩍 흘린 '수술이 걱정된다'는 말 때문인지.. 엄마의 말에 무조건 '좋아요'라고 대답해야 할 것 같았다. 오징어가 정말 좋아 보인다며 한 팩을 집어 들었다.
내편의 가장 큰 장점은 내가 어떤 말을 하든 '좋다'라고 말하는 거다. 일단 좋다고 말한 뒤에 의견을 덧붙인다. 그게 얼마나 마음을 포근하게 하는지, 상대를 얼마나 평안하게 하는 태도인지 잘 알면서 나는 왜 엄마의 말에 활짝 웃으며 '좋다'라고 화답하지 못할까. 마트에 같이 가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오징어를 데쳐 먹는 게 어려워봤자 얼마나 어렵다고..
오징어 손질은 생각보다 쉬웠다. 내장을 손질하고 3분 정도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었다. 엄마에게 건네는 말은 '좋아요, 엄마'로 시작하겠다고 다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