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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 Sep 04. 2021

이렇게 살아도 괜찮아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

부부의 퇴사로 시작된 이야기지만 긴긴 인생을 즐겁게, '쉬지 않고 노는 것'에 관한 글이다. 저자는 "쉰다는 것과 논다는 것은 다른 얘기"라고 말한다. 그동안 벌던 돈의 반도 못 볼 게 뻔하지만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면 그게 바로 '돈의 노예'가 되는 것. "이것은 '정신 승리'가 아니다. 다만 이렇게 살아도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교보문고 책 소개 중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 제목이 어찌나 매력적인지. '정신 승리'가 아니라는 말에, '이렇게 살아도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을 뿐'이라는 문장에 바로 결제했다. 우리 부부가 이렇게 살고 있다.


20년 넘게 광고 회사 카피라이터로 일했던 작가 편성준은 뒤늦게 출판 기획자인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아이는 없고 고양이와 산다. 놀면서도 잘 사는 것이 꿈인 둘의 만남, 애인 같은 부부의 소소한 에피소드, 편성준 작가의 실수담, 놀면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등을 유쾌하게 풀어낸다. 어찌나 필력이 좋은지 줄어드는 페이지가 아까울 정도였다. 별거 아닌 에피소드인데 깔깔 웃게 된다. 이렇게 사소한 대화도 글감이 된다니. 긍정적인 충격을 받아 나도 내편과 있었던 자잘한 일을 글로 써 보았다. 세상에..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역시 글은 어떤 사건을 풀어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모티브를 어떤 태도와 문체로 다루는가(p.280)'다.


광고 회사 카피라이터로 일했으니 능력도 있고 돈도 많겠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퇴사를 하면 수입이 줄어들고 돈에 대한 불안감이 쌓이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 통장 잔고가 바닥나서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고, '실력 있는 카피라이터가 놀고 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SNS에 글을 쓴 저자에게 깊이 공감되었다. 그 와중에 글은 또 어찌나 유쾌한지. 청탁의 글을 두 번 올리고 나서 새로운 일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 부부도 둘 다 놀고 있다. 그동안 벌던 돈의 반도 못 벌고 있지만 걱정했던 것보다 잘 지내고 있다. 결혼 초에는 맞벌이를 하다가 3년 전에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올해 3월, 내편이 퇴사했다. 갑작스러운 퇴사였지만 갑작스럽지 않았다. 한 직종에서 같은 일을 반복하던 내편은 종종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이직을 준비하는 내편에게 이번 기회에 새로운 일을 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했더니 흔쾌히 좋다고 했다.


시공간의 제약 없이 일하고 싶어서 온라인 사업을 시작했다. 2년 동안 블로그와 글쓰기에 집중하면서 온라인 시장의 변화를 지켜본 결과 굉장히 매력적인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수히 많은 강의 중 2개를 선별해 듣고 사업을 시작했다.


여유자금으로 버틸 수 있는 기간을 정하고, 수입이 예상보다 터무니없이 적으면 둘 다 원래 직종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지 않을 거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3년 동안 주부로 지내면서 불안할 때마다 '예전에 했던 일을 다시 해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런 마음은 불안함을 잠재우기 위한 방편이지 진짜로 돌아가고 싶어서가 아니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정감을 얻어 다시 지금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거라는 다짐도, 원하는 수입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돌아가겠다는 마음도 모두 도움이 된다. 중요한 것은 불안에 휩쓸려 허둥대지 않는 것이다.


재밌게도 상황은 똑같은데 불안함이 가중되는 날엔 이러다 거리에 나앉을 것 같고, 설렘이 가득한 날에는 평생 이렇게 산다면 정말 좋겠다는 희망에 부푼다. 아직까지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건 오직 돈뿐이다. 많이 벌어 많이 쓰고 싶은 게 아니라 적당히 벌어 적당히 쓰고 마음대로 살고 싶다. 재밌게도 돈 때문에 불안하지만 돈보다는 삶에 대한 대화를 더 자주 한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으며 살 것인지에 대해(p.60)'


부부가 둘 다 놀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가장 큰 변화는 매일 의견을 나눈다는 것. 일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지, 집안 가구는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 밥은 어떻게 해 먹을지, 한 달 식비는 얼마가 적당할지, 언제 얼마큼의 일을 할 것인지, 어디서든 일할 수 있으니 코로나가 풀리면 어디로 여행을 갈 것인지. 직장에 이끌려 결정하던 많은 부분을 이제는 우리가 직접 결정한다. 따박따박 정해진 월급을 받을 때보다 생각하고 선택할 것이 더 많아졌지만 그래서 더 재밌다. 더 자주 싸우고 더 자주 웃으며 더 자주 불안해하고 더 자주 설렌다.


"진짜 삶을 산다는 것은 매일 새롭게 태어날 준비를 하는 것이다. 태어날 준비는 용기와 믿음을 필요로 한다. 안전을 포기할 용기, 타인과 달라지겠다는 용기, 고립을 참고 견디겠다는 용기다." - 에리히 프롬의,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중에서 p.297


불안이 고개를 들 때마다 우리와 같은 삶을 사는 부부의 이야기를 펼쳐 드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될 것 같다. 놀면서도 잘 사는 게 꿈인 사람, 정해진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고민하는 사람, 앞만 보고 달리다가 지친 사람, 새로운 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줄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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