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헤엄친 여자와 바다에 남은 남자
무라카미 하루키의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태평양 한가운데, 조난당한 한 남자가 튜브를 붙잡고 표류하고 있다. 그때 저 멀리서 똑같이 튜브를 붙잡은 한 여자가 헤엄쳐온다. 그들은 나란히 바다 위에 떠서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잡담을 나눈다. 밤이 새도록 이야기를 나눈 후 여자는 어딘가 있을지 모를 섬을 찾아 헤엄쳐가고, 남자는 그 자리에 남아 맥주를 마신다. 여자는 이틀 낮, 이틀 밤을 헤엄쳐 어딘가의 섬에 도착하고, 남자는 그 자리에 남아 술에 취한 채 구조대에 의해 구조된다. 몇 년 후 이 둘은 어느 고지대에 있는 작은 술집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데, 여자는 굉장히 혼란스러워한다. 자신은 팔이 빠져라 열심히 헤엄쳐서 살았는데,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 역시 살아있다니. 여자는 헤엄치며 '남자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노라 고백한다. 하지만 남자는 살았다. 열심히 헤엄친 그녀와 똑같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p.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