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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 Sep 09. 2021

어떤 마음가짐과 태도로 존재할 것인가

열심히 헤엄친 여자와 바다에 남은 남자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는 제목을 하도 많이 들어서 익숙한 책이다. 가벼워 보이는 제목과 달리 생각거리가 많아서 재밌게 읽었다. 위트 있는 제목 때문에 유명한 줄 알았더니 내용이 알차다. 그중 다음 내용이 자꾸 생각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태평양 한가운데, 조난당한 한 남자가 튜브를 붙잡고 표류하고 있다. 그때 저 멀리서 똑같이 튜브를 붙잡은 한 여자가 헤엄쳐온다. 그들은 나란히 바다 위에 떠서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잡담을 나눈다. 밤이 새도록 이야기를 나눈 후 여자는 어딘가 있을지 모를 섬을 찾아 헤엄쳐가고, 남자는 그 자리에 남아 맥주를 마신다. 여자는 이틀 낮, 이틀 밤을 헤엄쳐 어딘가의 섬에 도착하고, 남자는 그 자리에 남아 술에 취한 채 구조대에 의해 구조된다. 몇 년 후 이 둘은 어느 고지대에 있는 작은 술집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데, 여자는 굉장히 혼란스러워한다. 자신은 팔이 빠져라 열심히 헤엄쳐서 살았는데,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 역시 살아있다니. 여자는 헤엄치며 '남자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노라 고백한다. 하지만 남자는 살았다. 열심히 헤엄친 그녀와 똑같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p.17  


열심히 헤엄쳐 섬을 발견한 여자와 바다에 남은 남자. 최선을 다해 헤엄친 여자는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 생명을 유지했고, 남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구조대를 만나 살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여자.


열심히 하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최선을 다해 살았다. 안 그러면 큰일 나는 것처럼. 뭐든 정성을 다해야 삶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었다. 대학시절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 하지만 그땐 노력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머릿속은 복잡했고 닥치는 대로 일했다. 다만, 스스로를 닦달하고 좌절하고 괴로워하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부지런히 헤엄쳤다.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그랬다고 믿었다.


두 남녀가 조난당한 위 이야기를 읽고 다시 생각해 보니 아닌 것 같다. 대학시절의 나는 섬을 찾아 헤엄친 여자처럼 노력했다고 여겼으나 실은 무기력에 휩싸인 상태로 그저 버텼을 뿐이다. 주어진 상황에 이리저리 휩쓸리면서도 포기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틀을 헤엄친 여자가 아니라 파도에 몸을 맡기고 바다에 떠 있던 남자가 아니었나 싶다. 남자는 술을 마시며 떠 있었다면 나는 매 순간 두려워하고 조급해하며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 다르지만.


시험관을 하면서 '세상에 내 맘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런데 과거를 돌아봐도 내 맘대로 된 건 거의 없다. 내 마음 빼고는. 사실 내 마음도 원하는 대로 안 될 때가 더 많고. 사람들이 환호할 만한 좋은 글을 쓰고 싶어서 노~오력 한다고 해도 뚝딱 쓸 수 없고, 그렇다고 '원하는 글을 못 쓰니까 아예 쓰지 말자'라고 내려놓으면 좋은 글을 쓸 기회를 잃게 된다. 그럼 어째야 할까. 세상만사 내 맘대로 되는 게 없으니 노력할 필요가 없는 건가. 그저 운을 기다리면 될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노력의 여부가 아니다. '노력'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여자도 섬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남자도 바다에 떠 있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안 그러면 물에 빠져 죽었겠지. 누구든 자신의 삶에서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 타인이 볼 때는 인생을 허비하는 것 같아도 당사자는 매 순간 정성을 쏟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신만의 목표를 향해.


중요한 것은 헤엄을 치든 바다에 떠 있든 일단 존재해야 한다는 거다. 그리고 그 존재하는 시간에 어떤 마음가짐과 태도를 가질지는 온전히 내가 선택할 수 있다고 믿는다. 섬을 찾아 헤엄치기로 마음먹었다면 두려움에 휩싸이는 대신 수영 자체에 집중하고, 그 자리에서 구조대를 기다리기로 했으면 그 선택을 믿고 평안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 그렇게 매일을 살다가 뜻밖의 운이 다가오면 좋은 거고 운이 오지 않는다면 그런대로 또 하루를 살아가면 되는 게 아닐까. 섬을 찾아 헤엄치며 살지, 바다에 떠서 맥주를 마실지는 각자의 선택일 테고.


목표를 가지고 달리든 지금에 만족하며 현상태를 유지하든,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마음가짐과 태도로 존재할 것인가'이다. 원하는 마음가짐과 태도를 찾고 만들어가기 위해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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