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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 Sep 18. 2021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한 날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한 날이다.

8시 반쯤 일어나면 내편이 먼저 일어나 일하고 있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그 순간이 좋다.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일어나 냉장고 문을 열고 물을 꺼낸다. 마음에 드는 컵을 두 개 꺼내 따른 뒤 한 잔을 내편에게 건넨다. 어떤 날엔 시원하고 어떤 날엔 차갑게 느껴지는 물을 한 잔 마시고 나면 머리가 맑게 깬다.

하루의 첫 식사를 무엇으로 할지가 매일을 여는 대화다. 식단을 정하면 내편은 마저 일하고 나는 글을 쓴다. 감사일기 그리고 매글(매일 글쓰기 모임) 또는 정보글. 10시 반에서 11시 사이에 아점을 먹는다. 오늘은 새벽 배송으로 도착한 어묵탕과 크래미 당첨. 미역국을 끓여 먹을 생각이었는데 글을 쓰다 보니 너무 늦어서 후다닥 끓여 먹을 수 있는 어묵탕으로 바꿨다. 어묵탕 조리법에 '기호에 맞게 쑥갓, 버섯, 파, 청양고추를 넣어 드세요'라고 쓰여있길래 표고버섯을 넣고 끓였더니 버섯 향이 강해서 별로다. 향에 대해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고 외출 준비를 했다.

엄마, 조카들과 함께 우이동 계곡을 끼고 있는 카페에 갔다. 엄마가 백신 2차 접종까지 마쳐서 딱 5명 출입이 가능하다. 이번 외출의 목적은 쉴 틈 없이 일해온 엄마를 위한 휴식이다. 아이들이 계곡에서 노는 동안 엄마는 소파에 누워 쉬시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만난 계곡이 반가운지 엄마도 아이들과 함께 계곡으로 내려가셨다. 적당한 돌을 골라 앉아서 아이들 사진을 찍기도 하고 계곡 속 무언가를 관찰하셨다. 도토리나무를 발견하시고는 아이들을 데리고 도토리를 주우셨다.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로운 순간들이다.

엄마와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문제가 생긴 제품을 처리했다. 부품이 도착하지 않았단다. 판매자에게 부품 배송을 요청했다. 추석 연휴로 인해 통관과 배송이 느린 데다가 국내 택배는 오늘 대부분 마감이다. 부품은 아마도 2주 뒤에나 받을 수 있을 거다. 고객에게 안내하고 판매자와 연락하고 배송대행지에 부품 주문서를 넣었다.

그리고 새로 들어온 주문을 처리했다. 날이 갈수록 주문이 늘어난다. 희망도 커진다. 많아진 주문이 반갑지만 그만큼 다양한 사건 사고가 일어난다. 처음 만나는 일은 그 경험이 우리의 자산이 될 거라 믿으며 최선을 다하고, 이미 경험한 사건은 지난번보다 능숙하게 대응하려고 노력한다.

저녁엔 소소한 일들을 도와드리기 위해 시가에 갔다. 저녁을 먹으며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자주 얼굴 볼 수 있어서 좋구나'

옛날엔 평일에는 회사일이 바빠서, 주말에는 평일에 못 했던 일을 하느라 바빠서 가족들 만날 시간이 없었는데. 직업을 바꾸고 나서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자주 만나 느슨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다.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한 하루.

오늘 같은 하루하루가 모여 내 삶이 될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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