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물
물을 끌어올리기 위하여 펌프에 붓는 한 바가지 정도의 물. 펌프의 패킹이 새 것이면 금방 물이 올라오지만 패킹이 낡으면 공기와 함께 부어놓은 물이 밑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더 많은 물을 부어야 하며 빠른 속도를 더해야 물이 올라온다.
글쓰기의 마중물은 책 읽기다. 그런 면에서 매주 한 권의 지정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미작(글쓰기 모임)은 책 읽기와 글쓰기가 세트로 짜여 있어 좋다. 마중물이 될 책을 읽으며 마음에 남았던 문장을 데려와 글을 지으면 된다. 충분히 읽고 생각하면서 그럴듯한 글감을 구해 술술 쓸 때도 있고, 적당한 물 한 바가지를 찾지 못해 헤맬 때도 있다. 물은 찾았는데 패킹이 오래되어 많은 소재와 오랜 펌프질이 필요할 때도 있고.
어릴 적 이모 댁에 펌프가 있었다. 갈 때마다 신기해서 물 한 바가지를 붓고 펌프질을 했다. 대부분은 마중물 양이 부족하거나 속도가 느려서 물이 나오기는커녕 한 바가지 물마저 아래로 빨려 들어갔다. 열 번 도전하면 한번 성공할까 말까 했는데, 성공할 때의 그 느낌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가볍게 움직이던 손잡이가 무거워지면 성공 가능성이 생긴다. 온 힘을 다해 빠른 속도로 손잡이를 내리고 올리기를 반복하면 무거운 물이 쭉 딸려 올라왔다. 힘들다고 포기하거나 속도를 늦추면 안 된다. 기회가 왔을 때 최선을 다해 펌프질을 해야 한다.
마중물과 의지, 적당한 속도. 이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
2020년 1월부터 미작을 시작했으니 매주 한 편 이상 글을 쓴 지 20개월이 넘어간다. 마중물(책 읽기)을 준비해서 포기하지 않고 글 짓는 연습을 80회 이상 한 셈. 멤버들과 의지를 다지고, 일주일마다 읽고 쓰기를 지속하면서 그 리듬이 몸에 익은 느낌이다. 미작을 건너뛰면 신나면서도 허전하다. 꼭 해야 할 일을 미룬 느낌.
매글(매일 글쓰기 모임)도 20기가 지났다. 2주에 10편씩 썼으니까 200편 이상 글을 썼다. 쓰기 싫고 포기하고 싶을 때는 함께 하는 이들의 에너지를 받으며 의지를 다졌고, 다음 기수를 이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될 때는 이대로의 속도를 유지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공지를 올렸다.
내면을 들여다보고 나를 이해하는 도구로 쓰다가 ‘글을 엮어 무언가 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던 시기를 지나 지금은 그저 쓰는 게 좋아 쓴다. 나를 들여다볼 수 있어 좋고 일상을 기록해서 좋고 타인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어 좋다. 글쓰기에 빠져 무작정 쓴 것 같은데 나름의 리듬을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중물을 버리며 헛된 펌프질을 하는 듯한 날도 있다. 하지만 그 시간 또한 다른 무언가의 마중물이 될 거라 믿는다. 내년에도 5년 뒤에도 10년 뒤에도 나는 쓰는 사람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