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망 Oct 23. 2021

늘 빛나고 있는 건지도 몰라

봄꽃을 닮은 젊은이들은 자기가 젊고 예쁘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아마 모를 것이다. 나도 젊은 날에는 몰랐다. 그걸 안다면 젊음이 아니지. 자신이 예쁘고 빛났었다는 것을 알 때쯤 이미 젊음은 떠나고 곁에 없다. <그러라 그래> p.22     


친구와 강릉 바다로 일일 여행을 다녀왔다. 몇 년 전부터 내 사진을 찍을 일이 별로 없는데 이 친구를 만나면 그래도 한 두장은 찍게 된다. 그마저도 뒷모습이나 마스크를 쓴 모습일 뿐이지만. 찍히는 것보다 찍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친구를 스마트폰 화면에 담으면, 친구도 나에게 카메라를 들이댄다. 얼마 전까지는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는데 강릉 여행에서는 부지런히 친구 앞에 섰다.


며칠 전, 오래된 데스크톱을 정리하다가 옛 사진을 보게 되었다. 대학 때 팬플룻이라는 악기를 배우는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매년 여름이면 남이섬으로 합숙훈련을 떠나 우리만의 작은 연주회를 열었다. 남이섬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때라 넓은 섬 안에는 우리뿐이었다. 시끄럽다고 눈치 주는 이들이 없으니 신나게 삐익 삑~ 연습할 수 있었다. 앳된 얼굴로 악기를 불고 있는 내 모습이 참 좋아 보였다. 집안 사정이 급격하게 나빠져서 괴로운 시기였는데, 사진 속에서 활짝 웃는 나는 분명 행복했다.


정리하던 자료를 잊은 채 그대로 눌러앉아 데스크톱 사진 폴더를 뒤적거렸다. 대학 졸업식 날,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한껏 말고 정장을 입은 내가 있다. 오래 만나던 남자 친구와 헤어졌고 취업을 못한 상태였으며 집안 사정은 더 어려워졌던 시기. 희뿌옇게 ‘최악이던 그때’라는 이미지와 달리 나는 웃고 있다. 사진 몇 장이 당시의 나와 친구들을, 그때의 기분과 마음을 불러왔다.


학원 강사로 취직하고 청바지 한 벌로 버티던 직장생활 1년 차. 열심히 일했고 열심히 놀았다. 같은 과 선생님들과 근교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다 같이 모여 찍은 사진에는 사회 초년생 티를 내며 웃고 있는 내가 있다. 매 수업 시간마다 시험대에 오르는 기분이었지만 연구하고 수업하는 시간이 꽤 즐거웠다. 함께 연구하는 이들에게 위로받았고 학생들에게 위안을 얻었다.


도망치듯 떠났던 유럽에서 미소 짓는 나, 결혼식장에서 축하를 받으며 행복해하는 나도 만났다. 언제부터 사진을 찍지 않게 된 걸까. 셀카는커녕 남이 찍어주는 사진도 싫다며 거절하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일까.


강릉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 친구와 함께 스마트폰 사진첩을 뒤적거렸다. 카카오 스토리에 올려둔 예전 사진을 보다가 놀랐다. 2015년, 당시 우린 우리가 이미 늙었다고 생각했다. 지금 보니 그때의 우리는 참 예쁘다. ‘사진 찍기 싫은데~’라며 찍었던 사진들이 꽤 보기 좋다.


일 년 뒤 어느 날, 올해 사진을 열어보면 ‘이때 참 좋았지’라는 생각을 할 게 분명하다. 파아란 하늘, 귀여운 고양이, 푸릇한 산책길도 좋지만 이제는 내 얼굴이 가득한 사진으로 사진첩을 채워야겠다. 훌쩍 시간이 흐른 뒤 사진첩을 뒤적이다 보면 ‘아~ 이때만 해도 젊었구나. 예쁘게 빛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 테니까.


어쩌면 나는, 늘 빛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 Making do with what you are.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