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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 Nov 20. 2021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아니 에르노의 장편소설을 읽고

엄마는 수술을 하신 후 갑자기, 무척 늙으셨다. 1시간 걷기는 일도 아니었던 엄마는 사라졌다. 조금만 움직여도 지쳐 주저앉고, 자주 무언가를 찾아 헤맨다. 기력도 기억력도 눈에 띄게 약해지셨다. 그래서 나는 두렵다. 그 두려움이 노년기에 대한 책을 짚어 들게 만든다. 앞으로 변해갈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며 두려워하는 것보다는 선명히 마주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얼마 전 제주도에서 데려온 <만년의 집>,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는 모두 노년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구입했다. <만년의 집 - 인생의 겨울을 준비하는 강상중의 조용한 각오>는 막상 읽어보니 기대했던 내용은 아니었다. 작가의 삶과 사유, 고원 생활 이야기가 대부분인데 취향에 맞아 즐겁게 읽었다.  


반면, 작가의 어머니가 치매에 걸린 뒤 일어나는 일을 일기 형식으로 쓴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는 사놓고도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치매, 어머니'라는 단어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무거워졌다. 평소라면 궁금해하지 않았을 이 책을 구입한 이유는 오로지 "아니 에르노의 소설을 읽는 일은 그럴 수밖에 없는 인생을 함께 겪는 일이다"라는 편혜영 소설가의 추천 문장 때문이다. 나와 엄마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인생을 살아갈 텐데 그 일을 미리 겪어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왜 에세이가 아니라 소설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실적이다. 자전적 소설이라고는 하나 작가의 실제 일기장을 읽는 느낌이 든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 어머니의 말이나 달라진 행동, 아이가 된 어머니를 만날 때마다 느끼는 죄책감 등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너무 생생해서 '엄마가 치매에 걸려 양로원에 모셔두고 병문안을 오간다면 이런 감정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1985년 말, 나는 죄의식을 느끼면서 어머니의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글을 쓸 때 어머니가 어느새 세상에 생존해 있지 않게 될 시점에 이미 내가 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글쓰기의 고통을 실감했다. 젊었을 때 나는 글쓰기가 세상을 향한 전진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머니를 문병하고 있는 현재의 글쓰기를 통해서는 어머니의 가혹한 피폐 상태를 확인하게 될 뿐이었다.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p.168 작가의 말


엄마의 노년을 상상하면서, 엄마가 치매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엄마에게 미안했다. 그런 상상이 엄마를 그런 미래로 보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기력이 다해 늙어버린 엄마를 향하고 있는 나의 생각이 무서웠다.


우리가 함께 할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얼마 전 엄마가 조카들 옷을 사러 같이 가자고 했을 때, 하필 이렇게 비가 오는 날 가냐고 투덜거렸던 것을 후회한다. 엄마가 외출 계획(장 보기, 조카들 용품 사기)을 이야기했을 때 다급하게 '그날 시간 없어요'라고 내뱉은 것이 후회된다.


엄마와 경치 좋은 곳에 가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지, 장을 보거나 각자의 일상에 필요한 소소한 일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귀찮고 피곤하다. 하지만 아니 에르노와 어머니의 만남을 함께 겪다 보니까 중요한 건 무얼 하느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곳으로 여행 가요, 시간 내서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라는 말로 소중한 시간을 미루고 있었을 뿐이다. 특별한 이벤트를 계획하는 것보다 자주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인생의 많은 것이 부질없이 흩어지고 사라지더라도 어떤 것은 영영 그대로 남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어느 밤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았노라'는 마지막 문장을 적게 할지도 모른다. 편혜영(소설가)


아니 에르노의 목소리를 통해 어쩌면 엄마의 마지막 나날, 나의 마지막 나날 일지 모를 시간을 함께 겪으며,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죽음을 생각하면 너무나 두렵지만 그 생각이 오늘을 잘 살게 한다. '삶을 쓰는 작가 아니 에르노의 그럴 수밖에 없는 인생'을 함께 겪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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