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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 Feb 05. 2022

싸우고 화해하기

가족이라는 존재는 참 이상하다.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깊은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 다툼이 생길 때마다 피하고 도망 다니다가 몇 년 전에 크게 싸웠다. 얼굴을 맞대고 싸우지는 못하고 전화로 소리를 질러댔지만, 회피만 하던 나에게는 큰 발전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나만 상처받았던 게 아니라는 것을. 늘 나만 당한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는 대화를 피하고 묻어두려고만 하는 나로 인해 화가 나고 속상했던 것 같다. 


나는 싸움이 싫다. 큰 소리가 나는 것도 싫고 싸운 뒤에 화해하는 과정도 너무 곤란하다. 그저 모든 이들과 잘 지내고 싶다. 게다가 화가 나면 입을 꾹 닫아버렸다. 생각과 감정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다툼이 일어나면 일단 피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라는 태도를 취했지만 시간이 흐른 뒤돌아보면 좋지 않을 때가 많았다. 나 자신을 잘 몰랐기 때문에, 다툼이 싫었기 때문에 상대에게 맞추었지만 그동안 나는 괜찮지 않았다. 괜찮지 않은 나를 알아차리고 나면 상대도 미워져서 인연을 끊곤 했다. 그런데 가족은 인연을 끊을 수가 없었다. 


20대 때는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심리 서적을 읽고 상담을 받았다. 심리 관련 글을 쓰는 블로거를 알게 되어 전화&메일 상담을 받았는데 나에게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생각나지 않지만 '너는 정상이고 잘 살고 있다'라고 이해했다. 하지만 나는 자주 가족과의 관계로 힘들었다. 오랜 기간 심리 관련 책을 읽으면서 깊이 고민했지만 나아지는 건 없었다. 


최근 2년 동안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특히 가족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인지하게 되면서 큰 변화를 맞았다. 피하는 나도 힘들지만 당하는 가족에게도 괴로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난 뒤에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최선을 다해 마음을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2년 전에는 아버지의 말 한마디에 화가 나서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의 그런 태도가 나를 너무 화나게 한다고 소리를 질렀다. 40년 동안 아버지에게 직접 불만을 말한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엄청난 일이었다. 같이 화를 내실 거라는 예상과 달리 아버지는 미안하다고 하셨고, 그 말 한마디에 묵었던 몇 덩어리의 감정이 녹아내렸다. '화를 내도 되는구나. 내 마음을 말해도 되는구나.'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 일을 계기로 더 자주 마음을 이야기한다. 어떤 말이 나를 화나게 하면 표현한다. 대신 화를 내지 않고 솔직하고 담담하게. 상대를 공격하지 않고 내 감정을 이야기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더 적극적으로 싸운다. 예전에는 화가 나면 일어나서 나와 버렸는데, 요즘엔 작은 일이라도 화가 나면 솔직하게 표현한다.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예전보다 훨씬 화해가 편하다. 사실 예전에는 싸우지를 않았으니 화해할 수도 없었다. 서로 답답한 마음만 쌓였다. 


싸움을 피한다고 꼬인 실타래가 저절로 풀리지 않는다. 나처럼 피하기만 했던 사람에게는 적극적으로 마음을 드러내며 다투는 과정도 필요하다. 가만히 있던 사람이 갑자기 싸우려 들면 상대는 당황스럽겠지만, 그렇게 직면해야 엉켜있던 실타래를 풀 수 있는 방법이 하나씩 생겨난다. 


올해는 더 자주 싸우고 열심히 화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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