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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훈 Nov 01. 2022

나는 세상에서 잊혀지고

말러 뤼케르트 시에 의한 5개의 가곡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Gustav Mahler 1860~1911)의 음악세계는 교향곡과 가곡으로 대표됩니다. 말러는 교향악의 절정을 이룬 10개의 대 교향곡 (10번은 미완성)을 남겼는데 독창 가곡도 42곡을 썼습니다. (교향곡에 들어있는 가곡까지 합하면 52곡) 말러의 가곡은 대부분 오케스트라의 반주로 작곡되었는데 이는 ‘교향악적 가곡’이라는 장르를 창조하며 독일 가곡의 새로운 역사를 만듭니다.


말러는 1901년부터 독일의 시인 프리드리히 뤼케르트 (Friedrich Ruckert, 1788~1866)의 시에 곡을 붙여 가곡집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와 <뤼케르트 시에 의한 5개의 가곡>을 작곡했습니다. <뤼케르트 시에 의한 5개의 가곡>은 1901년에서 1902년 사이에 작곡되었고 다른 연가곡들과 달리 5개의 가곡들 사이에 내용적 연관성은 없습니다. 그래서 연주되는 순서는 연주자에 따라 자유롭게 정해집니다.


칼 몰의 집에서의 말러, 1901


1. 내 노래를 엿듣지 마세요 (Blicke mir nicht in die Lieder)

1901년 6월에서 7월 사이 마이어니히에서 작곡되었고 가사는 뤼케르트의 시 ‘금지된 눈길(Verbotener Blick)’에서 가져왔습니다. 말러는 편집증이 의심될 정도의 완벽주의자적 기질을 가지고 있었는데 부인 알마의 회고에 따르면 말러는 자신의 작품이 완성되기 전 다른 사람이 보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고 전해집니다. 말러는 뤼케르트의 시 '금지된 눈길'을 접하고 "마치 내가 쓴 것처럼 나의 심정을 잘 표현한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내 노래를 엿듣지 마세요 / 눈을 감아요 / 무슨 나쁜 짓이라도 한 것 같이,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 다만, 성장하는 것만 지켜보아 주세요 / 감히, 엿보신다면, 배신이 됩니다 / 벌들은 집을 지을 때, 남이 알지 못하게 짓는 답니다 / 훌륭한 벌집이 완성되었을 때, 그땐, 우선 당신에게 보여드리겠어요.


2. 나는 은은한 향기를 맡았네 (Ich atmet' einen linden Duft)

1901년 6월에서 7월 사이 마이어니히에서 작곡되었고 가사는 뤼케르트의 시 ‘봄(Lenz)’에서 가져왔습니다. 사랑하는 이가 보내준 보리수 가지의 은은한 향기에 행복을 느끼는 주인공의 심정을 표현하는 노래로 Linde(보리수)와 linden(부드러운), lieber(사랑스러운), lieblich(달콤한) 등 비슷한 발음의 단어들의 운율이 특징적입니다.


나는 은은한 향기를 맡았네 / 보리수 가지가 방안에 놓여 있네 / 사랑하는 이가 보내준 선물 / 보리수의 향기가 얼마나 사랑스러웠던가 / 보리수의 향기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 당신이 살며시 꺾어 온 보리수 가지 / 나는 그윽이 보리수의 향기를 맡네 / 은은한 보리수의 향기를. 


3. 한밤중에 (Um Mitternacht)

1901년 6월과 7월 사이 마이어니히에서 작곡되었고 가사는 뤼케르트의 시 ‘한밤중 Mitternacht)’에서 가져왔습니다. 5개의 노래 중 가장 웅장한 곡으로 한밤중에 비애와 절망에 빠진 주인공이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고 모든 문제를 절대자에게 의지한다는 종교적인 성격을 담고 있습니다. 오케스트라는 관악기와 타악기만 연주하며 알마 말러는 이 곡을 1902년 쇤베르크에게 헌정했습니다.


한밤중에 / 나는 잠에서 깨어났네 / 그리고 하늘을 보았지만 / 무수한 별들 중 어느 한 별도 / 나에게 미소 지어 보이지 않았네 / 한밤중에 / 내 생각을 날려 보냈네 / 어둠 끝까지 / 그렇지만 어떤 광명도 / 나에게 위안을 주지 못했네 / 한밤중에 / 나는 들었네 / 내 심장의 고동소리를 / 고통의 박동이 / 나를 엄습했네 / 한밤중에 / 나는 투쟁을 했네 / 오 인류여, 너의 고통이여 / 이길 수가 없네 / 나의 능력만으로는 / 한밤중에 / 나는 나의 능력을 / 당신의 손에 맡겼네 / 삶과 죽음을 주재하는 주님 / 나를 지켜보아 주소서 / 한밤중에


4. 아름다움을 사랑하신다면 (Liebst du um Schöheit)

1902년 8월에 마이어니히에서 작곡되었고 가사는 뤼케르트의 시 ‘다섯 번째 꽃다발(Füfter Strauss)’에서 가져왔습니다. 말러는 1902년 3월 9일 알마와 결혼을 합니다. 이 노래는 신혼의 달콤함을 노래하고 있으며 물질과 외모가 아닌 순수한 내면의 사랑을 갈구하는 주인공의 심정을 노래합니다. 19세 연하의 아내를 향한 말러의 진심이 담겨있는 곡으로 다른 곡들과 달리 이 곡은 피아노 반주로만 작곡하였는데 1910년 막스 푸트만(Max Puttmann)이 오케스트라 반주로 편곡하였습니다.


아름다움을 사랑하신다면 / 나를 사랑하지 마세요 / 차라리 태양을 사랑하세요 / 태양은 황금빛 머리카락을 가졌으니까요 / 젊음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면 / 나를 사랑하지 마세요 / 차라리 봄을 사랑하세요 / 봄은 해마다 젊은 모습으로 찾아오니까요 / 보석을 사랑하신다면 / 나를 사랑하지 마세요 / 차라리 인어를 사랑하세요 / 인어는 진주를 많이 갖고 있으니까요 / 사랑 때문에 사랑하신다면 / 오, 네, 나를 사랑해주세요 / 나를 늘 사랑한다면 / 나도 영원히 당신을 사랑하겠어요


5. 나는 세상에서 잊혀지고 (Ich bin der Welt abhanden gekommen)

1901년 8월 16일 마이어니히에서 작곡되었고 가사는 뤼케르트의 시 ‘반복(Wiedergenommen)’에서 가져왔습니다. 이 노래는 철학적인 가사와 깊이와 품위 있는 음악으로 인해 말러의 가곡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특히 말러는 이 곡에 대해 '나의 이야기'라고 말하였는데 그의 내성적인 성향과 더불어 이기적이고 소란스러운 세상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신만의 평화를 갈망하는 말러의 정신과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대중적으로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말러의 교향곡 제5번 4악장 '아다지에토'에도 이 가곡이 인용되었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잊혀졌네 / 내가 많은 시간을 허비하며 보냈던 세상이지만 / 세상은 나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으니 / 아마도 내가 죽은 것으로 믿고 있겠지 / 그렇다고 해도 내게는 상관없네 / 내가 죽은 것으로 믿고 있다 해도 / 그것을 나는 부정할 방법이 없네 / 사실 나는 이 세상에서 죽은 자나 다름없으니까 / 세상의 소란도 나와는 상관이 없고 / 조용한 왕국에서 평화를 누리네 / 나는 나만의 천국에서 혼자 살고 있네 / 나의 사랑 속에서, 나의 노래 속에서 

말러 - 뤼케르트 시에 의한 5개의 가곡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지휘

바리톤 크리스티안 게르하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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