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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훈 Oct 22. 2022

왜 곤고한 자에게 빛을 주시는가?

브람스 교향곡 제2번

"자유롭지만 고독하다"


브람스의 교향곡 제1번이 21년이라는 긴 세월의 산고 끝에 탄생한 것과 달리 교향곡 제2번은 불과 4개월 만에 작곡되었습니다. 1876년 제1번 교향곡을 세상에 내놓은 브람스는 그 이듬해인 1877년 여름을 오스트리아 남부의 휴양도시 푀르차흐에서 보내게 됩니다. 뵈르트 호수가 유명한 이 아름다운 휴양지에서 브람스는 휴식을 취하며 새로운 작품의 구상과 작곡에 전념했는데 이곳에서 제2번 교향곡을 단숨에 써내려 갑니다. 베토벤이라는 거인의 그림자를 의식하여 21년 동안 다듬어 온 제1번 교향곡이 투쟁과 환희를 그려냈다면 (여전히 베토벤의 그림자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지만) 교향곡 제2번은 편안하고 포근한 전원의 느낌을 담은, 1번 교향곡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음악이었습니다. 외과의사이자 브람스의 절친한 친구인 테오도르 빌로트는 초연 전 사석에서 브람스의 피아노 연주로 이 곡을 접한 감동을 다음과 같이 남기고 있습니다. "그 교향곡은 푸른 하늘 같았네. 샘물이 졸졸 흐르는 것 같고, 햇살의 속삭임 같고, 시원한 초록 영상 같네!" 푀르차흐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교향곡 2번 작곡에 영향을 주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이로 인해 제2번 교향곡을 브람스의 '전원' 교향곡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이후 브람스는 매년 이곳을 방문하는데 바이올린 협주곡과 바이올린 소나타도 이 휴양도시에서 태어나게 됩니다. 


푀르차흐의 뵈르터 호수


브람스는 1877년 10월, 초연에 앞서 그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인물인 클라라 슈만을 방문하여 2번 교향곡을 들려줍니다. 브람스의 새로운 교향곡을 들은 클라라는 매우 감동하였고 그녀의 일기에는 교향곡 제2번이 제1번보다 대중들에게 더 큰 사랑을 받을 것이라 적었는데 그녀의 예상은 적중합니다. 브람스 교향곡 제2번의 초연은 1877년 12월 30일 한스 리히터가 지휘하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이날 연주를 들은 빈의 귄위 있는 평론가인 한슬리크는 "영원한 성공"이라고 극찬하였고 청중들의 반응도 뜨거웠습니다. 그리고 까다로운 비평가들도 브람스가 새로운 교향곡에서 보여준 놀라운 리듬과 전조, 악기의 새로운 용법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하였습니다. 전원의 느낌이 가득 찬 1악장과 심오한 아름다움의 2악장, 그리고 소박하지만 경쾌하고 즐거운 3악장과 생기 넘치고 열정과 기쁨으로 마무리하는 4악장, 분명 제2번 교향곡은 전원적인 악상들과 밝고 온화한 특성이 잘 나타나 있는 곡입니다. 하지만 '자유롭지만 고독했던' 브람스 특유의 어두움과 슬픔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지는 않습니다.


1875년 경의 브람스


브람스는 독일의 여류 피아니스트인 엘리자베트 폰 헤르초겐베르크에게 제2번 교향곡에 대해 설명하면서 마단조 화음에 대한 '최후의 어떤 것'에 대하여 언급하였고 클라라 슈만에게는 1악장에 대해 "매우 슬프다"라고 말하였는데 이는 밝은 햇살 같은 제2번 교향곡 안에 깊고 어두운 브람스의 고독과 슬픔이 내재돼있음을 짐작케 합니다. 이런 어두운 정서는 트롬본과 튜바의 묵직한 저음으로 주로 표현되는데 제2번 교향곡은 브람스의 교향곡들 가운데 유일하게 튜바가 사용된 교향곡이기도 합니다. 특히 1악장 서두에 나오는 트롬본과 튜바의 코랄은 브람스의 모테트 <왜 곤고한 자에게 빛을 주시는가?, Warum ist das Licht gegeben dem Mühseligen?>에서 인용한 것인데 르네상스 시대의 모테트를 연상시키는 이 작품이 1877년 푀르차흐에서 교향곡 제2번과 같은 시기에 쓰였다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이 모테트는 성경의 욥기 3장의 내용을 가사로 하고 있습니다.


아, 어찌하여 하나님께서는 불행한 사람들에게 빛을 주시고, 고통과 괴로움뿐인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는가? 그런 사람들은 그토록 죽음을 갈망하건만, 어찌하여 죽음은 찾아오지 않는 것인가? 꼭꼭 감추어진 보물을 애써 찾는 것 이상으로 그토록 애타게 죽음을 찾고 있지만, 어찌하여 죽음을 찾을 수 없는 것인가? 마침내 죽음을 찾아 무덤 속으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한 기쁨이 없으련만! 인생의 앞길이 한 치도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어찌하여 하나님께서는 목숨을 주시는가? 어찌하여 하나님께서는 사방팔방으로 갈 길을 꼭꼭 틀어막으시면서, 그 사람을 계속 살게 하시는가?

브람스 교향곡 제2번

베를린 필하모닉 / 카라얀 지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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