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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훈 Oct 02. 2022

승리의 죽음

베토벤 에그몬트 서곡 작품번호 84

"나는 자유를 위해 죽노라! 나는 자유를 위해 살았고, 투쟁했으며,
이젠 자유를 위해 내 목을 비통한 제물로 바치노라"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이 작곡한 11개의 서곡들 중 가장 사랑받는 작품인 <에그몬트>는 독일의 대 문호 괴테가 쓴 5막의 동명 비극 '에그몬트'의 부수음악으로 작곡되었습니다. 주인공 에그몬트 백작(1522-1568)은 16세기 중엽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네덜란드의 독립운동을 이끌던 인물로 사형선고를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역사상 실존인물입니다. 


네덜란드의 영웅, 에그몬트 백작


네덜란드 역사를 연구하던 괴테는 에그몬트 백작의 영웅적인 생애에 큰 감명을 받아 12년에 걸쳐 희곡 '에그몬트'를 완성하였고, 이 희곡을 접한 베토벤도 큰 감동을 받아 음악을 작곡하게 된 것입니다. 베토벤과 괴테는 동시대를 살아가며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고 서로의 재능과 예술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인간적으로는 잘 맞지 않았다고 전해지는데 21세 연상인 괴테는 베토벤의 거침없는 말과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겼고, 베토벤은 괴테의 귀족적인 분위기를 싫어했죠. 이러한 사실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베토벤이 <에그몬트>를 막 완성했을 무렵, 괴테가 몇 주간 체류 예정으로 빈에 왔습니다. 그 기간 중에 두 사람은 때때로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괴테는 베토벤과 함께 프라터 공원을 산책하게 되었습니다. 산책 중에 마주치는 사람들 모두 두 사람을 향하여 모자를 벗고 인사하였고 바이마르에서 신과 같은 존경을 받고 있던 괴테는 일일이 그들에게 답례를 하였죠. 하지만 베토벤은 무슨 상념에 잠긴 듯 먼 하늘만 응시할 뿐이었습니다. 일일이 모자에 손을 올려 답례를 하던 괴테도 그만 귀찮아져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량한 시민들이란 정말 따분한 존재들이요, 무조건 인사만 해대니..." 그러자 베토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괴테 선생님, 제가 이렇게 말한다고 섭섭해하지 마십시오, 그들의 인사는 전부 내게 하는 겁니다.”


시민들에게 인사하는 괴테와 반응하지 않는 베토벤


서곡의 음악적 구성은 에그몬트 백작이 독립운동 중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자 그를 구하려던 애인 클레르헨이 자살하고 그녀의 환영이 자유의 여신이 되어 옥중의 에그몬트를 축복하고 에그몬트는 당당히 죽음을 맞이한다는 줄거리를 따르고 있습니다. 이를 반영하듯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로 시작되는 느린 서주는 스페인 식민지배의 압박과 고통, 이에 대한 에그몬트의 고뇌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곡은 이후 빠른 템포의 주요부로 들어가는데 억압에 대한 항거와 에그몬트의 투쟁정신을 3박자의 음악으로 박진감 있게 이끌어 갑니다. 그리고 그의 투쟁이 실패하였다는 것을 말하듯 음악은 힘이 빠지는데 갑자기 4박자의 당당하면서 힘이 넘치는, 빠른 행진곡 풍으로 음악이 바뀝니다. '승리의 교향곡'이라고도 불리는 이 부분은 클레르헨의 영혼이 에그몬트를 축복하고 단두대의 죽음을 향해 당당히 걸어가는 에그몬트 백작의 기백을 나타내는 것으로 듣는 이들에게 승리의 벅찬 감격을 선사하며 곡을 마무리합니다.


에그몬트 서곡의 베토벤 자필보


루이 갈레 작 '에그몬트 백작의 마지막 순간' (1848)



베토벤 에그몬트 서곡

과천시립교향악단 / 김예훈 지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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