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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훈 Nov 14. 2022

협주곡의 새로운 길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3번

“라르고의 주제는 성스러운 천상의 하모니임에 틀림없다.”


베토벤이 작곡한 5곡의 피아노 협주곡 중 유일한 단조인 제3번 협주곡은 그만의 개성과 원숙한 음악적 스타일이 확립되기 시작한 작품으로 선배들의 영향을 받아 작곡한 1번, 2번 협주곡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줍니다. 제3번 협주곡은 1800년에 작곡하여 1803년 안 데아 빈 극장에서 베토벤 자신의 연주로 초연되었는데 이때는 베토벤이 제3번 교향곡 ‘영웅’을 작곡하고 있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의 나이 30세를 전후하여 확립된 독자적인 음악세계가 ‘3번’이라는 작품들에서 시작되었던 점은 매우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피아노 협주곡 제3번 초연 당시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일화가 있습니다. 베토벤은 곡의 독주부를 초연 날까지 완성시키지 못한 상태로 무대에 올랐는데 그의 악보에는 이집트 상형문자와 같은 알 수 없는 기호들만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 초연 당시 베토벤은 머릿속에 있는 음악을 악보로 정리가 안된 상태에서 즉흥적으로 연주를 하였던 것인데 이날 무대 리허설은 장장 7시간이나 진행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베토벤은 피아노 협주곡 제3번의 조성을 다단조 (c minor)로 선택하였는데 이 곡을 쓰기 전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제24번 다단조>를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전해지며 이와 더불어 곡을 쓰기 시작할 무렵 자신의 청각장애를 친구들에게 고백한 심적 동요도 곡의 조성을 어둡고 무거운 다단조로 선택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단조는 베토벤이 가장 좋아했던 조성이기도 하며 훗날 교향곡 제5번 ‘운명’, 코리올란 서곡 등에서도 다단조 조성을 사용합니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의 자필보, 알 수 없는 기호들이 있다.


제3번 협주곡의 형식은 전통적인 방식을 따르고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확실히 새로운 것입니다. 교향악적 관현악의 구성은 단순한 독주 악기의 반주에 그치지 않았던 이전과 달리 오케스트라의 반주부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며 피아노 협주곡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합니다. 무엇보다 교향곡 3번이 그러했듯 피아노 협주곡 3번에서도 내면성이 두드러지며 베토벤만의 깊이감을 더해가고 있습니다. 


어두운 고난과 역경을 표현한 다단조(c minor)의 제1악장이 끝나면 따듯하고 아름다운 마장조(E major)의 제2악장이 시작되는데 다단조에서 마장조로 연결되는 조성 배치는 이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시도입니다. 베토벤의 제자이기도 했던 칼 체르니는 제2악장에 대해 “라르고의 주제는 성스러운 천상의 하모니임에 틀림없다.”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는데 개인적으로도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의 느린 악장 중 단연코 가장 아름다운 악장이라 생각합니다. 마지막 제3악장은 밝고 가벼운 론도로 진행되지만 론도의 주제를 푸가토로 진행하는 부분은 베토벤만의 깊이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안 데아 빈 극장 (1815년)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3번

포트워스 교향악단 / 마린 알솝 지휘 / 피아노 임윤찬 (2022 반 클라이번 콩쿨 실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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