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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훈 Nov 18. 2022

영원한 사랑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전주곡과 사랑의 죽음'

"삶과 죽음, 외부 세계의 모든 의미와 존재는 영혼의 내적 움직임에 달려 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켈트족의 설화로 2세기부터 12세기까지 천년 동안 구전된 이야기입니다. 그 후 12세기 프랑스, 13세기 독일에서 문학작품으로 출판이 됩니다. 바그너는 13세기 중세 독일의 시인 고트프리트 폰 슈트라스부르크의 서사시를 통해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전설을 접하게 되고 이 설화를 바탕으로 악극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작곡합니다.


켈트 족의 설화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그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에게 회자되며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는 생명력의 원천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21세기의 현대인들도 이천 년 전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에 공감과 감동을 받습니다. 그것은 시대가 변해도 사랑의 감정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스토리를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로누아의 왕자 트리스탄은 양친을 잃고 콘월의 왕인 백부 마르크 밑에서 지혜와 용기를 겸비한 기사로 성장합니다. 트리스탄은 백부의 아내가 될 이졸데를 아일랜드에 서 데려오는 중 시녀의 실수로 마르크와 이졸데가 마셔야 할 ‘사랑의 묘약’을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마시고 둘은 돌이킬 수 없는 사랑에 빠집니다. 이졸데가 마르크의 왕비가 된 후에도 둘의 밀월관계는 계속되고 어느 날 이 일이 발견되어 트리스탄은 나라에서 추방됩니다. 트리스탄은 이졸데를 사모하는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여 같은 이름의 여인과 결혼하지만 이졸데를 잊지 못해 병상에 눞게 됩니다. 그 소식을 들은 이졸데는 트리스탄을 향해 오지만 트리스탄은 숨을 거두고 이미 죽어 있는 트리스탄을 본 이졸데도 트리스탄의 뒤를 따라 목숨을 끊습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죽음, Rogelio de Egusquiza 작 (1910)


바그너는 <로엔그린>을 작곡한 후 더 이상 '낭만적인 오페라'를 작곡하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악극이라는 이름으로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발표합니다. 바그너 악극의 특징은 음악과 문학의 완벽한 결합을 추구합니다. 이를 위해 오페라 가수(문학)의 반주 역할에 머물렀던 오케스트라의 음향(음악)은 더욱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때로는 더욱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로 확장됩니다. 또한 음악사적으로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중요한 것은 지난 수백 년 동안 서양음악의 근간을 이루었던 조성 체계를 흔드는 화성 진행을 통해 현대음악의 서막을 열었다는 것입니다. 조성이 파괴된 무조음악의 시작은 아르놀트 쇤베르크(1874~1951)의 12음 기법을 시작으로 보지만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전주곡에 나오는 일명 '트리스탄 화음'은 훗날 쇤베르크의 등장을 예견하고 있습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주곡에 나오는 '트리스탄 화음'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전주곡과 사랑의 죽음'은 오페라의 첫 음악과 마지막 음악을 연결하여 오케스트라 연주용으로 구성한 것입니다. 전주곡은 악극이 시작되기 전 연주되는 곡으로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비극적인 사랑을 암시합니다. <전주곡>은 '동경의 동기', '사랑의 동기', '운명의 동기'가 차례로 등장하며 진행됩니다. 바그너는 자신의 악극에 유도동기 (Leitmotiv)를 주로 사용하였는데 이는 주요 인물이나 사물, 감정 등에 그것을 상징하는 음악을 붙이는 것입니다. (현대 영화음악에서 'OO의 테마'와 비슷한 개념) 


<사랑의 죽음>은 제3막 마지막 장면에서 이졸데가 트리스탄의 죽음 앞에서 홀로 부르는 노래로 몽환적인 아름다움과 절정을 향해 가는 낭만성은 '죽음으로 완성되는 사랑'에 대한 가장 숭고하고 로맨틱한 피날레입니다. 사실 바그너는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쓸 무렵 아내 민나와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었고 자신의 후원자인 오토 베젠동크의 부인 마틸데 베젠동크와 금지된 사랑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비극적인 트리스탄의 모습에서 자신을 보았을 것입니다. 바그너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바그너와 베젠동크 부인


"트리스탄은 자신이 중매자가 되어 이졸데를 백부에게 데려간다. 그러나 사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고 있었다. 진정시킬 수 없는 욕망의 가장 작은 부분에서 시작하여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고백하는 섬세한 떨림과 이러한 사랑의 무서운 폭발에 이르기까지, 마음속에 불타고 있는 정열과의 헛된 싸움에서 일어나는 모든 감정이 전개된다. 그리고 그 감정은 마음속에 가라앉아 결국 정신을 잃게 만들고, 끝내는 죽음으로 사라지게 한다."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전주곡과 사랑의 죽음

서동시집 관현악단 (West Eastern Divan Orchestra)

다니엘 바렌보임 지휘 / 트라우터 마이어 소프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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