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에세이 기고글 (2024년 9월호)
이제 곧 계절은 다른 옷으로 갈아입을 준비를 한다. 사계절이 뚜렷한 곳에서 산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인가! 온기와 열정, 풍요와 외로움, 고독과 아픔, 사계절의 변화는 세상이 우리를 위해 연주하는 음악과도 같다. 계절은 시대를 거치며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었고 훌륭한 예술작품의 어머니가 되었다. 음악도 예외가 아니어서 계절을 주제로 한 여러 훌륭한 작품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이탈리아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 (Antonio Vivaldi, 1678~1741)가 작곡한 ‘사계’,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작품이다. 사실 이 작품은 원래 ‘화성과 창의에의 시도’라는 12개의 바이올린 협주곡 모음집 중 1~4번까지의 네 작품을 말하는데 앞의 네 곡만 자주 연주되면서 따로 분리되어 현재의 ‘사계’가 되었다. 각 계절에는 작가 미상의 소네트(짧은 시)가 적혀있는데 계절의 특징적인 묘사가 음악감상에 큰 도움을 준다. 비발디가 묘사한 음악은 18세기 이탈리아의 ‘사계’ 일 테지만 봄에는 새들이 지저귀고, 여름에는 뜨거운 태양과 가을에는 농부들의 수확, 그리고 겨울에는 매서운 추위와 난롯가의 아늑함을 표현한 가장 일반적이고 이상적인 계절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시대와 장소가 달라지면 계절의 모습도 바뀌게 된다. 아르헨티나의 작곡가 아스토르 피아졸라 (Astor Piazzolla, 1921~1992)는 20세기 중반 남미에서 느끼는 계절의 변화를 탱고라는 장르로 멋지게 표현한다, “나에게 탱고는 발보다 귀를 위한 것이다.”라는 그의 말처럼 피아졸라는 누에보 탱고(Nuevo Tango)의 창시자로 춤을 위한 음악이었던 탱고를 클래식과 재즈를 접목해 예술적 가치가 높은 순수음악, 즉 감상용 음악으로 승화시켰다는 평을 받는 작곡가이다. 피아졸라 ‘사계’의 원제는 ‘항구의 사계’, 항구는 아르헨티나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뜻하기에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로도 불린다. 남반구 아열대성 기후를 표현하듯 계절의 순서도 여름, 가을, 겨울, 봄 순이며 애수에 찬 우울한 고독감과 나른함, 뜨거운 정열이 교차한다. 서양 현악기를 통해 중남미 민속 리듬악기인 귀로(guiro)의 소리를 표현하는 것과 계절의 지역 차를 반영하듯 피아졸라의 여름에 비발디의 겨울을 인용한 것은 매우 흥미롭다. 21세기 들어서며 지구의 기후변화는 많은 것들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무엇보다 계절의 변화는 모호해지기 시작했으며 각 계절의 모습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이제 비발디가 노래했던 다채롭고 풍요로운 ‘사계’의 모습은 현대인에게는 단지 추억으로만 기억해야 하는 옛것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럼 우리 시대의 ‘사계’는 어떤 모습일까?
영국의 클래식 작곡가 막스 리히터 (Max Richter, 1966~ )는 2012년 비발디의 사계를 재창조하여 세상에 내놓는다. ‘Recomposed by Max Richter, Vivaldi Four Seasons’이라는 제목의 이 앨범은 비발디의 사계를 근원으로 두지만, 계절의 모습과 변화를 현대적인 감각과 다양한 악기 등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리히터는 1966년 독일에서 태어나 영국 왕립음악원을 졸업하고 이탈리아로 건너가 현대음악의 거장 루치아노 베리오를 사사하며 클래식과 전자음악을 공부한다. 그는 다큐멘터리, 영화음악 작곡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데 주된 작곡어법은 미니멀리즘에 기반한다. 의도적으로 음악의 요소들을 최소화시키고 반복시키는 미니멀 음악은 단순화를 추구하고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현대사회의 모습과도 많이 닮았다. 리히터의 사계에서 인용되는 비발디의 선율은 옛 행복을 추억하지만, 현대의 아픔을 말하듯 슬픔과 애절함, 때로는 무기력한 방관자의 모습을 표현한다. 모두가 계절의 아픔을 통해 환경의 위험성을 부르짖고 다음 세대를 걱정하지만 우리는 모두 방관자가 아니었을까? 리히터의 ‘사계’에서 만들어내는 고전악기와 전자악기의 융합된 소리는 시대의 변화 속에 바뀌는 계절을 표현하고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며 미래를 경고한다. 예술은 그 시대의 거울이 아니었던가! 다음 세대에서 나올 ‘사계’의 작품은 다시금 비발디가 바라보았던 원초적인 ‘사계’의 모습이 오롯이 담겨있기를 희망해 본다.
안토니오 비발디 사계
재닌 얀센 / 암스테르담 신포니에타
아스토르 피아졸라 사계
박수현 / 과천시립교향악단 (지휘 김예훈)
막스 리히터 사계
한수진 /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 (지휘 아드리엘 김)
https://youtu.be/UIf1zz3vWx4?si=ND9oIV_Rvq9vNH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