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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훈 Jan 28. 2022

고난을 음악으로 승화시킨 음악의 성녀(聖女)

피아니스트 클라라 하스킬

“나는 살면서 진정 천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세 명 만났다. 한 사람은 아인슈타인이었으며, 한 사람은 처칠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 누구보다도 현격히 차이 나는 두뇌의 소유자는, 바로 클라라 하스킬이었다.” - 찰리 채플린 - 


예술가에게 고난이란 무엇일까요? 유독 예술가에게 있어서의 고난과 역경은 영원히 남을 예술적 승화를 위한 필수 불가결한 것으로 회자됩니다. 화가 고흐가 그랬고 작곡가 베토벤이 그러했지요. 그들은 한결같이 불행한 삶을 살았지만 그들의 역경과 고통의 산물은 불멸의 명작으로 남아있습니다. 천재라 불리었던 채플린이 진정한 천재라고 말하기 주저 않던 피아니스트 클라라 하스킬 (Clara Haskil, 1895~1960), 그녀의 기구하지만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입니다.


클라라 하스킬을 소개할 때 꼭 빠지지 않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그녀의 천재적 재능이고, 둘째는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선 드라마 같은 그녀의 삶입니다. 1895년 1월 7일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태어난 하스킬은 불과 여섯 살 때에 한번 들은 모차르트의 소나타를 바로 조성을 바꾸어 암보로 연주하는 놀라운 재능을 보입니다. 그 후 11세에 파리 음악원에 입학하여 포레와 코르토 등 당대 최고의 대가들에게 가르침을 받은 하스킬은 15세이던 1910년에 1er Prix (1등 상)를 받고 음악원을 졸업한 후 유럽과 미국에서 본격적인 연주활동을 시작합니다. 당시 하스킬은 신비스럽고 지적인 눈부신 외모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런 아름다운 소녀의 천재적인 재능은 사람들을 열광시키고도 남았습니다. 하지만 18세가 되던 1913년, 그녀의 운명은 더 이상 아름답지 못했습니다.

 
그녀에게 찾아온 것은 희귀한 불치병인 축색 경화증’(Sclerosis), 뇌와 척수의 백질이 파괴되면서 신경계에 종양까지 동반하는 이 병으로 그녀는 4년이란 시간을 깁스를 한 채 병마와 싸우게 됩니다. 가까스로 다시 연주활동을 시작하지만 하스킬의 눈부신 아름다움과 젊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병의 후유증으로 인해 그녀는 꼽추가 되어버리지요. 다시 예전 인기와 명성을 찾으려는 순간 운명은 또다시 그녀를 놔두지 않았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것입니다. 유태인이었던 하스킬은 나치를 피해 남 프랑스 마르세유에 피난을 떠났고, 그곳에서 숨어 지내야만 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그녀의 곁에는 바이올린 한 대와 고양이가 전부였습니다. 게다가 힘든 은둔 생활로 인한 뇌졸중으로 실명의 위기에 처하고, 축색 경화증의 합병증인 신경종양으로 그녀는 사경을 헤매게 되지만 다행히 한 유태계 의사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하스킬의 삶은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었지만 그녀는 모든 일에 감사했고 항상 겸손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만들어내는 음악 또한 한없이 순수했고 아름다웠습니다. 연주를 마칠 때면 "오늘도 살아서 연주를 마치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하며 고개를 떨구었던 하스킬은 어떠한 과장이나 꾸밈없이 오로지 마음을 다해 연주하였고 그녀를 기억하는 당대의 연주가들은 존경과 경외심으로 하스킬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세계를 무대로 활동함에도 불구하고 52세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음반 녹음을 시작했는데, 그것은 그녀의 겸손과 수줍음 때문이었습니다.
 
하스킬의 마지막 죽음도 가혹한 운명이었습니다. 1960년 12월 파리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아르투르 그뤼미오와 함께 ‘소나타의 밤’ 연주회를 마친 후 기차를 타고 다음 공연지인 벨기에 브뤼셀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역에 도착하여 계단을 내려오던 중 그녀는 순간적인 현기증이 일어나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고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으로 실려갑니다. 병원에서 잠시 의식을 찾았을 때 파리에서 달려온 동생에게 하스킬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일 공연은 힘들 것 같구나. 그뤼미오 씨에게 죄송하다고 전해주렴.”... 이것이 그녀가 남긴 마지막 말이 되어 버렸고 다시 혼수상태에 빠진 하스킬은 다음날 새벽 66세를 일기로 조용히 눈을 감습니다.


“나는 행운아였습니다. 나는 항상 벼랑의 모서리에 서 있었어요. 그러나 머리카락 한 올 차이로 인해 한 번도 벼랑 속으로 굴러 떨어지지는 않았다는 것, 피할 수 있었다는 것, 그래요, 그것은 신의 도우심이었습니다.”

 

아르투르 그뤼미오와 클라라 하스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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