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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훈 Aug 26. 2022

젊은 베르테르의 이야기 (4)

말러 교향곡 제1번 <거인>

사람은 하나의 악기이다. 그 악기 위에서 우주가 연주를 한다.
- 말러


제3악장

제3악장은 제1번 교향곡에서 가장 독창적이며 특색 있는 악장입니다. 말러가 초기 교향시 아이디어에 적어 넣은 표제에는 "Callot 풍의 장송행진곡"이라고 적혀있는데 우선 Callot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크 칼로 (Jacques Callot, 1592-1635)는 17세기 프랑스에서 활동한 바로크 판화가로 그의 작품들은 그로테스크한 리얼리즘을 통해 인간의 심리를 유머스럽게 표현하였습니다. 말러는 칼로의 작품 들에서 제3악장의 악상을 떠올렸고, 기괴하지만 날카롭고 통찰력 있게 인간 심리와 내면을 표현한 칼로의 화풍을 음악으로 옮겼습니다.


자크 칼로


자크 칼로의 작품들


제3악장은 팀파니가 토닉(으뜸음: I)과 토미넌트(딸림음: V)를 침울하게 반복하며 시작합니다. 이어서 들려오는 콘트라베이스의 선율은 당시로서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 그 선율은 바로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부르는 동요였던 것이지요. (독일에서는 "Bruder Martin", 프랑스에서는 "Frère Jacques", 영어권에서는 "Are you sleeping, brother John"으로 불리고 있는 매우 유명한 동요입니다) 동요의 선율을 단조로 바꾸어 장송 행진곡으로 사용한 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불경스럽고 충격적이기까지 한 시도였습니다.


Jean-Philippe Rameau - Frère Jacques


그리고 이어지는 음악은 난데없이 경박하면서 어찌 보면 천박하기까지 한 '카바레 풍'의 집시음악이 등장합니다. 이를 위해 말러는 서커스단에서나 볼 수 있는 심벌즈가 달린 큰북을 사용하라고까지 지시하고 있습니다. 3악장의 이런 음악적 모순에 대하여 말러는 "영웅의 깊은 탄식과 더불어 세상의 온갖 저속함, 즐거움과 진부함을 끼어드는 몇몇 보헤미안 연주자들의 가락 속에서 들을 수 있으며 날카로운 아이러니와 모순적인 다성음악이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죽음과는 어울리지 않는 아름다운 선율이 트리오(Trio)에 해당되는 곡의 중간 부분에서 들려오는데 이는 말러가 1악장에서도 인용하였던 가곡집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중에서 제4곡 "내 연인의 푸른 눈동자 (Die zwei blauen Augen von meinem Schatz) "입니다. 특히 인용된 부분의 가사의 내용은 사랑의 상처를 지닌 주인공이 보리수 아래에서 다시금 안식을 찾는다는 내용입니다.


“길 위에 서있는 보리수, 그 곁에서 나는 처음으로 잠을 청했지! 보리수 아래, 그 꽃잎 내 위에 휘날려 주니, 삶이 어떠한 가를 나는 잊어버렸네, 모든 것, 모든 것이 다시 좋아졌지! 그래, 모든 건 다시 좋아져! 모든 것이! 모든 것이! 사랑과 번민, 세상과 꿈!”


말러 -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중 '내 연인의 푸른 눈동자' 교향곡 인용 부분


이로 인해 모든 상처가 치유된  같아 보이지만 음악은 다시 장송 행진곡으로 연결되고 주인공의 번민과 고통이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가곡의 중간 부분에서 들려오는 - 3악장 시작에 사용된 - 토닉과 도미넌트의 반복 리듬도 이런 사실을 뒷받침해 줍니다.


말러가 3악장에서 보여준 패러디들은 극도로 대담한 것이었으며 당시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말러의 삶을 들여다보면 남들과는 다른 독특한 정신적 이데아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시대와 환경 그리고 사건들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말러 작품의 본질에 대한 접근은 그의 정신세계의 탐구와도 같을 것입니다. 말러는 그의 말년에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당대 최고의 정신의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Sigismund Freud, 1856~1939)에게 자주 상담을 받았는데 프로이트의 보고서에 쓰인 말러에 대한 내용은 제3악장에 대한 말러의 정신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말러의 아버지는 아내를 거칠게 다루었습니다. 어느 날 어린 말러가 감당하기 힘든 당혹스러운 상황이 닥쳤고 말러는 집을 뛰쳐나갔습니다. 그런데 골목에서 당시 유행했던 동요 "오! 사랑스러운 아우구스틴"이 아코디언의 선율을 타고 들려옵니다. 말러는 이 순간 깊은 비극과 얄팍한 재미가 자신의 영혼 속에서 동시에 결합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Jones, Das Leben und Werk von Sigmund Freud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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