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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훈 Aug 27. 2022

젊은 베르테르의 이야기 (5)

말러 교향곡 제1번 <거인>

나의 시대가 올 것이다.
- 말러


제4악장

교향곡 제1번 <거인>의 제4악장은 연주시간만 20분이 될 정도로 거대한 규모이며 이후 교향곡에도 보이는 말러 만의 장대한 피날레 양식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단테의 "신곡"에서 따온 초기 표제인 <지옥에서 천국으로>라는 내용이 사실적으로 묘사됩니다.


제4악장 도입부 자필보 


제4악장의 스코어를 보고 있으면 28세 청년 말러의 정신적 고뇌와 희망, 사랑 그리고 그의 세계관이 고스란히 드러나 보입니다. 제3악장 '장송 행진곡'에 연결되어 시작되는 강렬하고 충격적인 제4악장의 도입부는 보통 '지옥'으로 설명됩니다. 특히 독일의 음악학자인 콘스탄틴 플로러스는 도입부에 등장하는 하강 삼연음부의 모티브가 리스트의 <단테 심포니>에 등장하는 '지옥의 모티브'에서 인용되었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러가 왜 3악장과 4악장을 Attacca (쉼 없이 연주하라는 지시어)로 연주하라고 지시했는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3악장에서 보여주었던 말러의 정신적인 혼란과 두려움, 그리고 슬픔이 4악장의 도입부에서 폭발한 것이지요. 그렇기에 3악장과 4악장은 내용적으로도 연결되어 해석하고 연주하어야 합니다.


리스트 - 단테 교향곡 중 <지옥>


일반적으로 많은 음악학자들이 내놓는 제4악장의 해석은 거의 동일합니다. f minor(바단조)로 표현되는 '지옥'의 부분과 D major(라장조)로 대변되는 '천국' 영역의 극렬한 대비를 통한 투쟁과 갈등, 그리고 승리의 스토리입니다. 참고로 서양음악사에서 D major는 성스러운 영역으로 많이 표현되어 왔습니다. (한 예로 헨델 <메시아>의 마지막 곡 '아멘' 코러스도 성스러운 D major로 끝을 맺죠) 이렇듯 말러는 조성의 변화를 통해 자신의 정서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명한 말러 학자 데릭 쿡은 이런 기법을 '조성 심리학 (Key-psychology)'이라고까지 설명합니다. 그래서 4악장은 D major로 향한 음악적 방향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지옥과 천국의 모티브도 근본적으로는 동일하며 장조와 단조의 조성 변화로만 구분 짓고 있어 이것은 우리 삶에서 천국과 지옥은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니며 매우 작은 변화로 구분되어질 수 있다고 하는 말러의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1889년 교향곡 제1번의 부다페스트 초연을 비꼬는 풍자화


말러는 제4악장에서 지옥과 같은 현실에서 천국의 승리를 향한 3번의 시도를 합니다. 이 시도에 쓰인 모티브는 바그너의 <파르지팔> 중 '성배의 모티브'를 인용했다고도 하며 (콘스탄틴 플로러스) '십자가' 모티브라고 불립니다. 첫 번째 시도는 C major(다장조)의 조성과 적은 악기 편성으로 소심하게 나타나는데 바로 꺾여버립니다. 두 번째 시도는 첫 번째에 비해 많은 악기들이 동원된 과감한 시도입니다. 하지만 조성적으로 C major에서 시작하여 D major로 도달하기 때문에 미완성의 승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그너 - 파르지팔 중 '성배의 모티브'


계속되는 음악은 다시 1악장의 도입부로 돌아가서 최종의 승리를 얻는 3번째 시도로 연결됩니다. 개인적으로 이 구성에 대하여 말러 교향곡 제1번이 시간에 대한 '순환적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진정한 천국과 승리가 어디에서 오게 되는가'에 대한 물음과 해답을 동시에 제시해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1악장에서 인용된 가곡의 내용이 비극적 아이러니였음을 기억하십시오) 말러가 진정한 승리를 얻어내는 3번째 시도는 D major의 완전체로 시작되어 찬란하게 끝을 맺습니다. 이 부분에서 말러는 자신의 승리를 자축하듯 호른 주자들을 기립시키고 트롬본과 트럼펫 한 대씩을 호른의 지원군으로 보강시켜 완벽한 피날레를 구축하지요. 어떻게 보면 감정의 과잉 또는 자만심이라고까지 보일 정도의 자신감 넘치는 마무리입니다. 그리고 이런 투쟁 가운데 제2주제에 해당하는 로맨틱한 선율이 두 번 등장하는데 이 부분은 말러가 이 곡을 작곡할 무렵 겪었던 실연의 경험에서 나온 사랑에 대한 감정의 결과물로 볼 수 있습니다. 


말러 - 교향곡 제1번 <거인> 피날레


이렇듯 말러 교향곡 제1번 <거인>은 말러 자신의 ‘젊은 날의 초상’이자 ‘비망록’이며 어쩌면 우리 청춘 시절의 모습일지도 모르는 ‘젊은 베르테르의 이야기’입니다. 


말러 교향곡 제1번 <거인>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 클라우디오 아바도 지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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