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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훈 Aug 28. 2022

바그너의 깜짝 이벤트

바그너 - 지크프리트의 목가

파리 유학시절 한국에서 오신 분들을 모시고 에펠 탑을 올라간 적이 있습니다. 가장 위층의 전망대에서 관람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한 청년이 그곳에 있던 군중들을 향해 큰소리로 말하더군요. “여러분! 잠시 저를 주목해 주십시오. 저는 오늘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증인이 되어 주십시오.” 그리고 한 여인 앞에 무릎을 꿇고 주머니에서 반지를 꺼내며 청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여인은 깜짝 놀라며 기쁘게 청혼을 받아들였고 그곳에 모여있던 군중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그들을 축복했습니다. 아마도 이 청년은 에펠탑 정상에서 사랑하는 여인에게 잊지 못할 프러포즈를 하기 위해 행복과 설렘으로 이벤트를 준비했을 것입니다. 영화에도 많이 등장하는 깜짝 고백의 방식은 오랫동안 로맨틱한 남성들이 선호해온 방법인 듯합니다. 무뚝뚝할 것만 같은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 (Richard Wagner 1813-1883)도 사랑 앞에서는 매우 부드럽고 로맨틱한 사람이었습니다.




바그너의 ‘지크프리트의 목가’ (Siegfried Idyll)는 순수 관현악 작품으로 그의 유명한 악극  <지크프리트>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바그너는 1894년 바이에른 왕 루드비히 2세의 총애를 받으며 뮌헨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당시 제자이며 친구였던 한스 폰 뵐로의 아내 코지마 (작곡가이자 대 피아니스트였던 프란츠 리스트의 딸, 리스트와 바그너는 친구관계)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친구의 딸이자, 제자의 아내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두고 많은 이들이 비난하며 반대했지만 결국 바그너는 24세 연하인 코지마와 결혼하고 슬하에 두 딸과 아들을 낳게 됩니다. 그의  첫아들을 얻었을 때의 바그너의 나이는 56세, 그는 아들에게 ‘지크프리트’란 이름을 지어 주고 그 기쁨을 나타내기 위하여 ‘지크프리트의 목가’를 작곡합니다. 그리고 코지마의 생일인 12월 25일에 이 곡을 선물로 주기 위하여 비밀스러운 이벤트를 준비합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코지마가 모르게 진행되었습니다.


바그너와 코지마


이 무렵 바그너 가족은 스위스 루체른 시에 가까운 트리프시엔에 살고 있었는데 완성된 악보는 12월 4일 제자인 한스 리히터에게 넘겨집니다. 리히터는 악보를 가지고 취리히로 가 그곳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실력 있는 단원들을 선출해 12월 21일 연습을 가진 후 12월 24일 루체른의 ‘호수 여관’의 홀에서 바그너의 지휘 아래 마지막 연습을 은밀히 마칩니다. 그리고 코지마의 33번째 생일인 1870년 12월 25일 (마침 일요일) 이른 아침에 모든 단원들은 바그너의 집에 도착합니다. 단원들은 침실 옆 계단에 조용히 보면대를 놓고 부엌에서 악기를 조율하고 나와 자리에 선 후 바그너의 사인을 기다리기 시작합니다. 이 날 동원된 연주자들은 총 15명이었고 지휘자 바그너는 계단의 가장 위쪽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계단이 구부러져 있어서 가장 아래의 첼로와 콘트라베이스는 바그너의 지휘를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나고 오전 7시 30분, 바그너의 지휘에 따라 이 사랑스러운 음악이 연주되었습니다. 그때까지도 영문도 모르고 아들과 함께 자고 있던 코지마가 이 음악에 얼마나 기뻐하며 행복했을지는 굳이 글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지크프리트의 목가>의 깜짝 초연


리하르트 바그너는 음악 외적으로 많은 논란을 일으킨 인물입니다. 과대망상적 사고와 비도덕적이고 이기적인 그의 인성은 항상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위해 작곡한 <지크프리트의 목가>는 바그너의 순수한 사랑의 표현으로 연주하고 들어야 하는 음악입니다.


바그너와 코지마, 아들 지크프리트

바그너 - 지크프리트의 목가

베를린 필하모닉 카라얀 아카데미 오케스트라 / 코넬리우스 마이스터 지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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