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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훈 Sep 02. 2022

마지막 노래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제6번 “비창”

끝내 가질 수 없었던 원초적 슬픔의 극복


차이코프스키의 마지막 교향곡 제6번은 그의 '죽음을 위한 레퀴엠' (죽은 자를 위한 미사)이라는 평이 지배적입니다. ‘비창 (Pathéthique)’이라는 부제는 동생 모데스트가 제안하여 적어 놓은 것인데 어둡고 침울하게 시작하는 1악장에는 러시아 정교의 레퀴엠이 인용되어 있고, 웅장하고 화려하게 마무리하는 다른 교향곡들과 달리 조용하게 사라지며 끝을 맺습니다. 마치 자신이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을 예견하듯이 말이죠.

캠브리지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는 차이코프스키 (1893년 6월, 사망 5개월 전)


제6번 교향곡의 초연은 1893년 10월 28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차이코프스키의 지휘로 열렸는데 초연 당시 리허설을 참관했던 콘스탄티노비치 대공은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차이코프스키의 지휘는 대체적으로 동작이 큰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는데 평소와 달리 소극적으로 지휘를 하는 모습이 매우 이상했다"

특히 서서히 소리가 사라지는 4악장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아예 지휘봉을 내려놓고 고개를 숙인 채 꼼짝 않는 모습이 무척 낯설었다고 하는데 대공은 이 곡이 차이코프스키 본인의 레퀴엠이라고 바로 직감했다고 합니다. 또한 당시로서는 너무나 예외적인 곡의 끝맺음이 차이코프스키의 자살설을 뒷받침하는 강한 증거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차이코프스키는 이 초연이 있은지 9일 후인 1893년 11월 6일, 53세의 일기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납니다.


영면에 든 차이코프스키, 1893년 11월 6일


그렇다고 교향곡 제6번이 비극적인 내용들 로만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닙니다. 1악장에는 차이코프스키가 가장 좋아했던 오페라인 <카르멘>의 “꽃노래”의 선율이 너무나 아름답게 차용되어 있으며 2악장은 차이코프스키 특유의 우아한 왈츠의 선율이 4분의 5박자의 리듬으로 진행됩니다. 그리고 빠른 템포의 3악장은 죽음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게 에너지가 넘치고 삶의 절정을 향하듯이 질주하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특히 웅장하고 화려한 종지는 마치 전곡이 끝난 것 같은 느낌을 주는데 이에 많은 관객들의 이른 박수가 터져 나오는 부분이기도 하지요.


교향곡 제6번 '비창'에는 차이코프스키가 말했던 ‘완전한 인간’에 대한 열망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끝내 가질 수 없었던 원초적 슬픔의 극복이 담겨 있는 그의 마지막 노래일 것입니다.


수천 명이 운집한 차이코프스키의 장례식

[관련 칼럼]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제6번 '비창'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 / 정명훈 지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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