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밀고 당기는 기술 / 3) 아쉬운 여운
* 피천득의 인연 (지식채널e-EBS)
https://www.youtube.com/watch?v=boPXF_jEi-k
피천득 선생의 수필은 중 아니 필자에게 있어서 생애 최고의 수필이 중 하나가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어찌 옛 시대에 이렇게 섬세하고 로맨틱한 수필이 또 있을까 생각을 한다. 또한, 이렇게 짧은 분량의 글을 읽으며 삶에 있어서 다시금 생각해 준 귀감이기도 하다. 처음 이 글을 접할 때는 급한 상황에서 만나선지 대충 읽었다. 군대 있을 때 고작 이등병에게 글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화장실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피천득 선생이 수필을 읽고선 너무 상상에 빠져산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선생님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고 내가 한 여인을 7년동안 그리워하면서 늘 생각해 온 것이 바로 피천득 선생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진정 보고 싶은 사람을 그리면서 산다는 것은 행복하지만 때로는 애처롭고 버티기 힘든 것을 알게 되었다. 소원이 있다면 나 역시 피천득 선생님처럼 몇 번이나마 그녀를 봤으면 하는 갈망이 컸다. 시대를 뛰어넘고 피 선생님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게 인연이라는 게 말로 표현하기 쉽지 그냥 만나는 게 아님을 알게되었다. 그 깊이를 알기에는 시간이 걸리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연. 적어도 20대 초반에는 몰랐다. 당연히 만나던 사람이 같이 학교를 다니는 사람들이 대체적이기에 특별한 만남이란 없었다.
1920년대 말. 피 선생님이 17세에 일본에 넘어가 하숙할 때, 옆집 초등학교 1학년인 아사코와 만난 인연. 그와 함께 나눈 추억. 특히 학교 교실에서는 신을 벗고 신발장의 하얀 운동화(실내화)를 보여줬던 그 기억을 하고 있다. 헤어질 때 볼에 입을 맞추며 아쉬워해서 반지를 준 아사코. 그 모습이 커서 잘 어울리는 말에 내심 얼굴이 더워졌다고 한다. 피선생님은 그런 아사코를 못 잊다가 10년 후 다시 만나게 된다. 이제는 처음 만난 피선생의 나이가 된 아사코. 그녀와 함께 같이 간 교실. 다시 10년 전 처럼 신발장이 어디에 있냐고 물으니 모르는 듯, 그저 신을 벗고 들어가서 잃어버린 우산을 찾은 것이다. 그렇게 악수를 하고 헤어졌고 그렇게 10년이 다시 지나서 제 2차 세계대전 후 해방이 된 대한민국. 에 걱정하여 찾은 일본. 이미 그녀는 일본인 2세와 결혼하였고 그저 짧게나마 절을 한 게 고작이라서 아예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추억의 서랍을 정리하고 있다. 마치 한 편의 소설의 에피소드를 보는 듯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것이 우리 인생에 누구나 한 번 쯔음, 있을 듯한 인연이기에 더 애절한 것이다. 누구나 이러한 인연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말이 있다. 1번 만나는 것은 우연, 2번은 인연, 3번은 운명. 그렇게 피 선생님은 아사코를 3번 만났기에 운명일까? 글쎄, 그 것은 잘 모르겠다. 적어도 한국과 일본이라는 먼 거리에서도 이렇게 기억해주고 찾아와 주니 더 애절한 듯하다. 더군다나 이 수필의 마지막 글귀가 인연이라는 게 뭔지 다시금 생각나게 해주는 문장이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그렇다. 어쩌면 3번째는 만나지 않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그 기대에 따른 실망도 컸기 때문일 것이다. 이 수필이 모든 국민들이 다 아는 가운데, 피 선생님이 살아계시기 전 마지막 KBS에서 한 방송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아사코와 피선생님을 다시 만나게 해주는 것이다. 이는 피천득의 '수필'이 아직 끝나지 않고 그 4번째 만남을 가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저 가슴 속으로 추억으로 남기를 원했다. 어쩌면 이렇게 늙고 초라한 모습보다는 이 젊은 날의 아릿따운 이미지로 남고 싶어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취재진은 일본 특파원을 통해서 '아사꼬'의 젊은 모습의 사진을 찾은 것이다. 아사꼬는 이젠 피 선생님의 인연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인연이기도 한 사람이다. 취재진의 의하면 아사코의 친구가 초등학교 부터 줄곧 대학교 동창인 수녀를 통해서 알게 된 계기였다. 그렇게 방송에서 아사코의 초등학교 5학년 모습, 중학교, 대학교 모습을 비추어 주었다. 특히나 대학교의 모습에서는 선명히 그려졌다. 아마도 피 선생님이 2번 째 만났을 때의 모습이 역력히 채워졌을 법도 했다. 사진 속 아사코의 모습은 다른 이들과 달리 여러명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서구적인 미인이었다. 특히나 높은 콧날을 지녔다. 녹화 전에는 이같은 사실을 몰랐던 피 선생님께선 "도대체 어떻게 찾았느냐"고 놀라워했다. 사실상 수필은 진실성이 묻어나야 하지만, 아침에 아이를 낳았다고 '아사코'라고 한 대목은 익명성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다르게 기재한 것었기 때문이다. 방송을 하던 2002년 당시 83세로 '아사꼬'는 미국에서 잘 살고 있음을 말해줬다고 한다.
진행자가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풀고 싶지 않으십니까"
라고 묻자, 피 선생님께선
"그럴 생각 없습니다. 살아있다는 소식만으로도 기쁨을 줍니다. 아~살아 있군요"
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짤막한 답변으로 감정을 자제한 것으로 보인다. 선생님께서는 후에 사진을 받을 수 있겠냐면서 아쉬움을 표의하였다.
피천득 선생처럼 어쩌면, 우리 모두 다 이루지 못한 인연을 다시금 떠오르면서 애틋함을 안고 살지는 않는가? 이 날의 피천득 선생은 상호간의 사랑을 하지 못했던 게 너무나 후회스럽다면서 자신의 인생을 아쉬워했다. 한 평생! 제대로 사랑을 해보려고 노력했으나 그렇지 못함에 더 후회스럽다고 했다. 선생님은 왜 자기의 유독 아내만큼은 수필에서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오로지 아사꼬와 어머니 그리고 딸 서영이만 빼곡히 채우고 있다.
"내 일생 두 여성이 있다. 하나는 엄마이고 하나는 서영이다"
그렇다면 실례이기는 하나 아내와의 사랑은 완벽하게 이루지 못한 것일까? 가슴 한 켠에 그렇게 애절하도록 '아사꼬'의 정신적 추억이 너무나 크게 자리 잡아서 그러한 것일까? 세월이 지나서 피 선생님이 그리는 그 '아사꼬'의 마음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
* 피천득 선생에게 아사꼬란?
1) 소유 : 현실에서 이루지 못하기에 -> 꿈에서 나마 이루고 싶은 사랑
2) 절제 : 젊을 날에 추억이 아련하여서 -> 지금으로는 그저 추억으로 남고픈 것
3) 인연 : 몇 십년의 터울로 세월이 흘러도 -> 서로 간의 인생에 3번 스친 나그네
피천득 선생에게는 이상적으로 젊은 날의 아사꼬란 소유를 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어서 단념하는 것에 그쳐야 할 인연이기도 하다. 이토록 사람은 소유하고자 하는 본능이 클 수록 기대를 하는 것. 헌데 그러한 큰 욕망어린 기대에 채우지 서운함이 크게 자리잡는 것. 그에 따른 못한 것에 대해 미련이 많이 남는 것이다.
그가 그토록 바라던 사랑. 어린아이같은 맑은 영혼의 순수함을 이해시킬 만한 상대 대상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아사꼬'는 그나마 버지니아 울프의 책을 논할 정도로 문학의 대한 조외가 깊으니 영혼의 짝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영혼의 짝이 한국전쟁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그의 꿈꾸던 행복처럼 '아사꼬'와 단 둘이 뾰족지붕에 뾰족창문에 살았을 것이다. 한국전쟁으로 인해서 아사꼬는 맥아더 장군 곁에서 번역일을 하다가 만난 그의 남편과 혼인하게 되었는데 그 게 참으로 애처롭다. 소유 할 수도 있었는데, 그 놈의 한국전쟁이 두 사이를 갈라놓게 된 계기이다. 남북간의 형제가 아니라 한 인생에 있어서 인연마져 갈라 놓는 전쟁의 아픔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더 애절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