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싹트는 계기 / 1) 감정 확인
감정을 듣는 것보다는 감정을 상대가 알아채서 확인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사랑은 언어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으로 알아채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전 가수 '5Tion'의 'More than word'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었다.
이에 또한, 일찍이 노자(老子) 선생도 같은 의미를 이야기 한 적이 있다. 바로 노자의 도덕경(道德經) 1장에서는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想道)'라고 적혀져 있다. 즉, 도를 도라고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도가 아니라고 이야기 했다. 이는 무슨 뜻이랴? 감히 사랑이라는 위대한 감정을 아무 생각없이 그저 습관화 되어서
"자기야~ 사랑해"
라고 하는 이가 있을 것이다. 어찌 그 위대하고 세상의 이치와 섭리가 깃든 에너지원을 단편적으로 그 의미로 몇 초도 안 되서 감히 표현할 수 있을까? 이 표현에는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물론 때에 맞춰서 해야 할 상황이 있지만, 너무 이러한 표현이 남발이 되는 것은 진심이 아니라 가식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은 혀로 하는 '사탕발림'이 결단코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살면서 숱한 대화를 한다. 그게 머리에서 오랫동안 작용해서 이성적으로 하는 말도 있고, 혹은 정서적인 감동이나 감수성으로 하는 말이 있고, 그냥 일반적인 생각 없이 나오는 혀로 말하는 경우고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말로 하는 것은 너무 난잡할 정도이기에 그 속에서 뼈에 사무치는 명언이 다소 사라지는 시점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우리는 살면서 인간관계를 너무 대화로만 풀어서 해결하려는 것이 있다. 정보화 사회 문자 혹은 전화 또한 이메일이나 방명록이 그렇다. 하지만 진정한 표현은 아마도 느낌과 진정성이 아닐까? 대화의 깊이를 따진다면 입으로 하는 것은 1차원적인 것이다. 대화에 따른 신체기관의 깊이 수준은 아래와 같다. 여기서 대화란 단순히 '혀'의 기관만이 작동되지 않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 대화의 단계에 따른 신체기관 (깊이 수준 순)
1) 혀 -> 2) 귀 -> 3) 눈 -> 4) 행동 -> 5) 마음 -> 6) 영혼
대화를 단순이 혀와 혀로 하는 게 아니다. 이는 통상적인 인사치례와 다름이 없다. 또한, 자신의 할 말을 수두룩하게 하는 것이다. 상대방 배려보다는 우선,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는 데 그저 급급한 것이다. 보통 이 혀로만 대화하는 것은 상대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이보다 좀 더 마음을 열어 배려하는 것이 바로 귀다. 귀로 대화한다는 거 자체가 이상하게 여길 수 있겠지만, 이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보다 상대방의 뜻을 귀담아 듣고자 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는 자신의 의견보다는 상대방의 의견을 더 존중히 하려는 취지가 있기도 하다. 아는 사람은 들을 줄 알기에 귀로 하기 마련이다. 특히 귀로는 그 사람의 목소리에 어떠한 감정이 실려 있는 지 알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상대방과의 혀로 정보체계를 넘어서 그 이상의 목소리에 감정신호까지 파악이 가능하다.
또한 그 이상은 눈으로 말을 하는 것이다. 어찌 말이 눈으로 하는 것인지?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나 사람이 말을 통하지 않는 애완동물과는 눈으로 그 신호를 보내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인물로 호주의 동물과 눈으로 대화를 한다는 심리치료사가 있다. 그녀는 동물과 눈을 마주대하면서 눈으로 자신의 감정을 보낸다고 한다. 그렇다. 눈으로는 그 사람의 표정까지 읽을 수가 있다. 그래서 혀로는 단순한 정보체계와 귀로는 그 사람의 표현하려는 감정신호의 목소리가 있지만 그 이상의 숨겨진 표정으로 보면서 그 안의 뜻을 더 헤아릴 수가 있다. 특히나 좋아하는 사랑을 조금씩 전하려는 이들끼리는 그 짜릿한 눈빛으로 알 수가 있다. 굳이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그윽이 쳐다보는 눈빛에서는 다른 이와 다른 무엇의 따스함이 발사가 되기 때문이다. 이 눈빛으로 대화하는 경우는 말로 하지 않아야 할 때, 간간히 나타난다. 특히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사랑의 대한 다른 표현이며, 시끄럽고 거리가 멀기에 대화하는 또 다른 기관이다. 눈! 그 마음을 조금 헤아릴 수 있는 창이기도 하다.
그 보다 더 높은 것은 역시 행동이다. 눈보다 행동이 더 그 뜻을 헤아리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스킨쉽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며 위험한 상황에 몸으로 막으려는 행동도 여기서 보일 것이다. 그리고 좋아않는다면 하품을 한다거나 시계를 보거나 딴청을 피게 되겠지만, 좋아한다면 다른 표현이 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너무나 행동에만 치우쳐서 스킨쉽만 바란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는 사랑의 목적성이 아니라 개인의 쾌락만족성에 지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상대방도 충분히 자신을 정서적 인격체가 아니라 유희적인 수단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 점을 주의해야 한다. 적어도 '혀 -> 귀 -> 눈'으로 대화를 한 뒤에 행동으로 표현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 보다 더 대화의 깊이가 있는 것은 당연히 마음이다. 행동과 마음은 천지 차이다. 혀, 귀, 눈, 행동으로는 모든 메시지는 그 정보의 전달을 속일 수가 있지만, 마음은 다르다. 물론 마음의 창이 눈이나 행동으로 읽혀지는 경우가 많으나 이를 익숙하게 훈련으로 하면 충분히 눈과 행동으로도 속일 수가 있다. 마음으로 대화를 한다는 것은 다른 기관과 다르게 그 뿌리가 심장에서 느껴져 뿜어져 나오는 것이다. 그 마음이 혀, 귀, 눈, 행동으로 전해서 오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 쉼쉬는 동안 모든 정서적, 심리적인 깊은 내면이 있는 곳. 바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 마음은 사람 뿐 아니라 동물에서도 그 뜻을 헤아릴 수가 있다. 대체적으로 친한 친구와 부모, 가족 간의 대화가 여기까지 다다르게 될 것이다. 그 이상의 대화는 거의 없다. 삶의 있어서 최고점이 이 마음으로 하는 대화다. 굳이 이야기 하지 않아도 혀와 귀 없이 아니 더 나아가 눈을 굳이 쳐다보지 않아도 그의 행동이 달라져도 그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제 아무리 식구 하나가 식물인간이 되어도 그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되는 것이 마음이다. 그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상당히 인간으로써 고귀한 의사소통이다.
마음보다 더 한 단계. 그리고 최대치가 바로 영혼의 대화다. 그래서 '소울메이트'라는 단어가 생긴 것이다. 사랑의 표현을 영혼으로는 못할망정 눈이나 행동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영혼과 마음의 차이는 구분하기가 어렵고 어떤 면에서는 비슷한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은 심장에서 울리는 심금이라면 영혼은 그 이상의 혼의 떨림이다. 이는 동물에서 나타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동물은 육체와 감정과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영혼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대화는 사람과 사람이 아니라 사람과 신의 대화를 영혼의 대화라고 할 수 있다. 사람과 사람간의 마음까지 대화가 되지만 영혼까지 대화가 되려면 서로 기도를 통해서 얻어지는 초월적인 부분인 셈이다. 이는 종교적인 부분까지 이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영화 '클래식'에서는 손예진이 어떻게 조인성의 반응을 알아 챈 것일까? 바로 '행동'이다. 그의 행동으로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다시금 확인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말로 한 것이다. 여기서 말은 남자의 '혀'와 여자의 '귀'가 작동을 했지만 그 와중에도 그들의 표정이라 던지 감정의 떨리는 목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둘 만의 그윽히 바라보는 '눈' 이 모든 것 신체기관이 다 같이 작용됨을 알아야 할 것이다. 사랑을 하면 알 것이다. 상대가 나에게 대하는 태도가 일반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그게 목소리나 눈빛이나 경청의 자세나 나와의 대화하는 거리, 걷는 거리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