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1-2) 은반 위의 공주처럼

7장. 둘만의 추억거리 / 1) 함께한 놀이

by 휘련

1-2) 은반 위의 공주처럼, 빙판 위에 스케이팅 놀이



나이를 먹을수록 추억이 더 깊어져 간다. 흐리고 희미해진 기억 속에서 잿빛 머리 속 영상의 프레임도 돌다가 끊기기 마련이다. 그나마 더 기억하고 싶은 사람이 많은 영상을 돌리고 돌렸기에 오래 기억이 남는다. 암기가 되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는 기억력이 더 좋은 사람이 때로는 이별 후에 손해를 보게 된다. 그만큼 잊혀 지지가 않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좋은 추억으로 자리 잡는 또 하나의 추억이 있다. 지금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지만 아니 만나는 게 좋을 법 하다. 당시에는 그녀가 아니면 안될만큼 좋아했었다. 서서히 사랑을 찾고자 한 그 기대심리가 부풀었었던 시절. 나의 26살에 그녀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하이얀 천사였다.


내가 졸라서 겨울에 잠실 놀이동산에 있는 실내 스케이팅을 탔다. 그녀는 사실 잘 못타는데 내가 같이 가자고 졸랐다. 적어도 이러한 과정을 겪어야 사랑이 물 오르른 다고 여기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신발 끈도 일일이 묶어주면서 그녀를 챙겨주었다. 위태위태한 곡예처럼 스케이팅 신으로 카페트를 오고 가는 것도 꽤나 힘이 들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놀이동산 사람들 사이에 평일 저녁에 갔기에 그리 혼잡하지 않았다. 소실적 조금 탔기에 그 감각으로 나는 얼추 재미있게 스케이팅을 즐겼으나 그녀는 정말 탈 줄 몰랐다. 그녀는 때론 주섬주섬하면서 기웃기웃하기도 하며, 그러다 이내 나풀나풀 거리다가 마침 쓰러지기 일쑤였다. 그렇기에 곁으로 다가가서 일으켜 세웠고 그녀가 넘어지려던 찰나 잡다보니 어느 새 은반 위의 블루스가 되어버렸다. 그러다가 그녀가 내 귓가에다가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내 옆에서 늘 버팀목이 되어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전 이대로 쓰러지니깐"


이에 나는 덧붙였다.


"여기서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에요. 여기서 만큼은 당신은 은반 위 공주에요"


그렇다. 그녀는 좀 우울증이 심해서 감정기복이 잦은 편이다. 그래서 늘 삶을 포기하려는 순간이 많았다. 그래서 그 위안을 남자친구로 기대려는 습성이 있었던 것이다. 심각한 정신질환은 아니지만 처음엔 이해 못 했으나 차츰 그 혼미한 정신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당시 그렇게 내가 손을 잡고 스케이팅을 가르쳐 줄 때, 그녀는 세상에 그 어떠한 근심과 걱정을 다 내려놓고 이 은반 위의 또 다른 세상 속 공주마냥 즐겁게 놀았다. 여기서 만큼은 누구보다 예쁘고 누구보다 재밌고 행복한 사람이라고 한 말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스케이팅을 밖으로 박차고 나가면 다시 지긋지긋하며 숨소리 하악 하악 쉬어야 할 공간이지만 누구보다 현재 이 놀이에서는 현실을 잠시나마 잊는 엔돌핀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연애를 하면서 놀이

: 때로는 지긋지긋한 현실을 잠시 잊고

-> 새로운 세상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두 주인공이 된 최면같은 것


그러다가 그녀의 스케이팅 끈자락이 다소 헐겁게 풀렸다. 이내 서 있는 그녀를 마자보다가 나는 공주를 떠 받들어 모시 듯이 무릎을 꿇어 그녀의 두 스케이팅 끈을 묶어줬다. 무엇보다 말로만 공주처럼 위한다고 한 게 아니라 실제로 공주로 대우를 해 준 것이다. 결국 그 결과 그녀와 나는 마음이 잘 통한 사이가 되었다.


몇달이 지나 그녀의 정신적인 고통을 함께 극복하려고 노력했으나 그녀가 지쳐서 거절을 했다. 간간히 소식을 묻고 잘 지내는 지 여부만 물을 뿐이다. 그 때 가장 아름다운 상황에서 헤어졌다면 아쉬운 여운으로 끝을 마무리 했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지금봐도 별 설레임이 없기는 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 시점 그 상황에서 그녀를 다시 봤다면, 나는 그녀에게 전처럼 공주같이 대했을 것이다.


그녀 또한 은반위의 스케이팅 공주의 느낌! 아마도 잊지 못할 것이다. 우리 둘은 주연, 스케이팅 같이 타는 이들은 조연 그리고 놀이동산 지나가는 사람은 단역이라고 했던 그 말. 아마도 그녀 또한 기억하고 있을 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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