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그리움 / 2) 옛 추억으로 돌아가기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도 그러한 것일까? 견우와 그녀. 엽기적인 그녀는 영화 속에서 단 한번도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직녀라고 추정할수도 없다. 그저 엽기적인 그녀라고 소개하는 수 밖에 없겠다.
견우와 엽기녀 둘이 지하철에서 난간에서 만나게 된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뒷테가 끝내주는 그녀. 하지만 그녀를 조심스레 옆에서 지켜보니 그 뒷모습과 달리쾡한 술에 탄 그녀의 응시하지 못하는 초점을 보곤 견우는 섬뜩 놀랐다. 이에 지하철이 와서 탔고, 술취한 그녀가 지하철에서 앉아있던 가발 쓴 노인에게 토하는 게 아닌가? 그걸 옆에서 지켜보던 견우 제 아무리 이뻐도 저건 아니다 싶어서 지켜보는 데 그녀는 너무 만취되어 견우에게 '자기야'라는 말을 한 것이다. 이에 승객들이 남자친구가 나 몰라라 한다며 노인의 가발을 빼앗아 일일이 토를 닦아주는 수고를 하면서 그렇게 서서히 알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상당히 엉뚱하다. 자기가 놀아달라고 하면서 제 멋대로 하기 일쑤다. 대학교 수업 중간에 합당하게 빠져나오기 위해서 견우를 불러 산부인과에 잠시 들리겠다고 심한 거짓말을 하면서 나오는 여인이다. 지하철에서 행인이 왼발과 오른발로 맞춰서 견우의 뺨을 때리는 데 열을 올리며, 그녀가 맞을 때고는 연약하다면서 앙탈을 부른다. 또한, 물에 깊이가 궁금하다면서 견우를 빠뜨리면서 실험을 하기 일쑤며, 발이 아프다면서 견우의 운동화와 그녀의 하이힐을 바꿔 신으면서 캠퍼스 전경을 뛰면서 나 잡아 봐라를 하면서 논다. 또한, 얼마나 강심장인지 총을 든 탈영병을 만나도 별 달리 놀라지 않으며, 오히려 그 탈영병에게 사랑의 카운셀러가 되어서 조언해주며, 다시 복귀하게끔 도와주는 여자다. 지하철에서 그녀를 찾은 견우. 지하철 방송실에서 반가히 안다가도 왜 함부러 안냐면서 선방으로 주먹을 던지는 그녀. 싫은 행동을 골라서 하지만 절대적으로 싫어할 수가 없는 매력녀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둘은 짧게 만났지만 해 놓은 추억거리가 많다. 그렇기에 둘은 함부러 잊혀져서는 안되는 사이이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견우 외에도 늘 잊고 지낸 이가 가슴 속 깊이 담겨져 있다. 그래서 견우가 아무리 잘해도 그 안으로 들어올 수가 없다고 한다. 그녀는 아직도 아련한 추억 한 켠에서 사는 여자다. 그걸 이겨볼려고 견우와 만났으나 그 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실제로는 2년후에 다시 보기로 했으나 여자는 1년 후에 오게 되었다.
만난 용기가 나지 않아서다. 그래도 그녀는 1년 후 바로 그날에 온 것이다. 혹시나 하고. 하지만 그는 오지 않고 어떠한 노인네가 온 것이다. 그리고 그 노인에게 견우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어느 청년이 이 나무에서 만나기로 한 것인데 이 나무가 벼락에 맞아 2조각으로 나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비슷하게 생긴 나무를 구해서 여기다가 심은 것이라고 말해준 것이다. 즉, 이 나무는 당시 나무가 아니다. 그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극복한 것이다. 근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1년이 지나도 견우가 올 수 있을 법한데 오지 못한 건 아쉬울 뿐이다.
그녀는 이렇게 대답한다. '다시 만날 운명이라면 만났을 거라고' 하지만 그 듣고 있던 노인은 다르게 이야기 한다.
"운명이란 노력한 자에게 인연의 다리를 놓아주 것과 같은 거야"
라고 말한다. 그 노인의 말처럼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최대한 노력한 자에게 하늘이 주는 선물인 셈인데, 이 말은 참으로 심오하다. 우리는 보통 사랑을 감나무에서 감 떨어지듯이 기다리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렇게 입을 벌려서 떨어지면 얼마나 좋으려나 하지만 그 감이 만일에 썩은 감이라면 어쩌하랴? 다른 빛깔 좋은 감이 옆에 떨어졌는데 못 받아먹어서 아쉬워 해야 하는가?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게 바로 사랑이다. 사랑하려면 최대한 노력을 해야 한다. 물론 노력해도 안 되는 것도 사랑이다. 하지만, 노력해서 얻을 수 있다는 기대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그 마음이 하늘도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 그 노력하는 불꽃같은 마음씨에 딱딱한 얼음같은 상대도 녹아버리게 될 것이다.
옛 사랑이 기억되는가? 전화보다는 아니 방명록에 말로 다시 만나자고 하는 것은 어찌보면 인간의 억지스러운 모습일 것이다. 만일 인연이 된다면 노력을 해서 이렇게 연락없이 만나는 것. 아마 하늘이 그 노력에 감탄하여 연을 닿게 할 것이다. 다시 사랑을 하자는 구차한 것이 아니라 그저 추억 속에 한 켠의 사람을 다시금 만나서 회포를 푸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는 만남이다. 그간 잘해주지 못했던 그 죄의식. 가슴 한 켠의 응어리로 지었던 트라우마! 그 내적치유를 할 수 있는 만남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연락을 해서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원래 알고 있는 연락처가 아니라 잃어버렸는데 사람찾기로 찾았다던지, 친구의 친구를 통해서 찾았다면 상대도 고마울 것이다. 휴대폰의 연락처 한 켠을 끄집어내서 순간적으로 누른 게 아니라 상대를 찾고자 하는 마음씨에 놀랄 것이다.
물론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는 견우는 젊은 차태현을 대신하여 늙은 견우가 엽기적인 그녀 곁으로 온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절대적으로 견우라고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영화를 유심히 보는 사람은 알 것이다. 그리고 떠나는 할아버지. 그 노인이 사라지고 그녀는 추억에 잠기게 된다. 영화를 자세히 보면 나무 뒷 편에 먼 하늘에서 UFO가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 그 노인은 바로 50년 후의 견우 일지도 모른다. 아니 견우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 장소에 나온 것일까? 아마도 옛 사랑이 1년 후에 왔는지 너무나 궁금해서 매년 그날의 시간을 맞춰서 확인을 했는지 모른다.
확인을 하고 떠난 노인 견우의 마음은 어떠할까? 뿌듯하지 않았을까? 50년만에 본 옛 사랑의 아련한 젊은 모습도 보고, 그녀의 따스한 속 마음도 알고, 자신을 기억해주고 있다는 마음. 그 넓은 마음의 호수에서 견우는 흥겹게 물을 마신 것이다. 마치 목마른 사랑의 해갈을 만끽하며 떠나는 것과도 같다.
사랑의 그리움은 노력으로 다시 재회를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물론 두 남녀 모두가 같은 심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일방적으로 한쪽에서 불균형스러운 만남을 원한다면 그 것은 추억 속에서 살고 있던 모습보다 못할 수도 있기 마련이다.
* 엽기적인 그녀 (신승훈 I Believe)
https://www.youtube.com/watch?v=enO5vBVTsS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