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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장] 3-1)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13장. 이벤트로 환심사기 / 3) 여러 사람 축복 속

by 휘련


3-1)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1998) - 만인의 축복


영화를 잠시 떠나서 대 스타 여배우 고소영과 이제 막 비트로 가수에서 연기자 변신의 진가를 인정받아가는 임창정. 이 둘의 어울리지 않는 신분으로 그려낸 영화. 하지만 한국판 '노팅힐'과 같은 상황으로 이 말도 안 되는 소설처럼 이루어져서 말 그대로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이라는 영화의 제목을 작품명으로 하고 있다. 사랑으로 모든 걸 이겨내고 극복한 너무나도 멋진 내용의 이야기다. 중요한 것은 누가 누구랑 해피엔딩이냐도 있지만 어떻게 극적인 상황을 이루게 한 것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기막힌 상황. 극적인 역전의 스포츠 같은 느낌. 최고의 감동과 많은 이들의 환호와 갈채 속에서 일구어낸 이벤트가 아닐 수 없다.


한 여인이 있다. 아름다운 외모의 여대생이다. 그녀는 현주(고소영). 그리고 그녀를 주시하는 한 남자 범수(임창정)이 있다. 이 둘은 우연히 횡단보도에서 보게 된다. 어느 날 가로수에 차를 받아버린 현주는 어쩔 줄을 모른다. 이에 의경 중 교통법규 관련된 업무를 하던 범수는 그녀가 무면허임을 알게 된다. 하지만 사랑하고 싶을정도로 예쁜 현주를 보고 함부러 딱지를 뗄 수가 없었다. 그는 특유의 자상함으로 그녀를 인근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조용히 T코스와 S코스를 연습시켜준다.


한 남자는 야구선수가 되는 꿈을 접고 야구심판이 되려하고 한 여인은 연기자의 꿈을 가지고 있다. 둘은 그렇게 꿈과 소망을 나누다 가까워졌다. 그렇게 둘은 연애편지 비슷하게 하면서 연인처럼 되어갔다. 그리고 어느날 현주에게 당당히 고백을 하려는 범수. 하지만 현주는 유학을 하겠다고 말을 해버렸다. 그렇게 둘은 헤어질 수 밖에 없었다. 제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 현실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어른들이 우스게 소리로 하는 말 '사랑이 밥을 먹여주냐'라는 말이 아마도 일 리가 있는 듯, 그들은 각자의 꿈을 향해서 사랑을 잠시 고이 접어야만 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고, 범수는 극도의 고통을 참으며 산에서 득음을 했다. 그리고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장점을 가지게 되었다. 이 것이 훗날 사랑에 필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한편 유학을 간 현주는 어느 덧 스타가 되어버렸다. 배우로써 이제는 한 층 거듭난 그녀는 사실상 라면회사의 젊은 사장 지민(차승원)에게 적극적인 약혼을 신청받게 된다. 하지만 TV속의 화려한 여인과 이미 거리가 먼 범수는 자신의 사랑을 고이 접는 게 아니라 아예 끊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이 되었다. 그녀는 이미 너무나도 화려한 신분의 사람이며, 자신은 초라하기 짝이 없는 신세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사정으로 인해서 서민들 사이에 잠시나마 반겨주는 여인이 바로 그녀이다. 어느 날. 범수는 주변 친구들과 술자리를 하다가 유하림의 대하여서 이야기 나오고 실제로 그녀를 부르자 다들 놀라워했다. 하지만 그렇게 알고 지내는 사이이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두 사람이 결혼을 한다는 것은 아마도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가능할 법하다.


유하림이 된 현주는 더는 이렇게 서민들 사이에 끼면서 놀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이미 날개를 단 공주다. 그녀는 자신을 위해서 기다려줄 부와 명예가 잔뜩 깔려져 있다. 어렵게 얻어버린 이 부귀영화를 한 남자의 사랑으로 인해서 놓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내용이다. 굳이 이야기를 하지않아도 계산이 되는 공식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현주는 사랑을 원한다. 자신이 잘 났을 때가 아니라 비록 연기자 지망생이었을 때도 좋아해줬던 범수가 그저 고맙기 그지 없다.


그러다 거의 기자들에 있어서 라면 사장인 지민과 유하림의 결혼설이 스포츠1면에 나올 것으로 추정되면서 유하림이 점점 멀어져만 갔다. 둘이 이제는 만날 일이 없는 듯 하다. 하지만 마지막 그들에게 있어서 기회가 찾아온다. 아마도 하늘이 제발 마지막 알아서 잘 해보라는 듯 준비해 놓은 밥상이다. 중요한 것은 이제 선택은 이들이 하는 것이다. 그들은 프로야구 경기 시구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처음으로 들어선 범수의 주심에서 만난 첫 연예인이 시구자가 바로 유하림이다. 창정은 업무적으로 시구를 하라고 한다. 시구는 어쩌면 별 의미가 없다. 둘이 사이는 애매하다. 이 시구를 던지고 현주는 다시 자신이 기다리는 부귀영화 속으로 갈 것이며, 범수는 그러한 그녀를 애타게 아쉬워 할 것이다. 이는 이미 예정된 길인 셈이다. 이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작정 사랑하니 가지 말라고 할 수도 없다. 범수는 프로야구를 진행해야 할 임무를 맡고 있는 심판이며, 현주는 게스트로 와서 시구를 던지고 자신이 바쁜 스케줄에 몸을 맡겨야 할 스타다. 둘이 아마도 모르긴 해도 각자 인생에 있어서 더는 만날 수 없는 구조다.




그녀가 힘없이 범수의 눈치를 보며 시구를 했다. 그리고 조용히 이내 맘을 추스리면서 서서히 경기장 밖을 빠져나오기 전에 현주가 얘기를 한다.







"48번째 편지 잘 받았어요"


하면서 그 편지를 건네주고 온다. 그 편지를 보는 범수. 지금 '플레이볼' 외쳐서 경기를 시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순간. 평생 잊을 수 없을 순간. 꼭 해야 할 순간이 머릿 속에서 맴 돈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녀의 뒷 모습은 그저 이쁘기만 하다. 머뭇거리면서 가는 그녀가 왠지 무슨 말이라도 해주며 잡아달라는 의미로 보이기도 하다.


그 모습. 역력하게 범수가 물끄럼히 바라만 보고 있다. 과연 어떻게 될까? 범수는 머리가 멍하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진행해야 할 것이다. 남자의 뇌에서는 과연 어떠한 신호가 노출이 되는가? 수 많은 노출 중에서 어떠한 프로그램 아이콘을 눌러야 하는가? 과연 데이터를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할 것인가?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이럴 때는 심장으로 하는 것이다. 남자는 이 때, 현재의 신분이나 상황 따위는 따지지 않았다. 자기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막대한 일이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우선순위가 있는 것이다. 바로 사랑하는 사람을 놓쳐서 평생 후회하지 않아야 할 것이 아닌가?


아마도 현실적으로 그녀는 재벌 2세와 사는 것이 마땅한 길이다. 그것이 바로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경우처럼 늘 벌어지는 뻔하디 뻔한 일이다. 그에 비해서 남자는 조촐하다. 그녀에게 비해서 한 없이 부족하다. 오로지 줄 수 있다는 것은 진심어린 마음외에는 줄 수가 없다. 둘에 있어서 이 애매한 장벽. 사회적인 문턱에 부딪히게 되는 시선들. 그녀를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다가 오히려 투수가 진행하라고 나무란다. 하지만 범수! 인생에 있어서 첫 주심보다 더 값진 게 있다. 바로 유하림 아니 현주다. 자신이 심판이 될 수 있었던 가장 유일한 장점인 우렁찬 목소리를 이 많은 관중을 향해서 스피커 없이 목놓아 그녀의 이름을 외친다. 아주 쩌렁하게 부른다. 오히려 보는 이가 있기에 더 당당하다.


"혀~연!! 주!!"



이 단어 한 마디가 이 영화에서 터닝 포인트가 되는 시점이다. 꽉 매운 프로야구 관중 모두 다 멍하니 이 '현주'라는 소리에 놀라웠다. '플레이 볼' 이 아니라 그것도 톱스타 '유하림'도 아니라 그녀의 본명인 '현주'를 부른 셈이다. 현주. 그렇게 사랑을 놓치지 않게 여러 명의 웅성거림을 뒤를 돌아서 그를 바라본다. 현주도 그간 숱한 가식적인 단어 '유하림'이라는 탈 속에서 모처럼 자신을 불러준 이름이다. 그에게로 다시 찾아와 몸짓이 아니라 김춘수의 시처럼 하나의 꽃이 되는 듯 그녀가 그를 향해 달려온다. 그 또한 그녀를 향해 달려간다. 경기 시작은 안중에 없다. 그런 것 중요하지 않다. 이들에게 있어서 사랑의 경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녀를 왜 불렀는지 관중들은 알 수가 없어서 웅성거리기 그지 없다. 하지만 이들에게 있어서 그러한 눈치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제 아무리 톱스타의 왕관도 평범한 심판이라는 명함도 다 내려놓는다. 사랑앞에서 거짓없이 진솔하게 다가선 것이다. 그런 그녀는 이 많은 관중을 하여금 자신의 일보다 사랑을 선택한 그를 바라본다. 아니 두 말 할 것이 마음의 동요를 느껴 그에게 달려간다. 관중들은 술렁인다. 수 많은 사람들이 이 말도 안 되는 장면을 보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의 수 많은 시선들을 부끄러워 하지 않으며, 되리어 수 많은 스포트라이트와 관심속에서 짜릿한 키스를 나눈다. 이미 꿈은 이룰만큼 이룬 그들. 그들에게 더 커다란 꿈은 바로 형식적인 안정적 결혼이 아니라 제대로 된 사랑이 아닐까?


누가 뭐라고 해도 이 자체가 스포츠 보다 더 짜릿한 이벤트가 아닐 수 없다. 특히나 4~5만명의 관중들 사이 속에서 축복의 갈채를 받는 거 자체가 커다란 이벤트가 이날 수 없다. 사랑은 단 둘이 하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들 틈 사이에서 끼어서 인정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이나 약혼 등이 하객없다면 그 명분이나 인증이 결여된 느낌이 든다.


* 갈채 속의 이벤트 = 여러 사람들에게 사랑을 인정 => 최고의 선물 방식


그 어떠한 다이아몬드나 호텔의 레드카펫보다 의미가 있다. 바로 사람보다 귀한 선물이 없기 때문이다. 그 귀한 사람들의 기쁨이 메시지가 전달이 되어서 서로 축하를 받는 거 자체가 배가 되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생일파티와 같다. 멋진 케이크와 값비싼 생일 선물. 그리고 멋진 장소를 빌렸다고 치자 근데 축하해주는 사람이 없다면 어떠할까? 씁쓸할 것이다. 이보다 비록 군대에서 초코파이 탑으로 케이크를 대신 했고, 선물 대신 풍습으로 생일빵을 전해주면서 여럿이서 함께 축하해 주는 게 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물질보다 사람의 축복의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사랑도 단 둘이 하는 게 아니다. 여러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인정받고 갈채와 축복을 함께 받으면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보다 더 큰 선물은 없는 것이다. 함께 한다는 것은 커다란 선물이다. 물론 영화 속에서는 야구장을 구경하러 온 것이지 절대 사랑을 구경하러 온 게 아니다. 하지만, 이는 더 특별하다. 야구장에서 커플끼리 이벤트 하는 쇼가 아니기에 더 의미가 있다. 심판과 시구하던 연예인. 어느 프로그램에도 없는 전혀 짜여지지 않는, 해서는 안 되는, 마음에서 울어나기에 발동한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 해가 서쪽으로 뜬다면 (유명배우에게 고백하는 평범한 야구심판)

https://www.youtube.com/watch?v=X93IbFoCLzI



사랑의 표현은 이렇게 순간적일수록 가식이 아니기에 더 빛을 발한다. 그래서 수 많은 사람들 앞에서 프로포즈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에 반대로 너무 사람이 많은 곳에서 뻔한 행동을 하는 것은 그리 좋지가 않다. 이에 반해서 상대가 거절한다면 아픔이 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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