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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련 Apr 07. 2021

[5장] 밀고 당기는 기술

5. 밀고 당기는 기술     


 1) 미묘한 감정

        1-1) "러브레터
         싫은 듯 좋은 듯한그 미묘한 감정

        1-2) 너무 어렸기에 놓친 
        3때의 아려한 사랑

        1-3) 애인보다 더 짜릿한 
        - '썸씽남'과 미묘한 감정     


   2) 뒤에서 챙겨줌

        2-1) "어린신부
         은근히 뒤에서 챙겨주는 자상함

        2-2) 뒤에서 챙겨주기가 때론 버거울수도

        2-3) 키다리 아저씨 같은 대학 선배     


   3) 아쉬운 여운

        3-1) "여인의 향기
        짧은 찰나에 로멘스를 남긴 그 사람

        3-2) "시네마천국
        공주를 99일 기다린 병사

        3-3) 피천득 선생과 아사코의 4번째 인연은?




5밀고 당기는 기술

밀고 당기는 기술 미묘한 감정뒤에서 챙겨줌아쉬운 여운

(러브레터어린신부여인의 향기시네마 천국)



 * 작업의 정석 (밀고당기는 선수들의 연애방식을 다룬 영화)

https://www.youtube.com/watch?v=pd0ita_Bd-Q


어릴 적 동화를 보고하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아름다운 기억이 있을 것이다. 신데렐라나 백설 공주가 그러한 모습을 그리며 “행복하게 살았더래요“라고 막을 내린다. 과연 행복하게 사는 것은 뭘까? 마무리는 참 멋지게 하지만 그러한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서로를 위하고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이 아닌가? 그 속에서 절대적인 싸움이 없을까? 최소한의 그러한 싸움조차 없다면 상대에 대한 애정이 작기 때문일 수도 있다. 우리는 가족에게 더 싫은 소리를 하지만 정말 싫어서가 아니라 그만큼 각별하게 챙기기 때문에 위하는 것이다. 또한 가축을 기르면 애정으로 키우되 모진 훈육을 통해서 배려할 것이다.      


 그만큼 당근과 채찍이 불가피하게 필요한 요소다. 사랑도 그러한 양쪽 균형이 잘 발달 되어져 있어야 한다. 다짜고짜      


"당신을 위해서 무조건 충성을 하겠어요!"


라는 것은 사랑이라기 보단 '복종'하는 것과 같다. 사랑은 상호적이어야 한다. 둘이 동등한 위치에서 시작이 되어야 깊이가 있고 오래간다. 한쪽에서만 무작정 밀어내고 한쪽에서만 무작정 당긴다면 그것은 균형적인 사랑이 아니다. 밀물과 썰물이 있어서 파도를 치고 운행하듯이 그러한 자석과도 같은 힘의 움직임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친구사이도 싸우면서 정이 트고, 그 속에서 서로에 귀한 것을 알고 배우게 된다.      


 만일 싸워서 서로 싫어 말도 하지 않는다면 그만큼 미 성숙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서로를 용서하고 다시금 기회를 줘야 한다. 그리고 사람은 당연히 싫은 소리와 좋은 소리 둘 다 듣기 마련이다. 사랑도 당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시시콜콜하게 그지없을 것이다. 때로는 당기고 밀기도 하면서 서로의 마음을 애달프게 만들 수 있다. 더 끈끈한 정을 위해서 그렇게 티격태격하면서 알아가는 것이다. 그러한 티격태격한 과정을 겪는 다음에 그 속에 이해를 하면서 또한 오해한 것이 풀어지면서 서로를 더 위하게 될 것이다. 대체적으로 영화 속의 위기도 이러한 상황을 잘 극복할 때, 서로를 더 사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 기술을 잘 알아야 한다. 대체적으로 센스가 없어서 남자들이 무조건 잘못했다는 경우가 있는 그 것은 그리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여자가 뾰로퉁하면 남자는 문제의 과정보다는 해결의 끝맺음을 하려고 한다.


그래서 남자는 사과를 자주 하고 여자는 추궁을 자주 캐 묻는다. 특히나 여자들은     


 "나 사랑해?" "세상에서 내가 젤 이쁘다고 말해줘?"     


라고 물으면서 확인을 하려고 한다. 이에 남자는 그러한 추궁보다는 본격적으로 사랑의 표현을 하는데 목적이 크다. 솔직히 취조하는 것도 아니고 왜 이 말을 자주 들으려고 하는가? 그만큼 여자는 남자에게 늘 사랑을 확인 시켜려고 하기 때문이며,남자는 함부로 간질 나게 사랑을 감히 언어로 표현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이에 비슷한 것이 또 있는데 바로 남녀의 차이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남자는 일중심적이고 여자는 관계 중심적이다. 특히나 여성은 사랑을 확인 받고 싶어서 남자에게 핸드폰으로도 연락을 자주하다보면 남자에겐 있어서 바쁜 와중에 실상 귀찮을 경우가 있다. 그것은 상대가 싫어서가 아니라 그보다 중요한 일을 할 때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를 이해 못하는 여자들은 남성의 일 중심에 반기를 드는 경우도 있다.      


 "내가 먼저야 일이 먼저야?"     


 이렇게 묻는 경우가 가령 있는데, 대부분 여자가 더 중요하지만 먼저 급한 일부터 해야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게 일해서 번 돈으로 과연 누구를 챙겨주는지 다시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걸 모르는 것이 아니다. 다 알지만 사랑은 이렇게 싸우면서 더 추억을 쌓는 것 같다. 여자들이 별로 화내지 않아도 삐치는 척을 하는 것도 이러하다. 또한, 남자들도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에게 일부러 때 아닌 장난을 치는 것, 이 게 다 관심의 표현이 아닐까? 왜 고무줄 놀이하는 데 찾아가 가위로 끈을 끊고 도망치는가? 이는 다 사랑의 표현이다. 사랑은 아껴주고 보살펴 주는데만 하면 때로는 지친다. 가끔은 삼각관계의 썸씽도 해결해야 하며, 질투의 화신으로 보호해야 하며, 일과 사랑 사이에 갈등 속에서 사랑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그만큼 사랑을 지키기엔 밀고 당기는 위협 요소가 많다. 하지만 이러한 위협요소가 있기 때문에 사랑이 더 간절한 것이다. 위협 요소가 없다면 그것은 밍숭맹숭하여 미지근 할 것이다. 강력한 칼을 만들기 위해서는 뜨거운 불과 찬 물을 번갈아 가면서 망치질로 단련시킨다. 사랑도 그렇게 밀고 당기며 단련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영화 속에서도 정말로 좋아하는데, 그 호감의 표현을 다르게 하는 모습이 순수하고 맑게 묘사되고 있다. 또한 잘 될 거 같으면서 한번쯤 거절로 인해서 더 아쉬운 여운으로 자리잡아서 정복하려는 심리적 작용으로 더 애가 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또한, 대 놓고 배려도 없는 사람이 알고 보니 뒤에서 챙겨줘서 감동을 받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밀고 당기는 기술은 참으로 여러 가지다.       


*밀고 당기는 기술

1) 미묘한 감정 (좋은 듯싫은 듯)

2) 뒤에서 챙겨줌

3) 아쉬운 여운     


 이러한 밀당(밀고 당기는 의미의 준말)의 모습을 영화 속에서도 자주 그려지고 있다. 대체적인 로맨틱 영화에서는 이런 사랑의 갈등요소가 위기, 절정에 나와 더 큰 감동을 준다. 아니 거의 90% 영화가 밀당의 위협요소를 빼면 아마 그 감동이 약할 것이다. 어렵게 찾은 사랑에 대해서 차근차근 알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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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묘한 감정     


 사랑에 빠지게 되면 미묘하다. 혹은 애매모호하다. 소위 벙찐다라고 표현해도 맞을 것이다. 또한 다른 대상이 나를 좋아하는 것으로 착각해도 도리어 기분이 좋을 수도 있다. 물론 너무 그릇된 사람이 좋아한다면 여기에 해당은 되지 않을 것이다.      



 확실하지 않지만 이 미묘한 느낌은 뭘까? 이것이 진정한 사랑인지 아닌지 잘 모른다. 더군다나 사랑을 아직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다면 이것이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것인지 내 안의 감정의 심취되어서 도파민 활동에 스스로 최면이 되었는지 모른다.      


 즉, 사랑을 좋아하는 지 그 사람을 좋아하는 지 어리 둥절 할 것이다. 사실, 두 남녀의 캐릭터가 특별한 상황에서 더 애틋함을 만들기 때문에 어쩌면 그 인격체인 상대방 사람도 좋고 또, 그 상황으로 이끌어준 러브 스토리인 사랑이라는 것도 참으로 좋을 것이다. 이러한 어렵고 복잡한 미묘한 감정. 사랑으로 서서히 닳아 오를 듯한데, 과연 분위기에 휩쓸리는 지 다시금 재조명해야 할 것이다.      


 이때에는 아무래도 나이가 어리거나 사랑 경험이 부족할수록 자신의 마인드 컨트롤을 하기 어렵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콩딱거려서 어찌해야할 방법을 모른다. 더군다나 호흡이 더 빨라지기 때문에 당황하기 그지없다. 상대방에게 다가서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어느 새 초점이 흐려지면서 고개를 가닥거리면서 주변의 이야기가 제대로 들려오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은 우리의 몸 세포에 도파민이 발동하면서 신경의 갑작스러운 변화가 오기 때문에 호르몬 자체가 분비하는 과정에서 사랑이라는 것이 뇌리에 스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호르몬 분비로 인한 신체 변화가 자신의 심장을 의심하기도 한다. 그 결과 미묘한 감정은 자기 자신이 딱히 그 특정을 왜 좋아하는 지도 모르고 설레는 경우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를 분간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만일 한 대상에게 뛴다면 그 것은 사랑이겠지만, 여러 대상에게 뛴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그저 호감이 그치는 것이다. 미묘한 감정은 솔직히 사랑은 아직 아니다. 그저 설레임이며, 관심의 표현이다. 하지만 이는 곧 사랑의 초입부이기도 하다. 마치 싹이 서서히 트기 위한 좋은 장소에 심은 씨앗과 같다. 이는 마치 옆 반에 괜찮은 이성을 보고 설래서, 틈만 나면 고개를 돌려서 문 사이로 그 사람을 쳐다보고 싶은 어릴 적 감정과 같은 것이다. 사랑은 아직 아니지만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다.         

  

미묘한 감정 사랑의 도입

  (아직은 사랑은 아니지만 사랑이 되어가는 과정   

  

 아직 잘 모르기에 그 사람을 위해 헌신적으로 공을 들여서 할 수 없지만, 조금이나마 얘기를 수줍게나마 나누고픈 대상이다.      


 특히 이 미묘한 감정은 말 그대로 마음 속 감정이다. 또한 순간적이기도 하다. 이에 모든 것을 곧이곧대로 믿어선 안 된다. 우리는 이럴 때 일수록 이성을 찾아야 한다. 자신도 모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보통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이해해서도 안 된다 그저 심장이 시키는 데로 이끌기 마련이다. 하지만 조심해야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조건을 어느 정도 따져야 한다. 10대처럼 그저 미묘한 감정에 이끌려서 그 사람을 흠모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때로는 과감하게 이 미묘한 감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가령 이성을 찾아야 하는 것 중에 자신이 현재 이성친구의 친구를 흠모한다던지, 유부남이 다른 유부녀를 흠모한다던지, 30대가 10대를 흠모해서는 안 되는 것과 같다. 물론 사람도 동물이기에 미묘한 감정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물론 잘 다스리면 그것은 사랑의 반응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미묘한 감정 때문에 이성을 잃고 사랑에 미쳐서 때로는 동물적인 요소가 작동되어서 사회적인 지탄에 빠져들기도 한다. 이에 미묘한 감정을 그대로 믿어선 안 된다. 순간의 감정과 사랑의 감정을 엄연히 분간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위의 위험한 상황을 잘 분간한 상황이라면, 다시 말해서 사회적인 지탄의 모습이 아닌 순수한 사랑을 위한 미묘한 감정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할 것이다. 과연 두근 반 세근 반. 뛰는 내 마음. 사람을 과연 사랑하는 것일까? 아니면 사랑 그 자체를 상황을 사랑하는 것일까? 이것도 늘 미묘한 감정 중 잘 판단되어야 할 사안이다. 어찌보면 우리는      


'사람은 사랑을 하기 위해서 사는 것'      


일 수도 있다. 이에 어떤 이는 다르게도 표현하기도 한다.     

 

'사랑은 사람이 있기에 존재하는 것'      


이라고 한다. 둘은 잘 모르겠다. 그렇기 위해서 더 알아가야 할 필요가 있으며 제대로 된 사랑을 위하여 한 단계씩 나아가야 할 것이다. 어쩌면 두 상황 영화 속에서는 이 미묘한 감정이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 어깨 넘어 구경해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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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러브레터 (1995) - 싫은 듯 좋은 듯한그 미묘한 감정



 애정사이에 필요한 절대적인 요소가 바로 미묘한 감정이 아닐까? 나를 과연 좋아하는지 혹은 그냥 잘 대해주는 건지?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 많은 시간동안 고민을 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더 재미난 것은 아마 자신을 그렇게 대하는 상대 또한 자신의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자신조차 정말 좋아하는 지 모를 수가 있을 것이다. 애매하다.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 확실하게 어떠한 대상을 좋아하는 지 모른다. 순간적인 감정인지? 아니면 대상을 향한 사랑인지 조차를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이 담겨져 있다. 바로 이러한 순간에서 아름다운 상황의 결실이 점차 싹이 트고 있다는 것이다. 대놓고 '좋아한다 우리 사귀자!' 이러한 급한 표현은 확실해서 좋기는 하나 너무 시들기 마련이다. 꽃을 키우려면 적어도 많은 영양소 공급이 필요하듯 토양, 햇빛, 물, 거름 등과 같은 애정의 영양소 또한 더불어서 키워야 한다.      



 그 중 애매한 감정이 없는 사랑의 시작은 마치 영양소 한가지가 파괴된 거 같다. 마치 잘 모르는데 외모에 끌려서 막상 사랑하다보니 이 사람의 내면의 가치관이 달라서 실망하는 것과 같다. 사랑은 천천히 순리대로 알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첨부터 좋아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는 감정에 이끌려서 현혹되는 점이 많다. 이 순리를 억지로 급하게 자기 충족에 넘쳐 역류를 하면 하지 않았던 시점보다 더 악화될 수가 있다. 더군다나 이러한 우범은 여자보다는 남자가 더 성미가 급한데 감정에 너무 빠져들다보면 대상을 좋아하기 보단 어쩌면 그 자기 감정에 취한 지 다시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이와 반대로 그렇다고 너무나 애정 사이를 끌면 처음에는 폭발적으로 좋아했으나 급하게 지쳐서 나중에 너무나 무딘 경우가 있을 것이다. 마치 오랫동안 지낸 한 가족이 되어버리는 격이다. 그렇다면 언제가 적정선일까? 그것은 두 사람만이 알 것이다. 사람은 다 경우에 따라서 다르기에 이를 단정지어서 기점을 제시할 수 없다. 아마도 그 기점을 잡는다면 적어도 미묘한 감정이 서서히 물 흐를 때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점차 빠져드는 이 미묘한 감정. 영화 속에서는 '싫은 듯 좋은 듯'하게 그려내고 있는 한편의 동심의 드라마. 이와이 슌지 감독의 서정적 영화 '러브레터'다.


* 러브레터 (추억의 부스러기_KBS)

https://www.youtube.com/watch?v=iFqLr1nDwIA


영화 속에서는 우선 유키구라모토의 "the winter strory"의 감미로운 OST와 일본의 눈이 덮힌 산을 배경으로 더 감미롭게 그려내고 있다. 아득한 옛사랑을 떠나보낸 히로코. 그녀는 자신의 예전 남자친구에게 돌아오지 못할 편지를 보낸다. 그런데 이게 어떠한 일인가? 그 편지가 도착이 된 것이다. '이츠키' 라는 이름으로 온 것이다. 아니 대체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인가? 그렇다. 자신의 남자친구 학창시절 같은 반이었던 '이츠키'라는 여자에게 온 것이다. 그 둘의 만남을 영화 속에서는 다시 회상을 하듯 아련한 10대의 순수한 시절로 빠지게 만들고 있다. 게다가 OST인 "SWEET MEMORIES"가 더 애절하게 들리우게 된다.      


 둘은 이름이 동일하여 선생님의 출석을 부르면 서로 대답하곤 했다. 이 자체가 둘은 틀별히 점지해 놓은 사이처럼 그녀내고 있다. 이렇게 자연스레 둘은 서로를 인식하게 된 것이며, 동일한 이름안에서 여자도 남자도 싫은 내색이 짙어 보였다. 표정을 보면 마치 남자는 화가 난 거 같았고 여자는 꽤나 미안한 마음이 들어 보였다. 이들의 감수성이 잘 내포된 이미지다. 그들은 이름순으로 하기에 당연히 같이 주번을 하기 바빴고, 이에 주변 친구들은 둘이 연인이냥 약 올리며 비아냥거렸다. 주번을 같이하다보니 어느 새 이야기를 하고 친해질 수 있지만 여자의 물음에 남자는 늘 틱틱대는 말투였다. 마치 말을 함께 하는 거 자체가 귀찮아보였다. 그러한 남자 이츠키의 문답에 여자 이츠키는 당연히 좋아하는 게 아니라 싫어하는 거라고 느꼈을 것이다.      


 한 번은, 여자 이츠키가 자전거를 타고 다닐 때 뒤에서 나타나 푸대자루로 얼굴에 씌우며 방해하던 사내 이츠키였다. 하루는 시험을 봤는데 여자 이츠키에게 남자 이츠키의 쪽지시험을 건내 받은 것이다. 하나 하나 따져보니 너무나 형편없는 영어시험 점수였다. 그 쪽지를 어두운 밤 여자 이츠키는 자전거 페달을 돌려가며 그 불빛으로 남자 이츠키가 보는 아련한 추억도 한자락 자리잡았다. 보통 남자가 멋지게 페달을 돌려야 하는데 여자 이츠키에게 시키고 자기가 글을 읽는 무례한 모습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어쩌면 사랑하는 이에게 친근하게 대하는 태도가 아닌가 싶다.      


 그들의 그런 싫은 듯 좋은 듯한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 저며들게 한다. 여자 이츠키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그 말을 하려고 찾아온 때 아닌 자상한 남자 이츠키. 제 아무리 철부지며 무뚝뚝한 그가 그러한 말을 하니 어찌나 웃긴지 여자 이츠키는 웃기만 한다. 그 모습에 화를 내며 틱틱거리는 남자 이츠키. 둘은 그러한 사이다. 같은 반 친구이면서도 또한 동명이인이었기에 얽히고 설켜진 미묘한 감정만이 송두리 째 남겨진 것이다. 마치 오랫도안 그 한폭의 영화 같은 나위가 영원할 것만 같았으나 그 흐름이 어느 덧 사그라진 것이다. 남자 이츠키가 갑작스레 아무런 말도 없이 전학을 가게 된 것이다. 여자 이츠키는 분했다. 적어도 자신에게 떠난다는 여운의 메시지도 없이 그렇게 사라진 것이다. 아무리 성격이 무뚝뚝해도 이건 아니지 않는가? 이제 서야 서서히 둘이 좋아하려고 하는 이 감정을 두고 어찌 말없이 떠난단 말인가? 너무 어려서일까? 혹시나 잘 못 되지 않으려나 조심스러워서 일까?      

 그렇게 숨기려한 것이 남은 자에게는 덧없는 상처가 되는 것인데, 너무 어린 그들은 다른 이목들의 비아냥 거리는 것이 싫어서 때로는 내색하지 않는 풋사랑. 남자 이츠키는 아마 자신만 혼자 간직한 채 그렇게 유유히 떠난 듯하다. 아마도 그녀의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그는 성격대로 행한 거 같았다. 무엇보다 그를 잘 아는 그녀는 그래도 이러한 상황을 믿기지 않았다.      


 그녀는 분에 못 이겼다. 그래서 그의 책상에 남겨진 꽃병을 깨며 울었다. 자신만이 좋아했고 자신만이 사랑한 것인가? 과연 그렇게 아련한 좋고 싫은 듯 한 감정이 의미없이 사라졌는가? 그는 그녀에게 전혀 아무런 감정이 없는 것인가? 그는 냉혈인일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예전 그 주번활동을 함께한 도서관에서 한 장의 그림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남자 이츠키가 여자 이츠키를 그린 것이다. 그는 그렇게 조용히 그림으로 사랑의 표현을 한 것이다. 그 사진이 훗날 여자 이츠키의 도서관 후배로부터 알게 된 것이다. 아직도 그 학교에서는 그 것이 일종의 전설로 자리잡은 아려한 추억이다.      


 우리에게는 어릴 적 풋사랑을 누구나 간직할 것이다. 보통 중학생 때, 혹은 고등학생 때 일찍이 시작했을 것이다. 말도 못 붙인 채 그저 보기만 해도 가슴 뛰는 이 감정. 그러다가 실수로 눈이라도 마주치면 심장이 멎어 어찌할 바 몰랐던 그 시절. 이제는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어서 말로 쉽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에 이미 익숙한 더라 예전 풋풋한 이 미묘한 감정을 잃어버리지 않았는가? 좋은 듯 싫은 듯. 이렇게 사람을 헛갈리게 하면서 상대가 가슴앓이하게 만들고, 또한 그 속을 모르고 자신도 애가타는 그 설레임. 누가 먼저 고백을 해야 하는가? 이를 말로 표현해야 하는가? 혹은 행동으로 보여야 하는가? 선물이 좋으려나? 편지라도 써야 하나? 문자는 뭘로 보내야 하는가? 행여 그러다가 답장이 오지 않으면 왠지 모를 불안감. 그리고 시간이 지나 지울 수 없는 아련한 심정. 이젠 서서히 한 편의 시가 되고 종이가 날라 갔고 지나간 영화가 되어 이제는 다시 찾아 볼 수 없는 필름이 되었을 것이다.      


 미묘한 감정

1) 전략과 전술(x) -> 자연스러운 순정

2) 사랑과 미움사이의 추억 -> 싹이 트는 감정

3)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는 콘트롤 -> 사랑으로 착각

4) 애태우는 시간 길수록 -> 상대를 더 가치있게 생각함     

 

 그래도 그 순간의 심정을 잃지 않아야 한다. 20대 중반이 넘어도 어쩌면 그 아련한 순정이 다시 오게끔 상황을 만들어보자. 사랑은 그 어떠한 전략과 전술로 노력에 쟁취가 결코 아니라 자연스러움이다. 영화처럼 그 어떠한 계획적인 것보다는 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상황이 많다. 인간의 머리가 아니라 마치 조물주의 준비된 장치로 인해서 그 안에서 미묘한 감정이 생겨나는 듯하다. 또한, 아마도 자신도 모르고 상대도 모르게 서서히 사랑이라는 터울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그 사랑과 미움사이에 오가는 추억거리가 쌓이게 되면 싹이 트는 감정이기도 하다. 이는 곧 자기 자신조차 이해 할 수 없는 컨트롤이다. 이성이 아니라 본성의 의해서 좌지우지 되기에 혹시나 이 게 나의 사랑인가? 저 상대가 혹시 소울메이트가 아닌가? 그러한 생각이 들게 한다. 더군다나 빠르게 사귀는 게 아니라 애를 태우게 되는 시간이 길수록 서로 상대에 대해 더 진지하게 생각하기에 가치가 높다. 이러한 미묘한 감정의 섞음이 점차 사랑의 화폭으로 그려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스펙이 아니라 본심의 표현을 보여줄 때가 있을 것이다. 그 때를 기다리면서 이 미묘한 감정을 계속해서 이끌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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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너무 어렸기에 놓친 고 3때의 아려한 사랑     


 아마도 필자에게 있어서 풋사랑이 너무나도 길었다. 중학교 때 1번, 고등학교 때 1번씩 있었는데 딱히 사귀는 것은 아니고 홀로 좋아한 것이다. 물론 상대도 나를 좋아했다. 훗날 알았지만 그 게 아마 이성으로써 좋아했는지는 모르겠다. 당시 중,고교시절에는 한 없이 인기가 없었다. 얼굴은 그냥 저냥 생겼지만 무엇보다 키가 너무 작아서 나는 장애발달이 있는 줄 알았다. 지금 학생들은 어찌나 큰 지 모른다. 당시 기억으로는 충격적이라서 아직도 그 수치를 외울 정도다. 중학교 3학년 때가 148cm였으며 고 2때가 되어서 163cm가 되어서 꿈에 그리던 160대에 올라서 기뻐했던 게 기억이 난다. 오죽했으면 아이들에게 축하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알아봤는데 그 속도가 줄어들어서 가슴이 아팠다. 군대 가서 키를 재보니 166cm였고 그 후로 1년에 한 0.6cm자란 듯하다. 지금 키가 170cm 약간 넘는데 전체적으로 다소 늦게 성장하였기에 다들 주변에서 놀라기 그지없다.      


 키 얘기를 하자면 가슴 아픈 게 너무 많은데 지금은 나보다 작은 사람들도 많으니 위안을 삼는다. 그러고 보니 참으로 중, 고등학교 시절 내게 여자친구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로 늘 여겼다. 또래는 커녕 나보다 3학년 밑에 학우들보다 작았기에 자신감이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내게도 한 여자를 좋아하게 되었다. 같은 반 여학우였는데 그녀는 말쑤가 없이 조용했다. 무엇보다 친구였고 만만했던 그 반 여학생인데 어느 덧 눈길이 갔다. 특히나 우리 학교는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지역이라서 너무나 작은 동네였기에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줄 곧 지낸 아이가 수두룩하다. 그렇게 알고 지낸 걸로 친다면 무려 11년 넘게 다른 반으로써 지낸 아이였는데 고2 말이 되어서 이렇게 이뻐지게 보이는 것에 너무나 놀라웠다. 무엇보다 내가 그녀보다 키가 더 컸기에 이제는 자신감도 붙었다. 하지만, 딱히 그녀에게 잘해주려해도 연애 한 번 해보지 못한 내가 할 줄 아는 건 없었다. 주변 아이들에게도 이야기 하지 못했다. 행여나 소문이라도 나면 아이들이 놀릴까봐 걱정이다. 남들이 다 고3 때 수능이다 뭐다 정신없었는데 난 사춘기가 그제서야 온 것이다. 무엇보다 그녀에게 내가 특별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공부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데 도진 개진이라서 별 도움도 안되었다. 그저 연필 한 자루 빌려주는 게 고작이었다. 어필할 게 없었다. 근데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가고 장난을 치면서 놀았다.      


 그녀는 내 뒷자리에 앉았는데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뒤 돌아서 얘기하는 게 꿀맛같았다. 하지만 늘 그녀는 도중에 미술학원을 다니기 때문에 서울의 교통편을 이용하면서 오고 갔다. 그 와중에 나는 틈틈이 나름 공부해서 그녀가 모르는 부분을 채워주도록 노렸했다. 당시 98년도라 막 핸드폰이 서서히 생길 무렵이라서 우리는 연락을 하지 못했다. 둘 다 소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기말고사 중간고사는 조금 도움이 되었고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하면서 이런 저런 대화하는 게 전부였다. 늦게 까지 공부하던 그녀를 바래다 주면서 줄 게 있다면서 '돌맹이'를 주는 바보였다. 그러다가 미안해서 다음날 떡을 주며는 그녀는 화해를 받아줬다. 서로 좋아하는 듯 했다. 사귀지 않았지만.... 주변 친구들 조금씩 그 느낌을 알았다. 무엇보다 대학교가서 서로 다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난 수능끝나고 졸업식날 고백을 하려고 준비했다. 그렇게 되면 멋진 캠퍼스를 다닐 거라고 봤다. 우리는 서로 문과였고 단, 그녀는 예체능 부분을 시험을 봤다. 시험성적도 도진 개진이라서 지방대를 함께 가거나 전문대를 같이 갈 것으로 예상했다.      


 그렇게 시험을 봤고, 서로 잘 못 봐서 울상이었다. 그러던 중 그녀의 잠시 뒤로하고 우선 어느 대학을 갈 지가 바빴다. 우선 이게 급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있어서 그녀와 상담을 했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그녀가 내가 마지막으로 내가 대학을 붙고 그녀는 붙지 못했다. 우리가 고3때 마지막 만남은  내가 잠시 치과를 갈 때 버스에서 봤다. 우연히 버스에 만나서 옆 좌석에 앉아서 30분만 대화하고 마쳤는데 그녀가 내 대학에 붙은 걸 축하해줬다. 나 또한 그녀의 소식을 묻자 그녀는 재수를 할 생각이라고 한다. 지금보다 미술실력도 배우고 수능공부도 하면서 더 열심히 할 거라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고백하기 좀 그러니 나중에 졸업식날 조용히 해야겠다는 걸 느꼈다. 무엇보다 대학낙방에 그녀에게 고백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도 과연 내 맘을 알았을까? 내가 아무리 좋아한다 해도 그녀의 대학을 붙여줄 수 없음이 그저 처량했다.      


 이윽고 졸업식. 나는 두리번 거렸다. 하지만 대학 낙방한 그녀가 올 리가 없다. 다 모여서 하는 얘기가 어디 대학을 갔냐, 무슨 과냐에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녀가 애석하게 오지 못함을 알고 있다. 한 없이 졸업식 노래를 부르며 아이들끼리 밀가루와 계란세례를 하는 동안 내내 울었다. 그건 이러한 거추장한 형식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다. 그 후로 대학을 다니면서 그녀를 잊었는데 아는 고등학교 친구의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그녀를 봤다. 상황도 상황인지라 별 얘기는 못했다. 이미 그녀는 남자가 생긴 듯 했다. 그렇게 우리는 무엇의 인사를 나누며 헤어졌다. 이미 놓쳤고 그렇게 5년이 지나서 미니홈피로 다시 알게되었고 약간 추하지만 동네에서 부시시한 내 모습을 그녀가 봤다. 그 후로는 다시 보자고 하면서 보지 못했다. 만일 내가 그녀와 사귀었으면 어떠했을까? 내심 생각을 하기도 한다. 미묘한 감정이 상황에 따라서 하지 못한 게 너무 후회스럽다. 그만큼 어렸던 거 같았고, 괜한 고백이 두려움으로 올까봐 걱정한 듯하다. 후에 미니홈피로 얘기를 했는데 그녀는 당연히 알았고, 왜 이제서야 이야기 하냐며 위로해줬다.      


 사랑 타이밍

미묘한 감정시기 -> 때가 된 것이니 고백해야 함 (훗날 후회하기 마련)     


 내 인생에 있어서 아직도 좋은 추억으로 남기게 해 준 그녀. 내가 힘들고 지친 그 고3생활의 유일한 낙이었던 그녀와 함께 한 모든 것. 지금 미니홈피도 없는 그녀는 어디서 무엇을 하는 지 모른다. 아마 좋은 가정을 꾸렸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내 수많은 방 중에서 아직도 추억 한 켠에 아름다운 빈 방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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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애인보다 더 짜릿한 '썸씽남'과 미묘한 감정     



 회사에 한 여직원이 있다. 그녀는 잘 웃고 재미난 여인이다. 하지만 처음 왔을 때 되게 힘든 기색이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자신과 사귀던 남자가 원래 6년간 교제하던 여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곧 그녀와 결혼을 한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충격적인 말이 아닐 수 없다. 남자의 양다리가 얼마나 부끄러운 지 대신 사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한 숨을 쉬더니만 이 것이 인과응보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전에 잘 사귀던 남자가 있었는데 곧 결혼할 이 남자가 잘 해주는 바람에 갈아탄 것이 화근이라고 한다. 그녀의 상황은 이러했다.  

    

 우선, 그녀가 전 남자와 사귀게 된 것은 지역 고등학교 근처 동문모임에 알게 된 지인이다. 그녀는 마음씨 착하고 자신을 위해서 잘 해주는 남자를 정이 들어서 그렇게 사랑으로 번졌다고 한다. 약간의 아쉽다면 키가 170대 초반인데 몸무게가 58kg이라서 너무 말라서 퀼리티는 그리 좋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이 워낙 성실해서 가정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만나면 만날수록 지쳐갔다. 당시 남자는 공무원 준비에 한창 바빴고 그렇기에 여자에게 조금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꼭 공무원에 붙어서 연봉 8000만원을 벌 것이라면서 희망을 주었다. 물론 사랑의 조건 중 큰 요소가 돈은 아니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인 격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한 지속적인 생활에 매번 같은 데이트인 밥먹고 차마시고 혹은 영화보는 게 지겹고 지쳐간 것이다. 어찌보면 서서히 애인의 설레임은 없고 정으로 엮어진 가족적인 사이가가 된 셈이다. 그렇게 가족화가 되면서 무미건조한 느낌이었는데 그녀에게 뉴 페이스가 나타난 것이다. 회사에서 만나게 된 자상한 남자인데 당시 키도 180cm가 넘으면서 외모도 출중했다. 그런 그가 그녀에게 잘해주니 끌렸다. 아니 막 잘해줄 때는 너무나 설렜다고 한다. 그 남자와 몇 시간을 있어도 못 느끼는 것을 이 자상한 남자의 몇 마디가 흔들리게 한 것이다. 그녀는 고심했다.      


 '양심적으로 이건 아니다.' 라고 다짐했고, 그래도 정이 있고 의리로 현재 사귀고 있는 남자를 지켰다. 하지만 잦은 분쟁과 과도기에 더는 꼴보기 싫은 그 남자를 대처할 수 있는 탈출구가 필요했다. 보통 과도기 없는 상황에서는 믿음직한 남자가 있고 순간 끌리는 남자가 있다면 보통 여자들은 끌리는 남자랑 잠시 만나다가 믿음직한 남자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반면 남자는 꼭 그렇지는 않지만 둘 다 만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마 본능적인 양의 대한 쟁취욕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러한 본래의 이성으로 돌아가는 것을 버렸다. 이유인즉, 과도기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사랑의 얼마나 적절한 시간 차가 중요한 지 알려주는 대목이다. 그녀는 그렇게 해서 찌질스러운 그 남자를 버렸고 이 새로운 남자를 잡은 것이다.      


사귀는 이성보다 끌리는 이성(미묘한 감정으로 나타남)이 나타날 때


1) 남자일 경우


사랑의 진전중 상황 
:  [A] 현재 흐지부지한 여자 + [B] 새로 등장한 끌리는 여자 

   (B에게 잠시 흔들려서 A와 B를 동시에 만나게 됨.  단, AB가 서로 모를 경우)


사랑의 과도기 상황
 : [A] 현재 흐지부지한 여자 + [B] 새로 등장한 끌리는 여자 

   (B에게 잠시 흔들려서 바로 A를 버리고 B로 바꿔버림)


2) 여자일 경우

사랑의 진전중 상황 
: [C] 현재 흐지부지한 남자 < [D] 새로 등장한 끌리는 남자 

  (D에게 잠시 흔들리다가 다시 C로 돌아 옴)


사랑의 과도기 상황
 : [C] 현재 흐지부지한 남자 > [D] 새로 등장한 끌리는 남자 

   (D에게 잠시 흔들려서 C를 버리고 B로 바꿔버림)

 

 위의 상황은 꼭 맞는 것은 아니다. 얼추 그러한 주변 상황이 있기에 정리한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그년의 이야기를 하겠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알고보니 자상한 이 남자가 수상한 것이었다. 바로 자신은 그 남자의 동시에 만나는 2번째 여자였던 것이다. 소위 말해서 서컨드였다. 그렇게 그 남자는 다시 결혼을 위해서 6년간 교제한 그녀에게 돌아갔으며, 그녀는 멍하니 홈런맞은 투수마냥 바라만 봐야 했다. 그렇게 멍청한 투수로 만들어 버리고 그는 간 것이었다. 게다가 더 화가 나는 것은 그리고 정리한 전 남자친구는 그 꿈에 그리던 공무원에 합격하여 좋은 연봉으로 생활한다는 것을 전해 들었다. 너무나 자신의 행동이 어찌나 비참한지 이것은 벌 받은 것이라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당부한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도 그 남자에게 돌아갈 수 없다고 한다. 그렇게 사귀었기에 연봉만 높아졌지 다시 또 그 지긋지긋한 사랑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을 한다. 내게 커다란 귀감이 되는 얘기가 아닐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그 '미묘한 감정' 때문에 흐지부지한 오래된 추억이 바로 정리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사랑은 그 감정에 속아서 놀아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묘한 감정'은 되게 사람을 현혹시키는 경우가 많다. 참된 사랑인지 잘못된 메시지인지 혹은 가식적인 메시지인지 어장관리용인지 잘 파악해야 할 것이다.



 미묘한 감정은 정말로 사랑일까? 너무 감성적에 이끌려서 이성적으로 아무리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짓을 선택해야 하는 것일까? 어쩌면 그 게 드디어 나타나게 된 이상적인 사랑이라고 해야 하는 것일까? 애인이 있는데도 잘해주는 데 끌리는 것. 싫은지 좋은지 도저히 분간이 되지 않는데 왜 이렇게 설레이고 흔들려 본 경험이 있는가? 그간 맛 보지 못했던 색다른 야릇한 접근 방식. 애인이 있는 사람으로써 더 지켜야 하는데 그 지켜야 할 도리를 넘어서게 되는 위험천만한 인연.      


 사회적으로 손가락질 받기에 그래서 은밀하게 만나는데 더 떨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 감정은 이렇게 여길 것이다.      


'실제로 내가 그 사람을 이렇게 좋아하는 것인가?'        


워낙에 심장떨리게 두근두근 만나니 더 애착이 깊은 것이다. 마치 로미오 줄리엣이 만나지 말아야 한다고 했건만, 희곡 속에서 겨우 5일간의 사랑을 죽음으로 치닫을 정도로 깊게 한 것이다. 남들이 하지 말라는 것은 더 하고 싶은 욕구가 나기 마련이다.      


은밀한 만남이 더 설레는 이유

 남에게 몰래 들키지 않게 만나기에 심장 더 떨리게 된다

   -> 오해해서 그 사람을 더 좋아하게 되는 요소     


굳이 그와 결혼을 하지 않는다면 다른 이성을 잠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것도 꽤 현명한 선택이다. 기회의 장을 적극적으로 살리지 못하는 단편적인 삶을 살다가 후회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 애인 외 다른 이성을 만나야 하는 이유

: 더 다양한 많은 이성을 알고 지내는 것 -> 다양한 선택의 폭을 넓히는 것 

  (단, 사귀어서는 안 된다)                                     

  

 기존 이성과 별 짜릿함이 없었던 사람이라면 갑자기 다가선 이 미묘한 감정의 새 사람에게 호기심이 가기 마련일 것이다. 필자는 사랑의 실타레를 얽히기는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보다 현명한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다른 미묘한 감정의 기회를 주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다. 훗날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또한, 꼭 미묘한 감정의 대상과 인연이 아니라 아는 지인으로 지내도 언젠가는 필요한 사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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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뒤에서 챙겨줌     


 우리나라 남자들. 특히 경상도 사람은 대 놓고 사랑 표현을 잘 하지 못하는 습성이 있다. 심지어 프로포즈를 "내 아를 낳아도"라고 품위없이 감동없이 한다면서 개그 소재로 삼기 일쑤다. 전체적으로 한국 남자는 그렇게 표현을 잘 하지 못하는 편이다. 물론 이는 일본이 더 하기에 일본 아주머니들은 한국의 배용준같은 자상한 남자를 선호하는 된 것이다. 그나마 요즘은 여자의 권력상승과 더불어 남녀평등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남자의 무게 중심이 서서히 여자쪽으로 치우치게 되었다. 그러 인하여 사랑관점에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한국은 중국의 남자들이 여자를 위하는 것을 보면서 더 배워야 할 것이다. 거기서는 모든 살림을 남자가 다 거들어 주는 문화(중국 북부는 남=녀, 중국 남부는 남<녀)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서서히 변화되는 것은 남자의 그 무뚝뚝함이 보다 부드러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사랑의 표현이 다양해지고 적극적이고 활기차진 것이다. 하지만 하도 많은 사람들이 이 부드러움을 강조하다 보니 때로는 너무 가벼울 정도로 '사랑해'라는 단어를 남발하는 듯 하다. 진정한 사랑의 표현이 무조건적인 들어남에 있어서 국한되어지는 것이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님을 깨닫지 못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물론 드러내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적으로 의미가 있지만 그렇다고 너무 도가 넘쳐서 다른 이들에게 눈살을 찌푸릴 과잉은 그리 좋은 방식이 아니다.      


 이에 고전적으로 부터 표현한 덕미가 있다. 바로 '뒤에서 챙겨주는 것'이다. 심리학적으로 사람은 몰래 갑작스레 주는 선물은 기대를 하지 않기에 더 반갑고 고마운 것이다. 그렇기에 특별한 날이나 장소에서 주는 것보다는 예상치도 못했던 시각이나 장소에서 느닷없이 표현하는 것은 때로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은근히 자신을 생각해주는 사람임을 알게 되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리고 뒤에서 챙겨준다는 것은 항시 버팀목이 되어준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그래서 더 믿음직스럽고 기댈 수 있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이는 남자가 여자에게 많이 더 챙겨주는 준다. 신체적으로도 남자가 여자를 보호하고 여자는 남자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역할이다.  또한, 말로만 잘해주겠다 사랑한다라는 표현보다는 실질적인 감동이 전해주기 때문에 가치가 크다. 또한, 드러내는 표현이 아니라 뒤에서 챙겨준다는 것은 늘, 주시하면서 감싸안아주는 기분이 들기에, 여성으로써 그 남자가 든든하게 여길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뒤에서 챙겨짐 말 행동의 표현,

  드러내는 것(x) -> 든든하게 보여짐      


 예전에 남자 mc가 여자 게스트에게 어떠한 스타일이 좋냐 물을 때, 어떠한 게스트는      


"뒤에서 챙겨주는 남자요."      


라고 한 것이다. 어릴 적에는 이 의미가 뭔지 몰랐으나, 워낙에 이쁜 연예인이 제 아무리 잘 나가는 남자, 허풍떠는 남자를 많이 봤고 실속이 없음을 잘 알기에 그녀는 실속있고 자상한 남자를 원한 것이다. 당장에는 티가 나지 않는 뒤에서 챙겨주기. 장기적인 안목으로 서서히 아니 은은히 풍겨야 할 것이다. 아마 이러한 사랑이 깊고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일찍이 박진영 프로듀서는 자기 곡에   '너의 뒤에서'라는 곡을 발표했다. 이는 단순히 사랑하는 순간적인 헌신이 아니라 늘 변함없이라는 표현이 함축된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뒤에서 챙겨주는 이 덕미를 영화 속에서는 어떻게 필름 안에 담아내는 지 상영기를 돌려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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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어린신부 (2004) - 은근히 뒤에서 챙겨는 자상함



 문근영과 김래원의 주인공으로 한창 화제가 되었던 영화 '어린신부'. 그리고 지금은 어느덧 스타급으로 부상된 앳된 문근영의 친구 신세경을 볼 수 있는 재미가 있기도 한 작품이다. 어린신부라는 이 설정 자체가 다소 말이 되지 않지만 그 속에서 한 어린 아내를 배려하면서 챙겨주는 아버지같기도 한 따스한 남편의 심성이 고스란히 묻어난 드라마다.      


* 어린신부 (OST - MY LOVE, 심은진)

https://www.youtube.com/watch?v=yJ5QtFSOdbg

 우선 서보은(문근영)은 너무나도 철없는 말 그대로 고등학생이다. 그러한 그녀는 어릴적부터 할아버지 친구사이로 그저 알고 지내는 집안으로 박상민(김래원)과 친분이 두터운 사이다. 하도 어릴적부터 봤기 때문에 딱히 이성적인 관계가 아니라 그저 선생님과 학생같은 느낌이 들기에 더 적합한 관계다. 그러한 그들이 결혼을 할 수밖에 없는 작가의 선택은 병이 든 할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이자 유언이기 때문이다. 두 손자 손녀는 말이 안된다며 난리쳤지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살아있기 전 정약결혼을 성사시키는 것에 부랴부랴 진행이 된 것. 김래원은 이제 20대 중반으로 그나마 혼기가 서서히 물어 익는다쳐도 보은은 막 고등학생이기에 아직 스킨쉽조차 어색하기 그지없다. 이 자체가 너무나 재미난 코믹 설정이 아닐 수 없다.      


 문근영은 때가 되면 학교에 가야 하지만 그 때마다 남편 밥차리기와 빨래감까지 신경써야 하는 가련한 여고생이다. 남편은 서서히 미술전공 대학교 졸업반이 되어서 실습을 나오는데 다름 아니라 아내가 다니는 학교라서 더 상황은 복잡미묘하게 꼬여만 가는 것이다. 여기에 한 술 더 재미난 설정은 바로 그러한 남편 김래원이 아직도 총각으로 알며유혹하는 한 여성이 있다. 바로 문근영의 담임선생님인 김쌤(안선영)이다. 그녀는 젊고 유능한 래원을 보자마자 온갖 정성과 혼심으로 사로잡으려 안갖힘을 쏟는다. 그러다가 결국 근영과의 정약 결혼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돌연 불화통처럼 보은을 못 살게 군다. 바로 이번 축제에 혼자서 강당의 벽지를 그림으로 그리라는 말도 안되는 미션이다. 근영은 속이 상할 때로 상했다.      



 제 아무리 잘 해봐도 할 수가 없었다. 양은 너무나 많고 할 시간은 촉박하다. 김쌤의 눈살이 더 차갑기만 하다. 어린 나이에 이런 수모를 당하고 있을 때 세경이 그나마 단짝이라서 그 아픔을 알고 거들어 주었다. 제 아무리 여고생 둘이서 강당의 벽지를 훌륭하게 그릴 수는 없었다. 고작해야 풀과 나무 하늘을 그리는 것이었다. 비록 남편이 도와달라고 부탁했으나 바쁘다고 하니 더 화가 날 것이다. 근영은 래원은 무심한 사람이라면서 더 투덜거렸다. 안팍으로 고생하지만 그녀에게 단짝 세경이 있어서 한자락 마음이 나아진 거 같았다. 하지만 로멘티스트는 사실 상대 이상의 이벤트를 늘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것도 놀라움과 감동을 동반한 깜짝스럽고 멋진 쇼다. 미대생인 래원은 친구 2명을 강제로 끌고와서 아내가 그리다가 만 작품을 보면서 기가 찼다. 그리고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전공을 발휘하면서 그렇게 철야로 밤을 세워 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그리고 밤 늦게 피곤하여 돌아온 남편. 그가 한 일도 모른 채 근영이 아침부터 남편이 아니라 웬수라고 여기며 등교했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근영에 눈앞에 펼쳐진 이 화려한 그림. 물론 그 그림에 감동을 받은 것은 학우들 모두겠지만 근영만은 그 감동 이면의 추억마저 생각하게 한 것이다. 바로 옛 추억이 담긴 그림. 바로  래원이가 그네탄 근영이를 밀던 모습이다. 영화 속에서는 딱히 말이나 글로 표현하지 않아도 그림과 주인공의 표정으로 충분히 감정적인 사랑을 너머 헌신적인 사랑의 진한 감동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사랑의 표현이 아닐까? 제 아무리 부자라 해도 돈으로 살 수 없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 많은 시간과 그 힘든 과정에서도 상대를 생각하면서 버텨온 정성이 고스란히 보이는데 어찌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      


뒤에서 챙겨주는 것 그저 표면적 잘해주는 것(x)

  => 순수한 마음 헌신적 행동

     (상대 또한 마음에 있어야 함)     


돈으로는 순간적인 사람의 육체 쟁취할 수 있겠지만, 그 마음의 영원함마저 공유할 수 없는 것이다. 오로지 그 마음은 같은 마음을 가진 자들만이 얻을 수 있는 값진 특권이다. 영원히 믿을 수 있는 상대의 마음으로 전해질 수 있는 통로는 오직 순수와 헌신적 마음이다. 뒤에서 단순히 챙겨주는 것이 그저 잘해주는 게 아니다. 표면적으로 앞에서 하지 않고 뒤에서 한다고 다 자상한 게 아니다. 바로 이렇게 온갖 정성을 다한 그 순수함 마음과 헌신적인 행동이 따라야 할 것이다. 이것이 보통 남자가 여자에게 표현하는 사랑의 방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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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뒤에서 챙겨주기가 때론 버거울수도     

 

시대가 변해서 여자가 먼저 챙겨주는 모습은 '내조'라고 한다. 어감상 주부들이 실제로 결혼한 남편에게 하는 것으로 인식이 되었는데 결혼 전 연애는 아마도 남자가 여자를 챙겨주지 않나 싶다. 이벤트도 그렇게 프로포즈도 대체적으로 남자가 하는 것이 통상적이고 일반적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한 가지 알고는 이렇게 해야 할 것이다. 상대가 자신을 적어도 조금이라도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과한 헌신은 때론 부담으로 느껴져 거리감을 더 줄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첨부터는 서서히 잘해주고 서로 조금씩 감정의 싹이 틀때곤 이렇게 커다란 이벤트를 챙겨주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이러한 이벤트는 의미가 담겨져 있어야 한다. 그냥 막연히 자신이 원하는 식의 이벤트가 아니라 상대가 정작 필요로 하는 것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사랑은 상대에게 필요로 한 대상이 되어거야 하기 때문이다. 마치 자신의 둥그런 모습이 깎이고 깎여, 닳고 닳아 톱니바퀴가 되어 그와 함께 돌아간다면. 당연히 그 변화되는 고통의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나보다 그 사람을 더 생각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기에.....   

  

뒤에서 챙겨줄 때 유의점

1) 상대가 조금이라도 관심가질 때 해야 함 -> 그렇지 않으면 거리가 더 멀어짐

2) 상대가 필요로 하는 것을 해야 함 ->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게 아님     


 재미난 것은 이러한 무조건적인 뒤에서 챙겨주는 것이 때로는 독이 되는 걸 봤다. 기본적으로 아까도 살펴봤듯이 마음이 있어야 하는 대상이어야 하며, 그 챙겨주는 것이 주는 이의 원하는 게 아니라 받는 이의 필요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 게 더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고 효용이 있기 마련이다. 무턱대고 잘해주는 것은 때로는 불편한 사항이기도 하다.      


 내가 고3 때, 어설픈 연애와 수능 스트레스로 힘들어 하는 이 시점. 한 여자가 나에게 고백을 했다. 정말 싫은사람이 해서 나는 좋게 거절했지만, 다시금 그녀와 대화하기 꺼려질 정도로 민망했다. 그런 그녀가 더 싫어진 것은 그녀가 좋아하는 애가 나의 절친한 남자아이였다. 그와 잘 되지 않기에 내게 찔러본 것이다. 즉, 질투심 유발로 날 끌어들이려고 한 셈이다. 이를 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뻔히 그녀가 내 친구를 좋아하는 것은 익히 다 아는 것인데 굳이 갑자기 친하지도 않는데 사귀자고 하는 게 어떠한 꿍꿍이일까? 감히 고단수 눈치에게 어설픈 심리적인 계략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왜 모를까? 여하튼, 그녀는 내 친구에게 과하게 잘해줘서 내 친구도 진저리 나게 만들 정도다. 아니, 이제는 그 과잉에 내 친구가 덜덜 떨면서 무서워하는 과정까지 봤다.

     

 내 친구는 좀 훤칠하면서 인물도 좋고 성격도 좋고 꽤 공부도 곧 잘했다. 심지어 교장선생님도 조회시간 마치고 저 학생의 품위가 단정하니 모두들 본 받도록 해야 하지 않냐며 칭찬한 학생이다. 그런 그에게 여러 학우가 따라다니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오히려 그에게 시험 전 초코릿을 주지 못하기에 내게 전해주는 후배들도 있었다. 난 단지 그의 친구라는 이유로 다소 챙겨받은 것도 적지 않다. 때론 좋지만 때로는 친구보다 못한 내 스스로가 한심해 보였다. 그리고 처량했다. 처음엔 친구를 팔아서 몇 번 호강했으나 나중엔 귀찮아서 도움은 커녕 시험공부하느라 바빴다.     


 그녀의 그 친구를 향한 지극정성은 충격 그 자체였다. 우선 시험 날 초코릿을 전해주는 풍습이 있는 그 시절. 그 친구의 도서관 사물함에는 뭔가 박스가 있었다. 열어보니 비싼 초코릿과 또 하나의 사진. 아니 사진이 아니라 그림인데 워낙에 오랫동안 그린 티가 난 초상화다. 이 친구를 생각하면서 꼬박그린 듯하다. 친구가 어느 정도 여자로 보였다면 이 자체가 감동인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기에 너무나도 무서워했다. 친구는 그 그림을 보면서 한 숨을 내쉬며 건방진 이야기 했다.


"와.. 도대체 이건 누가 준거야? 이렇게 공부하면 서울대 가겠다"    

 

친구는 감동은 커녕 그녀가 누군지 궁금한 것도 한심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초상화는 어디다가 치웠는지 모른다. 여하튼 그 초코릿은 나에게 주면서 다 먹으라고 했다. 덕분에 늘 그런식으로 해치웠다. 중요한 것은 그녀는 이 상황을 알런지가 궁금했다. 누가 보낸건지 알 수가 없지만 우리들은 눈치를 이미 챘다. 그림 좀 그릴 줄 알고 이 시간에 공부하지 않고 이렇게 사랑타령을 하는 이. 그리고 내 친구에게 조심스레 관심을 보이는 이를 추축할 수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고백을 받고 아니 고백이라고 보다는 질투심 유발하는 그 심보를 떠나서 그녀를 피했다가 졸업식 전날 물었다. 나중에는 자신이 시인을 해버렸다. 근데 왜 직접 말하지 못했냐고 했다니, 그녀 또한 그가 자신을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렇게 뒤에서나마 잘 해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이 바보야. 그 게 더 무서워! 너 스토커니?"     


 라고 얘기하려다가 상황에 맞지 않아서 꾹 참았다. 생각해보니 도서관에 있는 서랍은 자물쇠가 있는데 어떻게 넣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둘 중 하나인데 둘 다 무서운 것이다. 하나는 자물쇠 번호를 그녀가 알고 있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잠시 화장실 갔거나 밥먹으러 나간 사이에 넣어둔 것이다. 그만큼 우리가 자리를 비었는 지 확인을 하고 한 것 같다.      


뒤에서 챙겨주기가 실패하는 이유

 1) 너무 빈번하게 챙겨주기 
     (밀지 않고 당기기만 하는 것이기에)

 2) 너무 무턱대고 이상한 걸로 챙겨주기 
     (상대방 입장을 전혀 고려 않음)

 3) 너무 정밀하게 상대를 잘 알면서 챙겨주기
     (감시당하는 느낌)


 물론 그 방법도 무섭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그 친구가 당장에 필요로 하는 것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 수학문제와 과학문제를 올리는 것이었다. 근데 그런 상황에서 갑작스레 초상화와 초코릿은 반갑지 않는 선물이다. 아마도 그녀에게는 그에게 원하는 것이 자기의 맘을 알아달라는 것 같은데 중요한 것은 그 친구의 마음인 것이다. 당시에 그녀는 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다. 차라리 그 무서운 방법은 하지 않았던 게 나을텐데 싶었다. 왜냐하면 그 친구는 외모를 잘 보지 않기 때문이다. 또 하나, 내가 너무 친한데 나에게 들이댄 그녀의 이야기를 숨기지 않고 난 친구를 위해서 말해줬다. 아마도 그냥 말 걸기 싫은 사람에서 꼴 보기도 싫은 사람으로 전락되었을 것이다. 그 후로 빈번히 챙겨줘서 이보다 나쁘게 될 수 없었으며, 또한 무턱대고 이상한 걸로 마음을 전하는데 나 또한 보는 내내 찡하기는 커녕 안타까웠다. 그리고 그녀는 그를 너무 많이 정밀하게 알기에 마치 스토커가 감시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하여 내 친구는 늘 하는 소리가 어서 졸업해서 이 동네의 바닥을 떠서 대학가 화려한 캠퍼스 여자를 얻겠다고 타령을 했다. 심지어 공부에 방해가 된다며 차라리 다른 학교에 여자친구가 있다고 나보고 대신 전해달라고 거짓을 꾸미기도 했다. 정을 떨어뜨리려고 안간힘을 썼는데, 결국엔 그녀가 알아서 퇴장했다. 그녀 또한 그간 지친 것이다.      


 당시 철이 없어서 몰랐는데 후에 그녀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다. 자기 자신을 싫어하는데도 왜 불편하게 그녀는 그를 위해서 무조건 잘해주는 지.... 물론 당사자에게는 무시당하지만 오죽 좋으면, 진짜 좋으면 그렇게 대하는 지, 커서 조금 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더 지나서 그래도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배우게 되었다.      


뒤에서 챙겨주기 이해도

1) 내가 원하는 이성에게 엄청 챙겨주기  

2) 챙겨주기 방법이 드러난 것보다는 은밀한 것이 나은 걸 알게 됨

3) 무조건 잘해주는 이의 마음을 이해함 (오죽하면)

4) 그래도 무조건 잘해주는 방식은 안되는 것을 깨우침

5) 내가 좋아하는 상대가 진정 필요로 하는 게 뭔지 상세히 알면서 행동하기

6) 나를 좋아하는 상대가 내게 왜 이렇게 대하는 지 이해하며

   남녀관계가 아니라 인간vs인간의 인격적으로 대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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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키다리 아저씨 같은 대학 선배  


 대학교 다닐 때, 귀여운 후배가 있었고 이제 막 군대에 제대한 선배가 있었다. 그 선배는 상당히 괴수같은 외모를 지내서 귀여운 후배는 그저 알고 지내는 맘씨 좋은 선배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저 학년이 같아서 몇 명 학우와 어울리다가 알게 된 사이인데 그렇다고 바로 진전이 되지 않는 것이다. 단 둘이 만나는 것이 귀여운 후배에게는 부담이라서 그렇게 만나는 것을 싫어했고 실제 당시 귀여운 후배에겐 이미 남자친구가 있었기에 그 후배를 남자로 보지도 않았다. 물론 사적으로 너무나 잘 대해주는 것은 자신을 좋아한다는 데 알고 있었으나 그냥 저라다가 포기하겠지라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이 선배는 보통이 아니다. 상당히 자신의 무가치한 존재를 발산하려고 안간힘을 다 한다. 심지어 그 귀여운 후배를 밥 한끼사주려고 몰려다니는 친구들 모두 불러 놓고 7명 밥도 사줄 정도로 그녀에게 눈에 띄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일부러 같은 과제의 팀이 되어서 그녀의 몫까지 성심성의껏 일일이 챙겨주었다. 심지어 그의 노력은 이루어 말할 수 없는데 특히 대 놓고 들어내지 않고 뒤에서 챙겨주는 데 감동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녀가 읍내에서 장을 보려고 하면 그는 자신이 차가 없지만 각고한 노력 끝에 친구의 차를 빌려서 그녀와 함께 장을 본 경험도 있는 것이다. 후에 알고보니 친구에게는 리포트 과제를 더 한다는 뜻으로 선뜻 빌리게 된 것이다. 이건 약과에 불과하다. 그녀가 핸드폰을 잃어버렸는데 그녀는 그저 분실신고 후 다시 찾겠다고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저기 자신의 핸드폰을 찾아야 한다며 대자보고 붙여져 있지 않겠는가? 그것도 남자가 여자의 말투로 찾아달라고 씌여져 있다. 거기에 번호는 당연히 그 선배의 번호다. 대부분 사람들은 모르지만 오로지 그녀는 안 것이다. 한 남자가 여자를 위해서 이렇게 은근히 뒤에서 챙겨주고 있다는 것을. 그렇게 그 선배는 아무도 눈이 띄지 않게 새벽에 일어나서 여기저기 학교 근방에 대자보를 붙여가며 그녀의 폰을 찾는데 일조한 것이다. 물론 그 핸드폰을 찾지 못했지만 그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는 서서히 그 괴수가 왕자로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친하디 친한 친구조차 선뜻해주지 않았고, 자신조차 게을러서 그렇게까지 하지 않는데 자신을 위해서 누군가가 이렇게 해준다는 것은 참으로 커다란 감동이 아닐 수 없다. 뒤에서 챙겨주는 이 감동이 결국엔 그녀가 마음을 열게 된 것이다. 그리고 무미건조한 남자친구를 서서히 정리를 하고 바로 사귀지 않고 몇 달을 기다려 달라고 한 것이다. 그것은 마음을 열었지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친해진 것으로도 그 선배는 너무나 기뻤다. 한결같이 곁에 서서 그녀를 위해서 지켜주었고 챙겨주었고 있어줬다. 마치 그녀에게 있어서 그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끔 만들어 준 것이다. 이 세상에서 최고의 공주로 대우를 해준 유일한 왕자님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그녀는 이래도 되는 지 고민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 선배. 늘 그녀에게 당기기만 했지 결코 밀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덧 그의 태도가 변했다. 그가 갑자기 언제부터 차가워진 것이다. 즉, 이제는 그녀를 공주가 아니라 때로는 인정받지 못한 서운함이서인지 딱딱하게 대하는 것이다. 물론 그 딱딱함은 영 토라져서 아예 만나기 싫은 정도가 아니다. 그녀에게 자신은 그리 쉽고 만만한 사람으로 이제는 보이지 않기 위한 일이기도 하다. 이제는 그녀도 그가 시간이 되면 고려한 뒤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는 그러한 자동문이 아님을 알았다. 그에게 가면 편히 쉴 공간이기는 하지만 이제는 그녀의 노력으로 그 문을 열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방에 들어갈 유일한 열쇠를 물론 가지고 있지만, 그 열쇠가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한가지 팁은 여기서 인기이성과 일반이성의 차이점이 있긴 있다. 일반이성처럼 인기이성에게 대한다면 별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인기이성은 그만큼 치열하기 때문에 감히 하나의 팬이 스타를 좋아하는 듯 달려가면 가벼워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일반이성에게는 듣기 힘든 '이쁘네요'가 칭찬이지만, 인기이성에게는 '이쁘네요'는 밥 먹듯이 듣기에 별 의미가 없다. 오히려 구체적으로 '오늘은 머리띠를 해서 더 어려보이네요!', 혹은 '오늘따라 화장이 좀 달라보이네요. 마치 모델같아요' 라고 하는 게 더 의미가 있다. 그만큼 남과 달리 자신을 세심하게 알고 있다는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뒤에서 챙겨주기의 밀고 당기는 조건     

1) 인기이성

처음부터는 무뚝뚝 대하기 -> 서서히 잘해주다가(기억에 남을 정도의 세심하게)

  -> 다시 관심을 끊어야 한다 -> 자신이 쉬운 이성이 아님을 강조 ->

  그리울 시간이 필요 -> 다시 잘해준다 -> 평생 곁에 있어주기를 소망하게 한다     

2) 일반이성

처음에는 조금씩 잘해주기 -> 다시 서서히 끊어야 한다 -> 상대가 조급해진다

  -> 이해시켜야 한다 -> 그리울 시간이 필요 -> 다시 잘해준다 -> 평생 곁에

 있어주기를 소망하게 한다


  여기서 그녀는 내가 볼 그저 일반이성인데 그 선배에게는 인기이성처럼 다뤘다. 그리고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약간의 남자를 홀리게 하는 게슴츠레하기에 많은 뭇 남자 학우들에게 사랑의 신호를 보내는 오해를 삼기도 했다. 그래서 나름 그녀는 여라 남심을 흔들어 숱한 인기를 받았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해가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인기이성의 반열대에 올라져 있으니 그렇게 대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그녀 자신도 자기는 돌맹이인데 사람들이 왜 황금으로 아는 지 모르겠다고 할 정도이니깐~! 지금 이 부분에 있어서 객관적으로 생각하면 아마도 외진 곳에서는 그렇게 보일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      


 여하튼, 그런 그녀가 이러한 애정문제의 고민을 뒤로하고 우선적으로 리포트에 찌들다가 결국 자취방에서 쓰러져서 잠을 잤는데, 일어나 보니 5일치 치우지 못했던 방청소 및 빨래 그리고 음식물정리까지 싹 다 해놓고 누군가가 간 것이다. 알고보니 자신이 방을 잠그지 않고 잔 것인데 그 와중에 신사답게 몰래 방을 치우고 간 사람이 있다는 점에서 안도감을 쉬었다. 그건 누가봐도 그가 한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그를 받아들였다.      


 열 번찍어도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고들 한다. 물론 못 올라가는 나무는 쳐다보지 않는 게 상책이란 말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원한다면 못 올라갈 바에 몇 번이라도 찍어야 할 것이다. 되든 안 되든 결과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시도다. 시도를 하는 게 다 연애를 배워가는 것이다. 사랑하는 이가 있다면 과감하게 도전해야 한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공격적이 아니라 우선 친해진 다음에 친절히 대해야 할 것을 알아야 한다. 그 다음에 은근히 뒤에서 챙겨주는 센스로 과감하게 도전해야 할 것이다. 이 일련의 과정 속에서 기대심을 너무 갖지 않아야 한다.      


사랑하는 이에게 챙겨주는 과정

 1) 친해지기 2) 친절히 대하기 3) 뒤에서 챙겨주기 4) 기대하지 말기     


 사람은 얻을 수 없다. 잠시 만나는 것이다. 잠시 잘해주는 것으로 사랑을 바라는 것은 잘못된 마음씨다. 그렇기에 상대가 결혼까지 해준다는 것은 상당히 고마운 것이다. 자신의 드러남으로 상대에게 공격적으로 보이지 않고 은밀한 곳에서 뒤에서 챙겨주며 그녀의 안도감있게 기억나게 해야 할 것이다. 뒤에서 챙겨주는 것은 때로 상대에게 커다란 후원자같은 든든함으로 기억이 된다.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너무 뒤에서만 챙겨주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자칫 소극적이고 스토커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앞 뒤 모둘 필요하다.      


챙겨주는 방식에 따른 이미지

 1) 앞에서만 챙겨주기 공격적으로 느껴짐보상의 댓가를 바라는 사람처럼 보임

                        사랑의 확답을 얻으려는 것 같음

 2) 뒤에서도 챙겨주기 안도감으로 느껴짐보상 없이 있는 그대로 모습으로 보임

                        사랑의 확답을 주려는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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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쉬운 여운     


 사랑은 다소 아쉬워야 더 애절한 듯하다. 그만큼 기대에 따라서 이루게 되면 그 이상의 공허함도 없을 것이다.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도 때로는 아쉬움에서 접는 것이 영원히 가슴 한 켠에서 살아 숨쉬게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루지 못하기에 상대적으로 더 갈구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늘 가치가 있는 것은 빈번히 일어나면 안되는 것이다. 그 가치의 희소성이 소멸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4년만에 열리는 월드컵이다. 많은 축구 광팬들은 4년이라는 시간은 너무 길다고 FIFA에 3년으로 제안했지만 이룰 수 없었다. 4년이기에 월드컵 가치가 더 의미와 빛을 볼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 뜻을 이해한다. 정말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선수에게 있어서일생에 1번 혹은 2번정도의 뛰는 거 자체가 커다란 영광이 되는 셈이다. 제 아무리 축구를 잘하는 우리나라 80년대의 최고 선수 '차범근'도 아쉽게 월드컵에서 골을 넣지못하여 평생 아쉬움으로 자리잡았을 것이다. 그만큼 빈번히 일어나지 않는 것은 그만한 희소성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성도 그러하다. 너무 자주 빈번히 보면 가족처럼 느껴진다. 전혀 신비감도 없으며, 전혀 색다른 면으로 끌리지도 않게된다. 오히려 더 이성이 아니라 끈끈한 우정만이 늘어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아쉬운 여운 속에서 극복하고 만나는 커플들은 이러한 상황을 이겨내기도 한다. 가령, 장거리 연애를 한다거나 1달에 1번 만나게 될 수록 더 그렇다. 일주일이 7일인데 무려 4일넘게 만나는 커플이 있다면 좀 떨어지면서 서로를 생각할 시간이 필요로 하다고 본다.      


희소성의 가치에 따른 아쉬운 여운

빈번하게 사랑하는 이와 만남(X) -> 떨어져 있으면서 서로 생각 -> 그리워 함

 (다른 이성을 만나면 안 됨)      


 사랑은 아쉬운 여운에서 그 빛을 발할 때가 있다. 없을 때, 왠지 모를 허전함과 외로움 속에서 이성에 대한 갈망이 크기 때문이다. 단, 붙어 있지않고 떨어져 있는데 다른 이성을 만날 겨를이 많다면 이 사랑은 다소 위태로우니 잘 선택해야 할 것이다. 아쉬운 여운이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 지 영화 속에서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아쉬운 여운이라는 테마에 맞는 영화로는 '여인의 향기'와 '시네마 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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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여인의 향기 (1992) - 짧은 찰나에 로멘스를 남긴 그 사람


 한 사내가 있다. 퇴직한 장교이자 눈이 먼 장년. 부득이한 이 몸뚱아리로 어떠한 소망을 가지고 있을까? 배우 알파치노는 '프랭크 슬레이드'의 연기를 완벽소화해서 더 독보였던 작품. '여인의 향기'다.      

 이 퇴역장교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랴? 그저 나라를 위해서 헌신적으로 일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생긴 이 아픔. 그는 그러한 상황 속에서 좀처럼 꿋꿋함을 잃지 않았다. 오로지 그는 강인한 모습으로 자신을 전혀 가여워 보이지 않게 위해서일까? 위험을 떨쳐 보이는 인물이다. 이러한 눈먼 장교를 간호하는 일을 하려고 온 일종의 알바생 청년이자 고등학생인 사내가 온 것이다. 둘은 오묘한 관계다. 한 시대의 미래를 짊어질 그에게 눈먼 장교는 그저 동경이 아닌 연민의 대상일 것이다. 그러한 동정을 따위를 알파치노는 철저히 거절하며 순조롭지 않는 보호가 시작이 된 것이다. 하지만 대화를 통해서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면서 둘은 어느 덧 세대를 뛰어 넘어선 친구가 된 것이다.      


 그렇게 두 친구는 어느 덧, 모든 것을 터 놓고 지내는 사이가 되어 간 것이다. 마음을 먹고 알파치노의 2가지 소원을 이루려고 떠났다. 그 한가지는 여인의 향기를 맡아 보는 것이며, 또 하나는 페라리 스포츠카를 타고 달리는 것이었다. 중년의 남자로써 단순히 육체적인 쾌감을 위해서 정욕을 채우려는 게 아니라 순수하게 그 어떠한 거래없이 여인의 향기를 맡아보고 싶은 마음이다. 아마도 그는 눈이 보이지 않기에 후각이 발달했기에 사랑 그 이상의 승화를 코 끝에서 맛 보고 있는 듯하다. 시각적으로 보일 수 없기에 그 너머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코로 바라보는 게 프랭크다.      


 그런 프랭크와 심슨청년 둘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던 찰나였다. 프랭크는 그 와중 민감한 후각을 이용하여 여인의 향기를 느끼었다. 자신들의 위치는 2층이었으나 1층에 혼자 앉아있는 여인에게 흘러나온 것이다. 알파치노는 청년에게 묻는다. 혼자있냐고. 몇살쯔음 보이냐며. 청년은 어리고 혼자있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무작정 찾아가자고 한 것이다. 제 아무리 능력남이나 멋진 사람이라해도 중년이 앳띈 처녀에게 다가가서 이야기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게다가 그는 눈이 먼 사람이다. 근데 무슨 의미로 찾아가는 지 이를 보호하는 청년 심슨은 역시 의아하지만 그래도 그의 뜻을 따르기로 한 것이다.      



 아릿따운 숙녀 도나곁으로 다가선 두 사람. 처음엔 그녀 또한 잘생긴 청년이 오자 눈길이 갔지만 실제적으로 호감을 보이는 것은 눈먼 중년의 남자라서 여자는 좀 이상하게 쳐다본다. 하지만 실례를 양해받아 앉으면서 대화를 나눈다. 여자가 쓰는 비누의 향을 맞추고 나즈막하며 조심스레 말을 주고 받는다. 곧 여자의 애인이 오기 때문에 시간이 촉박함을 알고 있다. 여자 또한 그런 것에 대해서 꽤나 불안해 보였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여유로워 보였다. 단순히 어떠한 무례함이 아니라 레스토랑에서 연주가 되는 탱고 노래에 귀를 기울였고. 그녀와 함께 탱고춤을 추자고 제안했다. 헌데 그녀는 탱고를 잘 추지 못해서 행여나 발을 밟지 않을까 노심초사 했다. 하지만 그게 바로 탱고라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프랭크는 부드럽게 이끌어 낼테니 따라오라며 다시 제안을 했고, 그녀는 기다리고 지루할 찰나에 그저 춤 한번 추자는 말에 응했다. 그리고 청년의 도움을 받아 탱고를 출 수 있는 스테이지에 둘이 올랐다.      



 이윽고 때마침 나오는 연주곡. 'Por Una Cabeza - The scent of a woman' . 영화의 이 장면은 모든 영화사 중에서 춤의 명장면으로 씬으로 기억될 것이다. 기억될만한 씬이다. 예고편만으로 보면 둘은 남녀주인공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프랭크에게 있어서 이 여자는 단순히 스쳐지나가는 여자다. 하지만 그녀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왜냐하면 그가 꿈꿔온 장면이기 때문이다. 커다란 소원 성취를 하게 해준 숙녀이기 때문이다. 서툰 그녀의 살짝 허리를 감싸 앉으며 탱고리듬에 둘은 몸을 맡긴 채 스텝을 밟아 나간다. 하나, 둘, 하나, 둘. 그리고 턴. 고개도 좌우로 털며 프랭크의 말대로 틀려도 된다. 그게 바로 탱고니깐. 탱고는 잘 추는 게 아니라 춤을 추는 자체가 이미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여유를 주면서 그녀는 탱고의 응하게 되었다. 아마 머리가 응한 게 아니라 순간적인 떨림과 분위기에서 응한 것이다. 어느 새 둘은 스테이지에 오르게 되었다. 그 둘은 지금 막 알게 된 사이지만 서서히 하나가 되었고, 이를 지켜보던 심슨도 그가 대단해보였다. 비록 그는 눈먼 중년이지만 지금 아마도 그를 그렇게 보지 않았다. 마치 둘은 멀리서 보고 있다면 능력있는 중년의 여인처럼 보였을 것이다. 비록 짧은 찰나지만 둘의 춤은 영원히 서로에게 기억될 것이다. 사실상 그 장소는 춤을 추는 장소도 아니었는데 둘은 낭만의 장면을 춤으로 승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춤의 막바지에 다닳으게 되자 여인도 꽤나 리듬에 취해있으며, 미소를 한 껏 지었다. 여인의 다리하나가 그의 허벅지를 올리더니 고개를 뒤로 제치자 자신도 모른 고난이도 춤에 빠지게 되었다. 여인에게는 아마도 기존에 자신을 대하던 청년들과 달리 이 중년의 로멘스에 서서히 빠져들고 있었다.      



 어느 덧, 춤을 마무리가 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커다란 박수를 받으며 스테이지를 나오게 된다. 때마침 여인의 남자가 등장했다. 그는 탱고 춤을 보지 못했지만 여인의 소개로 심심하던 찰나 곁에 있어 줬던 신사라며 소개한다. 여인의 남자는 당연히 그 대상이 보호하는 청년인 줄 알며 악수를 나누자 여인이 그 옆에 눈먼 중년이라고 하자 당혹스러워하며 재차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로멘스와 거리가 먼 그 여인의 남자는 재빠르게 그녀와 함께 자리를 옮겼다. 그녀. 비록 짧지만 이 아쉬운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녀는 애인의 손에 묶인 채 이를 떠나지만 아쉬움이 가득했다. 행여나 오늘같은 로멘스적인 면을 다시금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모습으로 떠나면서 뒤 돌아보고 아쉬워 한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짧았지만 충분히 아려한 추억으로 자리잡으며 서로를 멀리하게 한 것이다. 그 후로 둘은 만날 수 없지만 알파치노는 그녀에게 있어서 가장 로맨틱한 남자로 기억이 될 것이다.      


 아쉬운 여운. 우리 사랑도 때로는 이와 같이 몇 % 부족한 채 살아야 할 것이다.


* 여인의 향기 (알파치노의 장님으로 춤리드하는 연기)

https://www.youtube.com/watch?v=AagAV30bW8Q


무조건 잘해주면 되는 줄 안다. 마치 동냥을 얻듯이 각설이가 구걸을 하면 돈을 주고 싶을까? 예를들어 지하철 종이를 나눠주는 걸인들에게 돈을 요구하는 거 보고 돈을 선뜻 만원 주는 이는 없을 것이다. 물론 잘 모르는 사람이기에 주기가 아까운 것도 있지만, 수준이 낮은 사람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무조건 사랑을 동냥하는 것은 그리 헌신적이지 않다. 때론 이를 분간하지 못해서 무조건적인 이타적 헌신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하는데 중요한 것은 상대에게 필요하고 기댈 수 있는 강한 존재의 헌신이 필요하다. 나약한 동냥에 가까운 헌신은 별 영양가가 없다. 그렇기에 사랑이 약하다면 사랑을 찾기보다는 자기 실력을 쌓는 게 더 효과적인 방법이다. 자신이 하는 일이 멋지면 상대가 붙는다. 하지만 그 시간에 다른 대상들을 번걸아 가면서 만나면 그 당시 좋을 지 모르지만 별 영양가 있고 의미있는 만남이 아니다. 사랑도 아닌 그냥 연애수준이다.      


 어쩌면 쉽게 만나서 쉽게 헤어지는 것보다 이루지 못한 사랑이 더 기억이 되며, 그 남은 공간을 더 채우려고 애를 쓸 것이다. 그 것이 사랑의 완성을 위한 목표이기에 우리는 그 완성의 모습을 최대한 넓게 자리잡아야 할 것이다. 너무 좁게 잡으면 사랑이 금새 가득 차 넘치기에 때로는 식상하거나 지칠 수 있다. 그리고 또한, 너무 무미건조할 수가 있다. 연인사이에 자주만나게 되면 아쉬운 여운은 커녕 지겨운 일상이 될 수가 있다. 사랑만큼은 현실을 뛰어넘는 환타지 요소로 기억이 되어야 할 것이다. 추후 부부로 살다보면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 인간미가 있지만 환상이 깨지며 살게 된다. 하지만 이 결혼을 하기 전. 연인일수록 더 아쉬운 여운이 많아야 한다. 그렇게 되어야 서로 오랫동안 살 수 있는 사람으로 기억되어 부부가 되어야 한다.      


 만일에 동거를 시작한 연인일수록 결혼 후 부부로 살 때, 별 감응이 없을 것이다. 이미 아쉽지 않을 만큼 다 아는 사이가 되어서 결혼이 시작 되었기에 그렇다. 그리하면 동기랑 별반 차이가 없다. 사랑은 그렇게 빠르게 진행이 되어서는 안 된다. 때로는 약간의 아쉬운 여운이 많아야 한다. 그리고 날마다 그 것에 대해서 채워가려는 모습으로 사랑이 물어 익어야 한다. 재빠르게 익어버린 열매는 가치가 없다. 당연한 결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 흙, 그리고 햇빛 등으로 오랫동안 이 요소를 받아 충만한 시간 속에서 열매를 맺어가는 모습을 보면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그리고 더 기다린 만큼 관심이 간다. 소위 말하는 '뜸'을 드려야 한다. 천천히 익혀야 한다. 그리고 완전하지 않는 상태에서 헤어짐으로 여운의 미를 남겨야 한다. 그래야 다음에 더 만나고 싶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 '아쉬운 여운'으로 헤어짐

1) 다시 보게끔 생각나게 하는 요소

2) 서로가 아껴주기 위한 배려

3) 사랑의 편안함을 주려는 여유     


 주변에 혹시 자주 만나는 커플이 있기는 한데 이는 그리 좋은 방안이 아니다. 특히 붙어다니는 대학교 같은과나 같은 직장이 이러한 편에 속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삶 속에서 연인과 함께 있다는 것인데, 이 자체가 그리 아쉬운 여운이 아닌 지겨운 식상만이 가득 차 넘칠 것이다. 일거수일투족을 다 아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구조가 아니다. 우리는 설령 그렇지 않아도 상대에게 신비감이 있어야 할 것이다. 마치 상대는 화장실에서 지저분한 것과 거리가 멀게끔 느껴질 정도의 이미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자신과 함께 너무 오랫동안 지내다보면 초반의 기대심리와 다르게 약점과 단점이 발견하게 될 것이며, 그에 따라서 기대치에 낮아져서 설레임 감도 없이 무뎌지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별 것도 아닌 것에 오해와 트집 그리고 들키기 뻔한 변명으로 남보다 더 싫은 존재로 헤어지게 되는 일도 있다.      


 이와 반대로 첫 연애를 할 경우 잘 몰랐으나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하며는 다시는 주변 사람에게 찾지 않는 사람도 더러 있다. 다시는 위의 내용처럼 경험을 또 다시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어떠한 대학후배는 무조건 같은 과에서 사귀지 않는 것을 머릿속 철칙으로 여기는 이도 있으며, 필자 주변의 친구도 같은 교회나 같은 직장에서는 절대 썸씽조차 생기지 않게 노력을 한다. 그렇게 되면 일 혹은 애인 둘 중에 하나를 나중에 포기해야 할 때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아예 일주일에 1번 혹은 최대 2번까지 만나기로 한 커플도 있다. 그 이상 만나게 되면 벌써부터 식상해보이기에 더 보고싶을 때, 우여곡절 만남을 성사시키는 것이 좋다고 판단한 것이다. 어쩌면 장거리 커플들이 더 끈끈한 경우가 있다. 물론 너무 멀어서 자주 못보게 되어서 눈에서도 멀어지면 마음에도 멀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도에 따라 다리지만 아쉬운 여운으로 시작되는 것이 설레고 더 애틋하고 순수한 사랑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상황이다. 주변에 너무 친해서 친구이상 마치 가족처럼 지내다가 사귀는 경우가 있는데 이미 친구에서 시작되어서 계속 친구로 보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아쉬운 여운이 전혀 없는데 출발한 잘못된 예이기도 하다.      


 사랑은 다소 아쉬워야 한다.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걸음마처럼 배워나아가야 한다. 첨부터 급하게 먹으면 체하듯이 순리대로 건너야 할 것이다. 쟁취 할 듯 말 듯하면서 도전의식도 생겨야 한다. 쉽게 번 돈은 쉽게 쓴 것처럼 어렵게 번 돈은 애틋하게 여기기 마련이다. 사랑도 그렇다. 쉽게 만나면 쉽게 헤어진다. 빨리 진행되어 만나면 또 그만큼 빨리 진행되어 헤어지기 마련이다. 빠른 정복이 아닌 아쉬운 여운으로 서서히 상대이 마음을 헤어려가는 게 진실된 사랑이다. 서로를 보고 싶어할 만큼의 끈을 두고 저울질 해야 한다. 싱숭생숭한 미묘한 감정과 뒤에서 챙겨주는 것을 동반하여 아쉬운 여운을 남겨야 한다. 그렇게 해야 사랑의 심리적 반응의 물결이 요동치면서 가슴도 같이 뛸 것이다. 이러한 상황 조차 없다는 것은 심리적 반응이 한결같아서 무미건조하다.     

 

 또한, 그 자체가 서로를 아끼는 데 있다. 스킨쉽도 너무 과하게 하면, 이것은 사람을 좋아하는 지 아니면 자기만족을 위해서 상대가 성적인 대상물인지 혼동스러울 때가 있다. 서로를 아쉬움 속에서 배려한다면 더 사랑이 무드스럽게 작동됨을 알아야 한다. 게다가 만일 스킨쉽이 어쩔 수 없이 행한다면 더 짜릿하다. 여인의 향기의 영화처럼 절제된 스킨쉽으로 대하는 것. 그 외에 예를들어서 작은 우산을 함께 쓴다던지 드라마 스크릿가든처럼 현빈의 두 무릎을 안은 채 윗몸일으키기 하면서 하지원과 얼굴을 서서히 다가서는 모습. 마치 윗몸 일으키기를 하기 위함인지 아니면 키스를 하려고 연출한지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이 상황이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또한 밀려오는 엘리베이터 승객으로 인해서 호감있던 남녀가 그간 어색했는데 더 달라 붙는다던지, 사진을 찍으려다가 어깨에 처음으로 손이 간다던지 등등 이러한 상황. 어쩔 수 없이 대하기에 절제감 있는 스킨쉽이기도 하다. 이러한 과정이 아쉬운 여운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이러한, 아쉬운 여운. 하지만 만일에 오래된 커플이라면 이런 요소가 많이 시들어지게 되어 버릴 수 있다. 015B의 '아주오래된 연인들'처럼 의무감으로 저녁 쯔음 전화를 하거나 주말에 만나주는 것! 이는 사랑이 아니라 봉사와 다름이 없다. 이런 식상한 사랑을 여태 해왔다면 밀고 당기는 기술을 익혀야 할 것이다. 때로는 위험천만하지만 사랑싸움도 하면서 그 무미건조한 반응에 물결도 쳐보고, 3각관계의 오해 속에서 진정한 사랑을 잦으며 그 아름다운 꽃을 피워야 할 것이다. 아주 오래된 커플일수록 아쉬움이 없기 마련인데, 그래도 서로 모르는 부분에서 다시 시작하고 새롭게 아쉬운 여운으로 다가서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하다 못해 매일 만났더라면 가끔씩 만남도 추천할 만하며, 서로 떨어져 서로를 더 생각하고 만나다 조금 이르게 헤어질 때, 준비한 편지를 남긴 채 떠나는 방법도 좋은 예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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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시네마천국(1989) - 공주를 99일 기다린 병사



* 시네마천국 (명장면_편집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2kwpWbShwxA

영화 - 시네마천국 중에서



아쉬운 여운이라는 테마를 정리하다보니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영화 속 두 주인공의 대화다. 토토와 알프레도의 대화는 진정한 사랑을 위해서 찾아가려는 애틋한 마음이 그려지고 있다. 이 영화 자체가 '내사랑 영화처럼' 되기 위해서 알프레도는 또 다른 인생의 제자인 토토에게 무엇인가의 메시지를 남긴 것이다. 그들의 삶은 영화와도 밀접한 관계가 깊다. 늘 성당에서 영상기를 돌리는 알프레도. 그리고 그러한 어린 토토는 어깨너머 그 일에 대해서 배우려고 하는 아이다. 인생의 있어서 전쟁에 잃은 아버지가 없기에 더욱 알프레도를 아버지처럼 여겼었다. 물론 토토의 엉터리 마술로 화재가 되어서 알프레도도 눈이 멀게 되었기에 더 가까이서 보살피고 그의 일을 대신해야 했어야 했다.      

 늘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것을 곁에서 알기에 누구보다 알프레도는 토토를 아꼈다. 그리고 내심 그가 자신처럼 이 좁은 마을에서 영상기나 돌리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않고 더 세상으로 나가서 좋은 삶을 펼치기를 원한다. 그래서 늘 그에게 좋은 조언을 많이 해주면서 힘을 실어준다. 어느 때에 토토가 어른이 되어가면서 사랑하는 이가 생긴 것이다. 바로 토토와의 가난한 형편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부잣집 딸 '일레나'다. 두 사이에서는 역시 양 부모의 반대도 있다. 그리고 사랑이란 그 감정만으로 모든 걸 함께하기란 너무 힘들어 보이는 만남이다. 이러한 상황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알프레도는 공주를 기다린 99일 기다린 병사의 이야기를 먼저 얘기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알프레도 : 널 위해 내가 얘기하 나 해 줄까? 비극 중의 비극이지

아주 옛날에 국왕이 연회를 열었는데 국내의 미인들은 전부 초대를 받았지

그런데 국왕의 호위병사가 공주가 지나가는 걸 보았어

미인 중 공주가 제일 예뼜고 병사는 사랑에 빠지고 말았지

하지만 공주와 일개 병사의 신분 차이는 엄청났지

어느 날 드디어 병사는 공주에게 말을 걸었어     


"공주 없는 삶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라고 말이야. 공주는 병사의 말에 깊은 감동을 받았어. 공주는 병사에게 말했지     


"그대가 100일 밤낮을 내 발코니 밑에서 기다린다면 기꺼이 그대에게 시집을 가겠어요"     


병사는 쏜살같이 공주의 발코니 밑으로 달려갔어 하루, 이틀, 10일 20일이 지났지

공주는 창문으로 줄곧 봤는데 병사는 꿈쩍도 안 했어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눈이 오나 변함이 없었지

새가 똥을 싸도 벌한테 쏘아도 움직이지 않았어     

그리고....

90일이 지나자 병사는 전신이 마비되고

탈진 상태에 이르렀어 눈물만 흘릴 뿐이었지

눈물을 억제할 힘도 잠을 잘 힘도 없었던 거야

공주는 줄곧 지켜보았어     

드디어 99일째 밤

병사는 일어서서 의자를 들고 가 버렸어     


토토 : 마지막 밤에요?      


알프레도 : 그래, 마지막 밤에 이유는 나도 모르니 묻지 마라네가 이유를 알게 되면 가르쳐 주렴     



 아니!, 왜 그래야만 했을까? 처음에 이 얘기를 듣고 상당히 의문이 많았다. 병사가 혹시 날짜를 잘 못 센 게 아닐까? 100일과 99일을 몰랐을까? 아닐 것이다. D-day를 꿈꾸며 살았기에 그 어떠한 것보다 이 숫자에서는 민감했을 것이다. 공주 또한 잘못 안 것일까? 한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는데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달력에다가 날짜를 보면서 그 날만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병사는 그런 선택을 했을 것인가? 나 역시 어릴 적에는 이 질문에 확고한 답을 몰랐다. 그냥 우리에게 가슴이 아픈 이야기를 전해주는 한 스토리로만 여겼다. 그 답을 모르니 더 답답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된 이유를 찾은 듯하다. 이 답을 여기다가 바로 적어서 볼 수 있지 않고 독자들도 곰곰히 생각할 시간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그래서 이 답은 맨 뒷 장에 적어보도록 하겠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토토는 일레나를 99일 기다리는 병사마냥 일레나를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렸지만 창문 아래에 토토를 보기만 했지 찾와주지 않았다. 너무나 낙심을 하고 그 병사의 마음을 이해했다. 하지만 놀랍게 일레나가 그에게 찾아온 것이다. 그렇게 기다린 것에 대한 가치를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두 사이에선 반대가 있었다. 일레나는 토토에 대한 갈망으로 알프레도에게 자신이 대한 메시지를 전해줄 것을 말한다. 하지만 알프레도는 굳이 토토에게 이야기 하지 않는다. 왜 일까?


그로 인해서 무려 30년이란 세월동안 갈라서게 된 계기었다. 훗날 토토는 알게 된 것이다. 바로 일부러 알프레도가 자신을 위해서 일레나의 메시지를 말하지 않게 된 것을.....     



 왜 일까? 너무나 어렸기에, 사랑만으로든 살아가기 힘든 이 어려운 현실을 잘 알기 때문일까? 노인으로써 그 척박한 성당에서 그저 영상기 돌리다가 눈이 먼 삶. 이러한 영상기의 생활을 토토에게만큼은 전해주지 않기 위해서일까? 누구보다 짧은 사랑을 쟁취하지만 칙칙한 삶을 살 바에 잠시의 사랑을 잊고 나중에 화려한 삶을 위해서일까? 어쩌면, 그 알프레도의 침묵 덕분에 토토는 일에만 전념했었고 그 결과 지금은 누구나 다 아는 영화감독으로써 성공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토토는 그저 알프레도에게 서운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까지 대한 이해와 고마움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알프레도가 토토에게 일레나의 메시지를 숨긴 이유

1) 주변에서 반대가 많아서 ->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사랑의 아픔을 미리 차단

2) 토토가 자신처럼 천직이 되어 -> 영상기나 돌리다 인생을 보내지 말라는 의미

3) 아직은 둘 다 너무 어리기에 -> 서로 떨어져 사랑을 더 배워야 할 시기라서

4) 진정한 운명이라면 알프레도 도움없어도 -> 하늘에서 둘은 만날 것으로 여김     


 우리 현실에서도 어른들이 굳이 하지 말라는 결혼. 어쩌면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을 세삼 알게 되었다. 그 이유는 적어도 자신들처럼 살지 말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사랑도 사랑이지만 현실에 맞는 사랑에 눈을 뜨는 것도 필요로 할 것이다. 알프레도와 일레나는 물론 아쉽지만 아마 둘이 진정한 운명이라면 저렇게 알프레도가 갈라 놓아도 젊었을 때 만났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나이 들어서 만난 것도 뒤 늦게 찾은 운명이 아닐까? 정말 아들같아서 저러한 선택을 하게 했을까? 왜...     

 아마도 오랫동안 산 알프레도는 철부지 사랑으로 인해서 때로는 자신의 짓밟힌 꿈으로 얼룩지면서 사랑을 후회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왜! 자신의 이 지긋지긋한 삶이 토토에게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기에. 진정한 아름다운 사랑이라면 때로는 여운의 장식으로 제일 아름다울 때 마무리 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을 것이다.    

 

꿈보다 사랑이 우선으로 봐야 하는 것

훗날 사랑의 선택으로 평생 얼룩져서 살 수 없기에      


꿈을 놓쳐서 결혼을 하는 것보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사랑을 잘못된 변화를 우선 막은 게 아닐까? 필자는 그렇게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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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피천득 선생과 아사코의 4번째 인연은?  (1973년 출간)



* 피천득의 인연 (영상 참조) 

https://www.youtube.com/watch?v=OZe_90PV9es&t=228s


피천득 선생의 수필은 중 아니 필자에게 있어서 생애 최고의 수필이 중 하나가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어찌 옛 시대에 이렇게 섬세하고 로맨틱한 수필이 또 있을까 생각을 한다. 또한, 이렇게 짧은 분량의 글을 읽으며 삶에 있어서 다시금 생각해 준 귀감이기도 하다. 처음 이 글을 접할 때는 급한 상황에서 만나선지 대충 읽었다.  군대 있을 때 고작 이등병에게 글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화장실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피천득 선생이 수필을 읽고선 너무 상상에 빠져산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선생님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고 내가 한 여인을 7년동안 그리워하면서 늘 생각해 온 것이 바로 피천득 선생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진정 보고 싶은 사람을 그리면서 산다는 것은 행복하지만 때로는 애처롭고 버티기 힘든 것을 알게 되었다. 소원이 있다면 나 역시 피천득 선생님처럼 몇 번이나마 그녀를 봤으면 하는 갈망이 컸다. 시대를 뛰어넘고 피 선생님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게 인연이라는 게 말로 표현하기 쉽지 그냥 만나는 게 아님을 알게되었다. 그 깊이를 알기에는 시간이 걸리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연. 적어도 20대 초반에는 몰랐다. 당연히 만나던 사람이 같이 학교를 다니는 사람들이 대체적이기에 특별한 만남이란 없었다.      



 1920년대 말. 피 선생님이 17세에 일본에 넘어가 하숙할 때, 옆집 초등학교 1학년인 아사코와 만난 인연. 그와 함께 나눈 추억. 특히 학교 교실에서는 신을 벗고 신발장의 하얀 운동화(실내화)를 보여줬던 그 기억을 하고 있다. 헤어질 때 볼에 입을 맞추며 아쉬워해서 반지를 준 아사코. 그 모습이 커서 잘 어울리는 말에 내심 얼굴이 더워졌다고 한다. 피선생님은 그런 아사코를 못 잊다가 10년 후 다시 만나게 된다. 이제는 처음 만난 피선생의 나이가 된 아사코. 그녀와 함께 같이 간 교실. 다시 10년 전 처럼 신발장이 어디에 있냐고 물으니 모르는 듯, 그저 신을 벗고 들어가서 잃어버린 우산을 찾은 것이다. 그렇게 악수를 하고 헤어졌고 그렇게 10년이 다시 지나서 제 2차 세계대전 후 해방이 된 대한민국. 에 걱정하여 찾은 일본. 이미 그녀는 일본인 2세와 결혼하였고 그저 짧게나마 절을 한 게 고작이라서 아예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추억의 서랍을 정리하고 있다. 마치 한 편의 소설의 에피소드를 보는 듯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것이 우리 인생에 누구나 한 번 쯔음, 있을 듯한 인연이기에 더 애절한 것이다. 누구나 이러한 인연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말이 있다. 1번 만나는 것은 우연, 2번은 인연, 3번은 운명. 그렇게 피 선생님은 아사코를 3번 만났기에 운명일까? 글쎄, 그 것은 잘 모르겠다. 적어도 한국과 일본이라는 먼 거리에서도 이렇게 기억해주고 찾아와 주니 더 애절한 듯하다. 더군다나 이 수필의 마지막 글귀가 인연이라는 게 뭔지 다시금 생각나게 해주는 문장이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그렇다. 어쩌면 3번째는 만나지 않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그 기대에 따른 실망도 컸기 때문일 것이다. 이 수필이 모든 국민들이 다 아는 가운데, 피 선생님이 살아계시기 전 마지막 KBS에서 한 방송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아사코와 피선생님을 다시 만나게 해주는 것이다. 이는 피천득의 '수필'이 아직 끝나지 않고 그 4번째 만남을 가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저 가슴 속으로 추억으로 남기를 원했다. 어쩌면 이렇게 늙고 초라한 모습보다는 이 젊은 날의 아릿따운 이미지로 남고 싶어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취재진은 일본 특파원을 통해서 '아사꼬'의 젊은 모습의 사진을 찾은 것이다. 아사꼬는 이젠 피 선생님의 인연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인연이기도 한 사람이다.  취재진의 의하면 아사코의 친구가 초등학교 부터 줄곧 대학교 동창인 수녀를 통해서 알게 된 계기였다. 그렇게 방송에서 아사코의 초등학교 5학년 모습, 중학교, 대학교 모습을 비추어 주었다. 특히나 대학교의 모습에서는 선명히 그려졌다. 아마도 피 선생님이 2번 째 만났을 때의 모습이 역력히 채워졌을 법도 했다. 사진 속 아사코의 모습은 다른 이들과 달리 여러명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서구적인 미인이었다. 특히나 높은 콧날을 지녔다. 녹화 전에는 이같은 사실을 몰랐던 피 선생님께선 "도대체 어떻게 찾았느냐"고 놀라워했다. 사실상 수필은 진실성이 묻어나야 하지만, 아침에 아이를 낳았다고 '아사코'라고 한 대목은 익명성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다르게 기재한 것었기 때문이다. 방송을 하던 2002년 당시 83세로 '아사꼬'는 미국에서 잘 살고 있음을 말해줬다고 한다.      

 진행자가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풀고 싶지 않으십니까"     


라고 묻자, 피 선생님께선     


"그럴 생각 없습니다. 살아있다는 소식만으로도 기쁨을 줍니다.  아~살아 있군요"     


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짤막한 답변으로 감정을 자제한 것으로 보인다. 선생님께서는 후에 사진을 받을 수 있겠냐면서 아쉬움을 표의하였다.      


 피천득 선생처럼 어쩌면, 우리 모두 다 이루지 못한 인연을 다시금 떠오르면서 애틋함을 안고 살지는 않는가? 이 날의 피천득 선생은 상호간의 사랑을 하지 못했던 게 너무나 후회스럽다면서 자신의 인생을 아쉬워했다. 한 평생! 제대로 사랑을 해보려고 노력했으나 그렇지 못함에 더 후회스럽다고 했다. 선생님은 왜 자기의 유독 아내만큼은 수필에서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오로지 아사꼬와 어머니 그리고 딸 서영이만 빼곡히 채우고 있다.     

 

"내 일생 두 여성이 있다. 하나는 엄마이고 하나는 서영이다"     


 그렇다면 실례이기는 하나 아내와의 사랑은 완벽하게 이루지 못한 것일까? 가슴 한 켠에 그렇게 애절하도록 '아사꼬'의 정신적 추억이 너무나 크게 자리 잡아서 그러한 것일까? 세월이 지나서 피 선생님이 그리는 그 '아사꼬'의 마음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      


* 피천득의 인연 (지식채널e-EBS)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video&ie=utf8&nso=&sm=mtb_nmr&query=%ED%94%BC%EC%B2%9C%EB%93%9D+EBS


피천득 선생에게 아사꼬란?

1) 소유 현실에서 이루지 못하기에 -> 꿈에서 나마 이루고 싶은 사랑

2) 절제 젊을 날에 추억이 아련하여서 -> 지금으로는 그저 추억으로 남고픈 것

3) 인연 몇 십년의 터울로 세월이 흘러도 -> 서로 간의 인생에 3번 스친 나그네      



 피천득 선생에게는 이상적으로 젊은 날의 아사꼬란 소유를 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어서 단념하는 것에 그쳐야 할 인연이기도 하다. 이토록 사람은 소유하고자 하는 본능이 클 수록 기대를 하는 것. 헌데 그러한 큰 욕망어린 기대에 채우지 서운함이 크게 자리잡는 것. 그에 따른 못한 것에 대해 미련이 많이 남는 것이다.      

 그가 그토록 바라던 사랑. 어린아이같은 맑은 영혼의 순수함을 이해시킬 만한 상대 대상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아사꼬'는 그나마 버지니아 울프의 책을 논할 정도로 문학의 대한 조외가 깊으니 영혼의 짝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영혼의 짝이 한국전쟁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그의 꿈꾸던 행복처럼 '아사꼬'와 단 둘이 뾰족지붕에 뾰족창문에 살았을 것이다. 한국전쟁으로 인해서 아사꼬는 맥아더 장군 곁에서 번역일을 하다가 만난 그의 남편과 혼인하게 되었는데 그 게 참으로 애처롭다. 소유 할 수도 있었는데, 그 놈의 한국전쟁이 두 사이를 갈라놓게 된 계기이다. 남북간의 형제가 아니라 한 인생에 있어서 인연마져 갈라 놓는 전쟁의 아픔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더 애절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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