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중심, 두 명의 천사

"가장 약자인 사랑이가, 가족을 지켜내는 일에서는 가장 강했다."

by 박예인


우리 가족은 천성이 모질지 못하다. 그 연약한 마음은 때때로 치명적인 약점이 되기도 했다.


사랑이가 무얼 망가트려도 우리는 그 애를 미워할 수 없었다. 그 애에게 악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더 솔직하게는 그 애가 악의가 없다는 걸 이해해야 했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우리 가족은 오래도록 가난했다. 가난은 사람의 마음을 병들게 한다. 우리는 각자 마음속에 빛은 없이 어둠만 모아댔다. 맘 속에 빛이 들어야 여유가 찾아와 주위도 둘러볼 텐데, 빛없는 곳엔 여유도 없었다.


천성이 모질지 못한 우리 가족은 마음속 어둠을 다른 사람들에게 쏟아내지 못했다. 그건 넘치는 냄비뚜껑을 억지로 붙들고 있는 것과 다름없어서 내용물이 자꾸만 틈새로 넘치고, 뚜껑손잡이는 날로 뜨거워져 버티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그러면 가장 안전하다고 여기는 곳에서 나도 모르게 뚜껑 잡은 손을 놓치고 마는 것이다. 그 안전한 곳은 당연하게도 집이었다.


우리 가족은 각자 불행한 삶을 속으로 삭이려고 잔뜩 긴장한 채 살다가 집에 오면 저도 모르게 긴장의 끈을 끌렀다. 그럼 내내 부글부글 끓던 속이 어김없이 터져서 우리는 쉽게 분노하고, 원망했다. 그런 와중에 *말꾸러기의 활약이 펼쳐지면 우리는 정말 어쩔 줄을 몰랐다.


말꾸러기가 밤새 활약한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깬 가족들은 어김없이 표정을 구기거나 한숨을 쉬었다. 그제야 사랑이는 행동을 멈추고 가족의 눈치를 살폈다. 가족이 저에게 화가 났다는 걸 알아차렸지만 그게 지난밤 제가 한 일 때문이라는 건 몰랐다. 그 인과관계를 이해할 수 없으니, 그 애의 행동에 악의가 있을 리가 없었다. 어쩌면 사랑이는 영문도 모르고 매일 아침 가족들의 분노를 맞이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랑이도 생존본능을 가진 인간이었다. 그 애는 본능적으로 자기가 가족들에게 보호받아야 한다는 걸 아는 것 같았다. 그 애는 누군가의 분노를 보면 불안해했다. '얼음땡'이라도 하는 것처럼 잠시 행동을 멈추고 눈치를 살피다가 상대가 화가 났다는 걸 알아채면 급히 다가와서 목을 끌어당겨 껴안거나, '아' 벌린 입을 들이밀며 뽀뽀를 하려 들었다. 상대방이 아무리 밀쳐내도 결국 받아줄 때까지 지치지 않고 달려들어 치댔다. 그게 그 아이의 애교이자, 생존방식이다.


아무리 화를 내도 그 이유를 모르는 내 동생.

저에게 화내는 이로부터 애정을 확인받으려고 애쓰는 내 동생.

오직 타인의 애정에 기대어야만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내 동생.


그 취약한 아이가 혼신의 힘을 다해 치대는 모습을 마주하면 심장이 쥐어짜지는 듯 수축했다. 그 저릿한 느낌은 좌절과 안쓰러움이 해일 같이 몰려온다는 경고였다. 곧바로 몰려오는 해일에 분노는 마음 한 구석으로 밀려났다. 그러면 한껏 슬픈 눈을 하고 사랑이를 마주 껴안을 수밖에 없었다.

그 애를 가만히 안으며 수축된 심장이 다시 펴지기를 기다리면서 내가 이 아이를 절대 미워할 수 없다는 걸 새삼 곱씹었다.

그렇게 사랑이는 온 힘을 다해 가족들이 저를 미워하도록 두지 않았다.


한편, 해일은 분노를 한쪽으로 밀어내기만 할 뿐 없애지는 못했다. 또 다른 불행과 겹쳐져 더 커진 분노는 기어코 내 맘을 찢고 나와 다른 가족을 향해 휘둘러졌다. 나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가 그랬다. 모두가 그렇게 상처를 주고받는 가해자이자, 피해자였다.

웃긴 건, 가해자 입장에 섰을 때도 아팠다는 거다. 서로를 향하는 칼은 내 맘을 찢고 튀어나간 것이었다.

우리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난 불행을 남에게 던지지 않기 위해 삼키고, 결국 소화되지 않는 그것 때문에 탈이 나고, 원하지 않았던 순간에 참지 못하고 토해내길 반복했다. 그걸 토해내는 동안에는 내 쓰린 속만 느껴졌지만, 막상 토해내고 나면 그걸 뒤집어쓴 내 가족을 보며 절절 울고, 후회했다. 그러면서도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지 못했다. 그걸 말하는 건 주위를 둘러보는 일과 함께 여유가 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 맘속엔 빛 없이 어둠만 가득했다.


얼마나 지치던지. 고작 10대인데도 얼마나 인생이 지긋지긋했던지.


당시 부모님의 마음까지 내가 속단할 순 없지만, 우리 가족이 점점 건조하게 갈라지는 건 확실해 보였다. 우리는 각자 속에 쌓인 분노가 칼이 되어 나가는 걸 막지 못하고, 울대 아래 묻어둔 다정한 말들을 좀처럼 꺼내지 못했으므로 서로를 가까이 두기 보단 멀어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런 우리를 끝까지 붙들고 연결시킨 건, 다름 아닌 사랑이었다.

모든 불행이 사무칠 때, 말할 수 있는 자들은 서로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지 못했지만 사랑이는 끝까지 달려들어 목을 끌어안았다. 상대가 수용할 때까지 치대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가족들이 서로 찌르거나 찔릴까 봐 겁먹고 물러설 때, 사랑이만큼은 우리가 자신을 미워하거나 데면데면하게 굴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가족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기 겸연쩍을 때, 괜히 사랑이를 바라보았다. 특별히 나눌 말이 없을 때도, 어색함을 피해 사랑이의 이름을 불렀다. 사랑이가 없는 집은 삭막했지만, 사랑이가 있으면 훈기가 돌았다. 가족의 분위기는 건조했지만, 사랑이 덕분에 우리는 유야무야 세월을 흘려보낼 수 있었다.

말을 할 수 있는 건 우리였지만, 정작 끝까지 소통을 해낸 건 사랑이었다.

가족을 이어주는 끈이 메마른 바람에 삭아 끊어질 때, 비장애인 가족들이 그걸 그저 바라보는 동안 장애인 사랑이는 자꾸만 그 끈에 풀칠을 했다.

가장 약자인 사랑이가, 가족을 지켜내는 일에서는 가장 강했다.


시간이 지나며 우리 가족 모두가 조금씩 성장했다. 장애여부나 나이에 상관없이 각자의 속도대로 자랐다. 다 설명할 수 없는 시간들 끝에 경제상황도 나아지고, 가족들은 조금씩 빛과 여유를 찾았다. 그러자 모질지 못한 성정이 제 기능을 발휘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품었던 서운함보다 서로를 향한 미안함을 생각했다. 그간 헤아리지 못한 마음들을 하나둘 되짚어 보았다.

비록 습관이 된 쑥스러움 때문에 그걸 내색하진 못했지만, 사랑이가 몇 번이고 풀칠한 끈으로 연결되어 서로의 마음이 어떨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길었던 내 사춘기도 갈무리되었다.


사랑이는 달라질 필요가 없었다. 그 애는 경제상황이나 다른 조건에 따라 가족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애가 아니었다. 그 애는 여전히 가족에게 달라붙고, 목을 끌어당겨 안고, ‘아’ 하고 벌린 입을 상대방 입술이나 볼에 갖다 대는 것으로 뽀뽀를 한다. 기분이 좋을 때면 온 얼굴 근육을 다 써가며 크게 웃고, 웃을 때마다 온몸에 힘을 잔뜩 주느라 목을 움츠리고, 팔꿈치를 접은 양팔이 날개라도 된 듯 퍼덕거린다. 그 환한 모습은 정말 천사 같다.

아닌 게 아니라 사랑이의 병명은 **엔젤만 증후군이다. 제 이름처럼 병명마저도 저와 어울리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래서 그게 마치 축복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사랑이가 놀라울 뿐이다.


우리 집에는 두 명의 천사가 있었다. ***선한 마음의 천사는 열 살에 우리 곁을 떠났지만, 환한 웃음의 천사는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그 애의 곁에 붙어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걸지도 모르겠다.



* 2화(말꾸러기 내 동생) 참고
** 엔젤만 증후군(Angelman syndrome)
발달 지연, 발화 장애, 까닭 없는 장시간 웃음, 발작·경련 등이 나타나는 희귀 질환이다. 영국의 소아과 의사 해리 엔젤만(Dr. Harry Angelman)이 1965년 처음으로 이 질환을 기술하면서, 그의 이름을 따 ‘엔젤만 증후군’ 또는 ‘행복한 꼭두각시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엔젤만’이라는 이름은 인명에서 비롯되었지만, ‘천사(angel)’와 비슷한 철자와 발음을 가지고 있어, 본문에서 이를 상징적으로 활용하였다.
*** 1화(그 애의 탄생, 9살 엄마의 탄생)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