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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Jul 10. 2021

가스라이팅-심리적 지배

회의가 있는 날이다. 회의는 자주는 아니고 중대한 안건이 있을 때에만 모인다.

30평 남짓한 사무실은 거실과 3개의 개인 사무실이 있다. 내 사무실은 가장 작은 방으로 볕이 잘 들고 깨끗해서 그럭저럭 만족한다. 핑크빛으로 도배가 되어 있는 몇평 안되는 곳에 테이블 두개와 손님용 의자와 값싼 검정색 회전의자가 있다. 한 켠에는 오크색 책장이 있고 몇몇  서적과 잡지가 꽂혀져 있다.


검정색 회전 의자에 앉았다. 썩 편하지는 앉지만 오래 앉아 있어도 부담되지는 않는다.

방 한켠에는 정체모를 선반이 놓여져있다. 순간 머리에 김이 나는 기분이 들었다. 한숨이 푹쉬어졌다.

짜증나 머리가 멍해졌다.

만사가 다 귀찮다. 피곤한 날이다.  선반을 밖으로 던져놓듯이 꺼내놓고 회전의자에 푹 기대 눈을 감았다. 밖에는 인기척이 들렸다. 그냥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


오랜만에 들른 사무실에 앉아 있으니

가슴 아픈 상실로 잠시 지구를 떠났다돌아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긴급함으로 일상으로 복귀를 한 몇몇날이 지나고 있었다.

여전히 내 감각 몇개는 돌아오지 않는 듯 멍하다.

하지만 내 감각을 깨우는 놀라운 사건이 나를 저만치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다 모였고 회의를 시작했다.

중요한 의제를 꺼냈고 돌아가며 의견을 들었다.

내 차례가 되어 먼저 내 의견도 묻지 않고 선반을 들어 놓은 일을 얘기했다.

"지난 번에 말씀 드렸는데 여기는 제 방이고 허락없이는 아무것도 들어놓지 마세요."

"이제는 그렇게 못하겠는데. 나는 이제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고 싶어. 이 사무실도 내가 샀고."

"그럼 회의는 왜 하는 거죠? 회의는 하지만 결국에는 선생님 마음대로 하실 거잖아요. "

"그렇지. 하지만 물어보기는 하잖아."

"지금 말이 안되는 이야기를 하시는 거잖아요? 물어보기는 하지만 결국은 자신의 뜻대로 한다는 거잖아요?"

"그게 뭐가 잘못되었는데? 이해가 안되는데? 모두가 다 잘되라고 하는 거잖아? 그걸 모르겠어?내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아?"

"선생님 자신을 잘 아셔야 할 것 같아요."

"너는 얼마나 아는데?" 이제는 호칭도 너라고 한다. 그냥 어이상실했다.

그 다음 이야기는 더 기가막힌다.


"내가 너 소문 다 들었어. 너 싸가지없다고 여기저기 소문났던데? 내가 나니깐 너 같은 애 봐주고 있는거야?"

"누가 그런 얘기를 해요?"

"다 소문났어."

"누군대요?"

말을 안한다. 얼굴색 하나 안 변한다. 아무 표정이 없다. 미동도 하지 않고 꿈쩍도 하지 않고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지금 거짓말하는 거죠?"

"니가 그렇게 생각하는게 편하면 그렇게 생각해" 순간 온몸이 떨려오고 눈물이 났다.

"뭘 알고 싶어해? 앞으로 싸가지 없는 행동 안하면 되잖아.진짜 예민하네"

내가 싸가지 없었던 일을 생각해내려고 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면 어떡하지?. 언제였을까?'

나도 내 자신이 의심스럽기 시작했다.

불안했고 너무 억울했고 눈물이 계속 났다. 무뎠던 감각들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온 세포들이 들고 일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몇분 후


"하던 얘기 계속 하자"

어이가 없어 순간 동그렇게 눈을 떴다. 갑자기

"니가 쳐다보는 그 눈빛이 싸가지 없는 행동이야." 한숨이 나왔다.

"그게 싸가지 없는 행동이야!" 한숨쉬는 일도 제대로 못하게 한다. 기가막혀 벌떡 일어났다.

"봐봐 사람이 얘기하는데 일어나고 그게 바로 싸가지 없는 행동이야"

"화장지 버리로 가는 거예요."
"너 나 들어왔을때에도 인사도 안하고 가만히 니 방에 앉아 있었잖아. 그게 싸가지 없는 행동이야."

.......

슬프고 속상하고 할말을 잃었다.

나의 모든 행동은 다 싸가지 없는 행동이 되었다. 나의 감정따위는 이미 쓰레기통에 무가치하게 버려져 있었다.

나는 그냥 나쁜 사람이 되었다.


이상한 건 나는 화가 나서 팔짝팔짝 뛰고 있는데 어떤 말을 해도 전혀 미동하지 않는 표정과 자신의 행동을 끊임없이 합리화하는 모습이다. "모두 우리 좋으라고, 모두 잘되라고 하는 거야.내가 얼마나 열심히 하는데"

"나는 싸가지 없는 사람이니깐 선생님이 하는 것은 모두 다 맞는 것 같아요. 나는 그냥 쓰레기네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그냥 이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급하게 나가는 내 뒤통수에

"기분 풀고 저녁먹고 가"


어릴 때 아버지는  "다 니들 잘 되라고 하는 얘기야. 내가 너희들 때문에 얼마나 힘든지 알아?"아버지는 절대 권력자였고 우리 때문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힘들었기 때문에  아무말도 하지 못했으며 그냥 숨죽여 살아야만했다. 아버지는 늘 옳았고 우리는 늘 틀렸다.

심하게 혼낸 날도 함께 밥먹을 것을 강요하셨다. 아버지는 밥을 먹으면 모든 것이 다 괜찮아진다고 하셨다.


저녁밥을 먹으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된다.



다음날

아무렇지않게 카톡이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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