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비 Sep 18. 2020

그녀의 빨강색들.

엄마가 빨강색을 좋아하는 이유


엄마와 함께 시장을 갔다.

미팅 약속이 있었는데 내담자의 일방적인 취소로 땜방 난 시간을 엄마가 메워줬다.

'미리 얘기를 하던가. 시간이 다 되었는데 취소라니.' 혼자 씩씩대며 있었다.

엄마가 아니었다면 혼자 사무실에서 책과 씨름을 할 판이었다.


엄마를 만나기 직전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언니의  전화로 "엄마가 슬픈 것 같아. 나랑 통화하는데 우실 것 같아. 며칠 아프기도 했다고 하네"라는 말에 마음이 덜컹했다. 일단 가보기로 했다.

다행히 일정이 취소되어서 비록 씩씩대긴 했지만 순간 내담자에게 고마웠다.


엄마는 보자마자

"밥은 먹었어? 오늘은 안 바빠? 배고프지 밥 줄까?

도대체 누가 슬프다는 건지. 그리고 누가 누구를 걱정하는지.

"언니가 그러던데 엄마가 슬픈 것 같다고 하던데?"

"슬프긴. 그게 아니라 넘어져서 가슴이 조금 아파. 네가 며칠 전에 와서 천천히 다니라고 했는데 너 말 안 듣다가

급하게 뛰어가다 전기선에 걸려 넘어졌어."

"그랬구나. 지금은 괜찮아?"

"병원 가서 사진도 찍고 약도 먹었고 이제 많이 좋아졌어"

" 난 배 안 고프니깐 엄마 좋아하는 시장에 가자"


엄마와 손을 잡고 시장에 갔다. 엄마의 관심은 오로지 김치이다.

맨 먼저는 고들빼기. 그다음에는 알배추. 알배추는 6개 2만 원. 잔 파는 한 묶음에 3만 원. 고들빼기는 2만 5천 원.

값이 금값이다.

장 보는 일보다 엄마의 우선은 텅 빈 나의 위다. 괜찮다고 하는 나보다 내 위를 더 걱정한다.

우리는 배추 사는 것은 잠시 뒤로 미루고 시장 안에 있는 허름한 분식점에 앉았다.

고기를 좋아하는 엄마는 순대를,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탄수화물을 좋아하는 나는 떡볶이.

순대를 좋아한다는 엄마는 내가 시킨 빨간 떡볶이에 찍어 드신다.

엄마는 유난히 고추장이 들어간 음식을 좋아하신다.

고기 요리는 거의 빨갛게. 좋아하시는 청국장에도 반드시 고추장을 넣어 빨갛게 드신다.


생각해보니 엄마가 빨간색을 좋아하는 건 아닐까?

며칠 전에 어릴 때 찍은 사진을 봤는데 사진 속에 나는 유난히 빨강 옷을 많이 입고 있었다.

큰 집 앞에서 찍은 사진에도. 우리 집 장미 넝쿨 앞에서도, 언니의 졸업식에도 나는 빨강 옷을 입고 있었다.

가족 여행 간 자연농원 꽃밭에서도, 고모네 집 앞에서 사 춘 오빠들과도,  외갓집 앞마당에서 찍은 사진에도

빨강 원피스를 입고 있다. 심지어 모자와 가방에도.

이 정도면 거의 모든 옷에 빨강이 들어갔다는 것이다. 엄마도 빨간 옷을 많이 입었다.


하지만 커서는 빨강 옷을 내 손으로 거의 사본 적이 없다.

엄마의 전부를 닮지 않아  빨간색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빨간 김치는 너무 좋아한다.

나는 떡볶이를, 엄마는 순대를.

닮지 않은 것 같지만 닮은 우리는 모녀지간이다.


엄마는 어쩌면 빨간색처럼 인생을 뜨겁고 열정적이게 살고 싶었고 나도 열정적으로 멋지게 자라기를 바라셨나보다.


그녀의 빨강색들은 힘든 삶을 대변한 단맛과 매운맛의 인생의 맛이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마을신문기자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