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를 마치고 식사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식사하라고 붙잡는 사람이 없어서 그냥 나왔다.
아쉬워 뒤를 몇 번 쳐다봤지만 잘 가라고 인사하는 사람밖에는 보이질 않았다.
한상 가득 차려진 뷔페 음식을 뒤로하고 나왔다.
'그래 어서 가야지' 혹시 배고픈 속내를 들킬까 봐 아무렇지도 않게 씩씩하게 나왔다.
그래서 혼자 밥을 먹기로 했다.
예전 같으면 아무리 배가 고파도 안 고픈 적, 혼자서 식당을 간다는 것은
초짜 연극배우가 무대에 오르는 일보다 더 긴장되는 일이며 시선들의 압박에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시선이 느껴져도 부담이 적어졌고 사람들은 쳐다는 볼 수 있지만 남의 일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또한 이 곳은 아는 사람도 없으니 일단 안심이 되었고 그래서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먹는 시간은 30여분남짓이지만 생각은 주저리주저리 많았다.
예전에 인상 깊었던 비비정이란 농가식당과 어르신들이 하는 새참수레 뷔페 중
어디로 갈까 고민을 하였다.
그러다 비비정의 좋았던 분위기가 생각이 났고
그 옆에 작은 오솔길 계단을 오르면 작은 삼례가 훤히 보이는 언덕 위에 작은 카페가 있다는 것에
발길이 비비정으로 이미 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뿔싸 식당의 메뉴를 미리 숙지하지 않았던 것이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육회비빔밥 외에는 일 인분이 어렵다는 말에 오늘따라 육회비빔밥은 땡기지 않았고 그냥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분위기 좋은 카페라도 들렀다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힘들게 올라갔지만 예전보다 많이 아쉬워 그냥 내려왔다.
나에게는 또 다른 희망이 있기에 실망은 금방 접었다.
다름 아닌 마음대로 골라먹을 수 있고 메뉴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온갖 메뉴가 한꺼번에
차려져 있는 인심 후한 뷔페로 향했다.
<새참수레>는 어르신들이 일하는 고령자 친화기업으로 소개되어 있고 슬로 푸드 식당이라고 했다.
실제로 어르신들이 피자도 구워주시고 김밥도 싸주신다. 단지 얼굴은 잘 안 보이고 다정한 손길만 보이지만.
식재료도 모두 다 국산이며 거의 지역 농산물이라고 하였다.
다른 뷔페는 육류 위주이지만 이곳은 채식이 훨씬 많아 먹기가 부담이 적었다.
드디어 도착해서 문을 열었더니 사람이 너무 많았다.
코로나가 아닌가? 순간 당황했지만 나도 밥 먹으러 왔기에 말할 입장은 안되었다.
자세히 보니 어르신들이 많았다.
마을 부녀회의에서 단체로 식사하러 오셨는지 보글 머리 어르신들이 너도나도 한 줄로 나란히 서서
작은 접시가 넘치도록 누가누가 잘 쌓는지 내기라도 하시듯 열심히 담으시고 계셨다.
그 모습이 귀여우셨다.
창가에 혼자 먹을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셨다. 걸어가는 내 뒤통수에 대고" 조금 있다가 드세요. 어르신들이 다들 나이가 드셔서 천천히 걸으시니 시간이 걸려요."
대답은 했지만 배가 고프기 때문에 마스크를 장작 한 채 일단 어르신들 속으로 직진하였다.
중간에 내가 먹을거리만 챙겨서 나왔고 그중에서 떡 쌈 냉채가 맛있어 보여 야채를 좋아하는 일인으로 한가득 우선 담았다. 노란색 소스와 함께.
그 소스가 겨자라는 것을 자리에 앉은 후 알게 되었고
그렇게 많은 음식 가운데 모양만 예쁜 냉채를 고르다니. 그것도 한가득.
내 코는 이미 뻥뻥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나는 고통에 몸부림을 칠 때에
몇 칸 옆에 혼자 앉아 있는 어르신이 후루룩, 후루룩 흡사 시원한 폭포수 같은 경쾌한 소리를 내시면 드시는 게 아닌가. 그건 바로 잡채였다.
내가 좋아하는 잡채를 왜 못 발견했지? 그 길로 잡채를 찾았고 이미 나를 기다리고 있던 잡채가 따뜻한 그릇에 한가득 담겨 있었다.
나도 어르신처럼 한가득 퍼와서 후루룩후루룩 먹었다.
참기름의 기름 맛이 훅 퍼지고 다양하고 맛 좋은 야채들의 달콤함에 부드럽고 야들야들한 당면의 고소함이 어우러져 맛이 좋았다.
먹으면서 시선을 밖으로 돌렸다. 바깥에 칠이 벗겨진 시멘트 바닥이 전부였다.
그냥 멍 때리고 먹었다. 내 입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내 배는 점점 불러오고 있고 초점 없는 내 시선과 달리 어느새 달콤함과 여유로움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저 행복했다.
둘이나 셋이 아닌 혼자의 자유로움이 어색함을 넘어 오히려 혼자여도 풍부해졌다. 가득 채워졌다.
내 영혼, 나와 나 자신과 함께 즐거운 일을 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내 안에 나에게는 이미 친구가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나 때문에 즐거웠다. 긴장하지 않아도 되고 나 자신에게 일부러 맞추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었다.
그냥 내가 좋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