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여름일기

선물같은 날

by 나비


계절은 날마다 나에게 선물을 준다. 오늘은 더 특별하게 밝고 눈부신 하늘과 뜨거운 태양 아래 익고 있는 청포도와 산딸기가 그렇다. 마당 구석진 곳에서 산딸기가 작은 애벌레와 함께 자라고 있고 온갖 채소가 가득해야 할 빈 밭에는 무화과가 익고 있다. 어느덧 갑자기 찾아와 열매를 주고 가겠지만 조금 더 기다려달라고 한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작년에도 무화과가 열렸지만 미처 발견하지 못해 하나 남은 것을 땄던 기억이 있다. 올해는 유심히 잘 살펴 고운 새와 다정히 나눠서 먹어야겠다. 산딸기는 붉은색에서 검은빛으로 바뀌였으나 여전히 시고 달다. 작은 열매의 소문은 벌써 났는지 애벌레와 개미들이 올라와 있다. 하지만 질 새라 나도 열심히 땄으나 한 움큼 밖에는 없다.

내 입에도 한 입, 옆집 꼬맹이들을 불러 몇 개를 따주고 사춘기 아들에게도 한 입 주려고 했더니 기겁을 한다. 어릴 때는 먹더니 어디서 땄느냐며 경계를 한다. 혹여나 엄마가 못 먹을 것을 주는 것 마냥 호들갑이다. 무공해 천연인데 아쉽지만 내 입에 다 털어 넣었다. 입안에서는 달고 시고 상큼한 기운이 들어와 나를 더 맑게 해준다. 감사한 일이다. 심지도 않고 거둘 수 있는 자연이 좋다. 쳐다보는 봄이에게도 한 입 주었으나 사춘기 아들만큼 까다롭다. 냄새만 킁킁거리다가 쳐다도 안 본다.


그냥 주어진 것들은 참 많다. 하루 종일 넓고 밝은 빛을 비춰 내 시야가 트일 수 있게 해 준다. 밤사이 나는 앞 못 보는 사람처럼 불안의 소경이 되었다가 아침이면 다시 눈을 뜨게 된다. 내 눈으로 빛이 쉴 새 없이 들어와 내가 일을 해야 하는 시간임을 일깨워준다.

공기는 나의 폐 깊숙한 곳까지 채워 세포가 일을 하며 내 생명이 일을 하기 시작한다. 물이 기포가 되어 숨으로 빠져나가 나쁜 기운을 배출하고 좋은 공기를 마셔 늘 새로운 기운을 얻는다. 이 기운이 내 몸을 돌아 나는 늘 새로운 사람이 된다. 글을 쓰고 있는 손가락 끝 말초신경까지 온몸에 쉴 새 없이 창조의 기운이 넘친다. 이제서야 나는 나를 이해하게 된다. 내 몸은 공기라는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면 살 수 없다.


이렇듯 내 몸은 어쩌면 내 것이 아닐 수 있다. 자연에서 주어진 물과 공기로 채워졌으며 자연이 준 식물과 곡물이 없다면 내 생명은 끝이 날 것이다. 40여 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나는 에미도 에비도 없는 천둥벌거숭이였으며 자연의 섭리를 알지 못한 무지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좀 더 성숙해져야 한다. 함부로 살지 말도록 나와 약속하는 것이 나를 지켜준 무수히 그냥 얻어진 것들에 대한 최소한의 경외심일 것이며 갚아야 할 마음이며 바로 나라는 사람을 사람 되게 만드는 바로 그건 은혜라는 것이다.


나는 자연 그대로이다. 내 몸은 자연의 어머니가 키워준다. 한 송이 꽃도 함부로 꺽지 말아야 하듯이 자연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을 함부로 대할 권리가 없다. 나는 자연에서 가장 소중한 꽃이므로 나를 소중히 잘 가꾸고 지켜야 한다. 조금만 더 힘을 내어 기다려보자. 어쩌면 조그만 방구석에도 쨍하고 해가 뜰 날이 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미 문 하나만 열면 기적은 시작되었으니. 어둠의 밤이 지나면 반드시 아침이 오니 슬픔의 밤을 잘 지켜내면 햇살 눈부신 아침이 창문만 열면 쨍하고 해 뜰 날이다.


오늘 하루도 참 감사한 하루였다. 내 몸의 기적이 계속되었고 들숨과 날숨을 알아서 해 주는 내가 고맙고 오늘은 더 사랑스럽다. 텅 빈 잔고에 쓸쓸했던 마음이 기쁨으로 내 영혼 가득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