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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Dec 27. 2020

풍부한 바디감, 감바스와 스페인 알리오 올리오

가족이니깐.

휴일 아침,

눈을 뜨니 10시가 한참을 넘었다.

눈을 비비고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는 찰나에 사춘기 아들과 대화를 하였다.

"아들, 아침 먹자"

"이제 일어나서, 지금이 아침이야?"

컴퓨터에 눈을 떼지 않은 채 나를 나무라고 있다.

어제 아주 늦게 잤다는 핑계를 대보았지만 약간은 창피했다.

그래서 다시 다정한 목소리로

"그럼 점심 먹을까?"

"아니, 안 먹어, 맛없어. 엄마 반찬 다 맛없어"

순간 무슨 말을 할지 몰라 주방으로 일단 한 발 후퇴하여 놀란 가슴을 달래 보았다.

'지도 공부 잘하지도 않으면서. 나도 요리 못할 수도 있잖아'


그렇게 말했지만 그래도 마음에 걸려 곰곰이 생각한 끝에 조금 어려운 잡채를 선택하였다.

'이제는 요리 못한다고 하지 않겠지' 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어보았다.

하지만 오늘따라 당면이 너무 삶아졌고, 이때부터 배가 산으로 가기 시작하였다.

퉁퉁 불은 당면에 야채들은 겉돌았고 호로록 거리며 먹어야 할 잡채는 한 덩어리씩 입안 가득 씹어져 인상을 찌그리고 먹을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냥 밥상에 올렸고 아들은 아침에 한 얘기가 미안했는지 아무 말하지 않고 먹었다.


점심의 실수를 만회하겠다는 생각으로 저녁 메뉴는 세상에서 가장 쉬우면서, 가장 그럴싸한 감바스를 만들기로 하였다. 회색빛 도는 냉동새우를 까서 한쪽에 물을 빼고, 다음으로는 프라이팬에 올리브 오일은 잔뜩 붇고, 그 안에 마늘 듬뿍, 마른 고추도 듬뿍, 마늘과 고추 향이 우러나도록 중간 불에서 얼마간 끓인 후 새우를 넣고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였다. 새우가 앞 뒤로 분홍빛의 아우라를 풍길쯤, 부엌 찬장에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는지 모르는 트러플 오일도 몇 방울 떨어뜨렸다. 순식간에 올리브 오일 향 가득한 감바스가 완성되었다. 냉동실에 남아 있는 식빵 몇 조각을 구워서 예쁘게 플레이팅도 하였다.


올리브 오일에 푹 싸여 있는 분홍빛 새우와 적당히 구워진 마늘, 붉은 고추의 알싸한 맛이 일품이다. 사춘기 아들이 한달음에 달려와 맛있다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일순간 '엄마 요리 못하지 않지? 너도 공부나 하면서 엄마에게 얘기해'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 말은 말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새우 한 입과 꿀꺽 삼켜버렸다.


새우를 다 먹고 남은 국물에 파스타면을 삶아서 넣으면 알리오 올리오가 된다. 물을 팔팔 끓여 파스타 면을 삶았다. 하지만 너무 잘해서 이상하다 싶었다. 파스타면은 점심때 당면의 실패를 겪지 않으려 신경 썼더니 잘 삶아졌다.

문제는 너무 많은 양을 삶았다는 것,  얼마 남지 않은 국물에 부으니 이 맛도 저 맛도 아니었다. 맛을 만회하려 올리브 오일 과다 투여와 아무리 먹어도 맛이 없어 소금 과잉투여, 계속 간을 보며 저으니 나중에는 면이 튀겨질 지경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 그만 불에서 내려 젓가락 들고 있는 사춘기 아들에게 먼저 주었다. 거의 먹지 않았고 입술에는 올리브 오일이 잔뜩 묻히고 딱  한마디 외치고 방으로 들어갔다. "뭔 맛이야. 아무 맛이 없잖아"


다행이다. 공부 잘하라는 말을 하지 않아서.

나는 요리를 못하고 아들은 공부를 못하고, 그냥 서로 봐주기로 했다. 그게 가족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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