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다시, 가파도

가파도에는_해녀가_산다_112화

by 배경진

1

일산에 잘 다녀왔습니다. 일주일 남짓한 시간은 참 새롭더군요. 시침과 분침은 정박으로 흐르건만 그 여백은 전혀 달랐습니다. 또 친밀했던 공간이 그렇게 신박하게 느껴진 것도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2

출발 전 제주공항에 섰을 때는 뭍의 사람들이 궁금해 설레더군요. 다시 돌아와 제주공항에 섰을 때는 섬사람들이 궁금해 똑같이 설레더군요. 가파도는 이제 집이자 일터이고, 일산은 휴식처가 된 듯합니다.


3

섬에는 나무가 드리우는 녹음이 전무합니다. 그 동안 녹색의 녹음이, 나무… 나무가 정말 그리웠습니다. 섬을 떠나면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일산호수공원을 만끽하는 일이었지요. 그래 짬이 나는 대로 음미하듯 걸었습니다. 녹색의 향연은 여전하고, 그새 두세 뼘은 자란 듯한 나뭇가지를 올려다보는 일이 이리 즐거울 줄이야. 느티나무·자작나무·은행나무·단풍나무는 갈색으로 물들어가고, 잣나무·밤나무·모과나무·호두나무 열매는 알알이 여물어가고 있었습니다. 산책을 즐기는 이들은 저마다 평화롭고, 만족스러워 보였습니다. 그들의 눈에 나도 그리 비쳤겠지요. 홀로 혹은 친구와 노닐듯 걸으며 재회한 녹음은 떠나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만족감일 겁니다.


4

호수공원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봉산 편백나무숲에 다녀왔습니다. 6호선 새절역에서 가깝더군요. 편백나무가 만드는 녹음의 그림자가 아직은 따가운 햇살을 가려주니 선글라스와 양산을 접고 심호흡을 하며 데크길을 올랐습니다. 편백나무숲은 금방 끝났으나 힘이 남아돌아 봉산정을 지나 수국사까지 내처 걸었지요. 아, 그래요. 3시간쯤 걷고 나서 알았습니다. 섬에서 지내다 보니 계단이나 경사로를 오를 일이 없어 종아리에 근육이 빠지고, 호흡이 거칠어졌다는 사실을. 두어 달 뒤 일산으로 돌아가면 부지런히 힘을 길러야겠습니다. 반나절 만에 끝난 편백나무숲 여정은 집 근처 사우나로 마무리하며 만족스런 하루를 선물했습니다.

5

내가 비운 동안 섬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바다는 순둥이가 되어 있더군요. 그러나 그 속의 생명들은 한 계절 내내 튼실해져 팔딱팔딱 힘자랑 좀 하는 모양입니다. ‘블루’에 낚시고수들이 꽉 찼거든요. 어스름 노을이 질 때, 혹은 밤이 깊어질 때를 기다린 고수들은 낚싯대에 뜰채를 매달고 풍작을 기대하며 올레를 나섭니다. 이달 말부터는 해녀 삼촌들에게 바다가 열립니다. 뿔소라 허채기가 시작되는 거지요. 삼촌들은 소라가 바닷속 해초를 자양분 삼아 돌코롬하게 살이 찌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젠 익숙해진 풍경들입니다. 맞아요, 다시 가파도로 돌아온 겁니다.

111-일산호수공원.jpg 일산호수공원. 서서히 가을빛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가파도에서 일산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