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에는_해녀가_산다_113화
떠나는 사람, 머무는 사람
명절 전의 상동포구는 떠나는 사람과 방문객으로 분주했다. 첫 배가 도착했다. 내리는 사람이 먼저다. 두월 삼촌 딸은 배에서 내리자마자 엄마를 눈으로 찾는다. 찾았다. 손을 덥석 잡으며 “엄마, 나 안 보고 싶었어?” 어리광 섞어 묻는다. 삼촌은 대답 대신 환하게 웃는다. 뒤따라온 사위는 선물상자를 들고 인사순서를 기다리고 섰다. 그 뒤로 연휴 특수를 기대하는 음식점과 카페의 주인들이 내린다. 마지막으로 방문객들이 끝도 없이 땅을 밟는다. 다음은 나가는 사람들 차례다. 모슬포나 제주시에 자녀들이 사는 삼촌들이 우루루 배에 오른다. 차례를 지내러 자녀들이 오지 않고, 부모가 찾아가는 세태다. 남은 주민이 몇 안 되는 섬은 연휴 내내 ‘블루레이호’가 실어 나르는 방문객으로 북적일 것이다.
우리끼리 다정합시다
‘원조짜장’엔 벌써 빈자리가 없다. ‘가파도해녀촌’을 지나다 테이블 위에 주문음식을 놓는 수자 씨와 눈이 마주쳤다. 마음이 급한 그녀는 말끝이 짧다.
“집에 안 감멘?”
덩달아 나도 짧아졌다.
“야. 연휴 동안 문 열 거?”
“그려.”
“밥 먹으러 오쿠다.”
“그리합서.”
나는 얼른 걸음을 옮겨주면서 언제 점심을 먹으러 들를 건지 헤아린다.
토박이 안유 삼촌은 제주시 사는 아들딸에게 안 가고 부부만 둘이서 명절을 보낸다. “이제 나이도 들고, 젊은이는 노인네들 가는 거 안 좋아허여, 고롬.”
후손이 없는 성봉 삼촌 부부는 찾는 이도, 갈 곳도 없어 두 그루 나무처럼 서로 기대며 조촐한 상을 마주할 것이다.
떠나는 이를 눈 끝으로 쫓으며 터미널 벤치에 앉아 쉬는 명철 삼촌의 곁에 앉으며 물었다.
“삼촌, 옛날에 추석은 어떻게 보냈어요?”
“엄마가 지어준 새 옷 입고 다니면서 자랑했주. 우리 엄마는 손끝이 아주 야물었저게. 커서는 농악 줄에 들어가 몇 날 며칠 신명나게 놀았주. 섬이 떠나갈 듯 들썩거렸다마씸. 이젠 하도 오래돼야 기억이 가물가물….”
말끝을 흐리며 쓴웃음을 짓는 그에게 가만히 속삭였다.
‘삼촌, 적적하더라도 남은 우리끼리 잘 지내보아요.’
보름달처럼 둥근 마음
베스트프렌드 순신 삼촌은 섬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첫째, 셋째아들에게 차례 상을 맡긴 지 오래다. “이제 난 뒤로 물러나도 되는 나이라이.” 올 추석엔 캐나다로 이민 간 둘째아들의 딸, 호선이가 가파도에 왔다. 서울 기숙사에서 지내는 교환학생이다. 주말마다 영상통화를 하는 둘은 각별한 사이다.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 절로 발길이 베프 집으로 향한다. 할머니를 닮아 키가 크다. 깊은 쌍꺼풀에 선하게 웃는 얼굴이 곱다. 어여쁜 손녀를 기다리느라 가슴이 콩닥거려 몇 날 밤을 설쳤다고 우리 둘을 번갈아보며 고백한다. “삼촌, 가슴에 이상 있는지 병원 한 번 가 봐요.” 내가 던지는 농담이 좋고, 손녀가 손을 꼭 잡고 있는 것도 좋은지 웃음 머금은 눈가에 비적비적 가는 눈물이 번진다. 오늘이 가장 행복한 날이다. 보름달처럼 둥근 마음이다. 그렇지만 떠날 때는 가슴이 무너질 거면서…. 전해지는 행복은 함께 나누고 싶지만 다가올 이별의 애틋함이 연상된 나는 고개를 돌렸다. 이제 할머니는 그토록 진한 감정을 견딜 만큼 강하지 않단다, 손녀야.
송편을 먹고 싶어
타지에서 명절을 맞는 것이 얼마만일까. 낚시고수들이 떠난 ‘블루’는 조용하고, 걸거치는 게 없어 할랑하지만 조금은 쓸쓸한 것 같기도 하다. 문득 명절이 실하게 담긴 한 상을 받고 싶어졌다. 윤기 자르르한 햅쌀밥에, 성게 향이 코끝에 맺히는 미역국에, 봄비 함초롬히 맞아 키를 키운 고사리무침에, 땅기운으로 땡땡해진 뿌리채소볶음에, 해녀 삼촌들이 물숨 참고 건져 올린 뿔소라+문어+전복꼬치구이에, 토속음료수 쉰다리까지. 마지막으로 솔잎 깔고 갓 쪄낸 또똣한 오색 송편이 먹고 싶어지네. 눈을 감고 섬의 여인들이 정성껏 차려 냈을 음식 내음을, 올레를 가득 채웠을 농악 소리를 떠올려보는 막막한 명절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