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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해녀이다

by 배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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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해녀축제에서 가장 돋보인 하도해녀합창단. 구좌읍 하도어촌계 소속 해녀들이 모인 이 합창단은 작곡가 방승철이 지휘를 한다. 해녀가 좋아 무작정 제주에 둥지를 튼 그는 삼촌들과 나눈 이야기를 메모해 두었다가 노래를 만든다. <나는 해녀이다>를 시작으로 수많은 곡을 작곡해 합창단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해녀들은 낮에는 물질을, 밤에는 시간을 쪼개 연습을 한다. 한 번쯤 빠지고 싶다가도 노래를 시작하면 마음이 풀리고 몸이 풀린다. 집에 오면 쓰러져 자고, 새벽에 잠이 깨면 녹음을 틀어 연습한다. 제주해녀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올라간 후 국내외에서 와달라는 곳이 많아 스케줄이 빡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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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곡 <나는 해녀이다>는 들을 때마다 좋다. 현장에서 한 번 듣는 게 원이었는데, 마침내 눈앞에 삼촌들이 서 있었다. 50대부터 70대 해녀까지. 까만 반바지와 흰 적삼의 개량 물소중이를 입은 삼촌 스무 명이 뭉툭한 손을 맞잡고 첫 소절을 열었다. ‘물결이 일렁이네 추억이 일렁이네’. 물질로 단련된 긴 호흡, 굵지만 낭랑한 목소리, 또박또박 읊어 나가는 음절. 선율은 단순하지만 가사엔 해녀들의 삶이 오롯이 녹아 있었다. 현장에서 듣는 노랫소리는 훨씬 입체적이고 성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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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결이 일렁이네 추억이 일렁이네/소녀가 춤을 추네 꽃다운 나이였지/어느 날 저 바다는 엄마가 되었다네/내 눈물도 내 웃음도 모두 다 품어줬지/나는 바다다 나는 엄마다 나는 소녀다 나는 해녀이다

가사를 찬찬히 음미했다. 그러다가 울컥. 이게 뭐지. 고개를 갸웃갸웃. 단전에서 시작해 가슴을 치고 올라와 마지막엔 두 눈에 이슬이 맺히도록 만드는 곰삭은 목소리. 해녀 삼촌들도 나도 머리에 서리가 얹히는 나이다. 그래, 묵은 세월 속 ‘니 사정 내가 알지러’의 동병상련 같은 거라고 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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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아니면 못 산다. 아파도 물에 갔다 오민 낫는다”며 물때가 되면 나는 듯이 바당으로 뛰어가는 해녀들, 대여섯 시간의 물질로 얼얼해진 종아리 근육을 매만지던 해녀들이 펼치는 인생의 하모니가 축제 마당에 울려 퍼졌다. 예전엔 하대를 받던 직업이었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 당당하다. 정말 잘 참고 버텼다. ‘나는 바다다, 나는 엄마다, 나는 소녀다, 나는 해녀이다’란 마지막 소절은 크게, 아주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날의 여운이 지금도 귓가에 남아 있다.


*아래 동영상에 등장하는 배우 송지효는 다큐멘터리 <송지효의 해녀 모험>을 찍고 난 후 삼촌들과 가까워졌다. 이번 축제에도 참가했다.

111-나는해녀이다.jpg 하도해녀합창단의 등장. 삼촌들의 노래는 인기 최고였다.


<나는 해녀이다> 가사를 음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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