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_주민이_되다

by 배경진

1.

주민등록을 옮기러 간다. 마음을 풍성하게 부풀려주는 화창한 아침 날씨다. 햇살이, 바람이, 공기마저 알맞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건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가 있어. 절로 노래가 흥얼거려진다. 하동항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힘이 실린다. 노인회장이 트럭을 세우고 얼른 타란다. 아, 걸어서 가고 싶은데. 아무튼 올라탔다. 매표소에서 청보리펜션의 수열 삼촌과 첫 인사를 나누었다. 단축한 시간만큼 새 인연을 준비하고 계셨네, 그분께서. 이브 선물인가. 삼촌은 바로 우리 윗집에 산단다. 자주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어요, 우리. 첫 배를 타고 가 모슬포 대정읍사무소에서 주민등록증에 새 주소를 새기는 걸로 이전을 마쳤다.

2.

2024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가파도 주민이 되었다. 뜻 깊은 날에 중요한 서류 하나를 정리했으니 예서 지내는 동안 신의 보살핌이 함께하리라 믿는다.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로 53. 새 주소다. 제주도민, 가파도 주민, 경로우대자이니 항공, 배, 버스, 택시 등 여러 운송수단에서 할인 혹은 무료 혜택을 입을 것이다. 주민이면 받는 단체문자도 보게 될 것이다. 이제 섬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가파도여, 나를 환대해 다오!


3.

읍사무소를 나와 농협에서 현금을 찾았다. 읍이나 섬에선 현금이 왕이다. 홍마트에서 주인장이 부탁한 생필품을 샀다. 나와 회장님, 수열 삼촌과는 동선이 비슷해 자주 마주치다 급기야는 귀가하는 배에서도 만났다. 우린 멋쩍어서 가만 웃었다. 주민들은 배의 맨 앞자리를 선호한다. 이제 나도 그 대열에 합류했으니 수열 삼촌과 같이 맨 앞에 앉아 아침에 못 다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블루레이호를 타는 15분이 너무 짧아 아쉽다.


4.

주소를 옮긴 기념으로 나에게 주는 점심 선물. 밥은 매일 먹는 거고. 홍마트 옆에 롯데리아가 보였다. 손님이 나 하나다. 한우불고기버거에 펩시콜라를 주문하고 싶은데…. 여직원은 또 왜 이리 친절한고. 키오스크에서 내 행동이 굼뜨자 몸소 해결해준다. 패스트푸드를 자주 안 먹는 티가 난다. 아, 얼마 만에 먹어보는 도시스러운 음식인가. 오감을 활짝 열어 맞았다. 버거부터 한 입 베어 무니 목이 탁 멘다. 콜라를 집어 들었다. 콜라의 탄산가스가 코를 탁 쏜다. 입안에 잔뜩 고였던 침과 함께 버거도 콜라도 꿀꺽꿀꺽 넘어간다. 이런, 체할라. ‘슬로우, 슬로우.’ 도시에선 일상처럼 가볍게 하는 모든 일들이 여기선 참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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