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에서_건네는_위로

by 배경진

여긴 참 ‘큰 뭍’과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비행기 타고 버스 타고 배를 타야 닿습니다. 얼마나 수도 서울과, 내가 살던 일산과 멀리 떨어져 있는지, 한참 생각해내야 할 정도로 외로운 섬입니다. 이곳에서 알콩달콩 해녀 삼촌들과 마음 열고 정 붙이고 살려고 왔습니다. 정말 큰 맘 먹고 온 겁니다.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해가 바뀌기 전 그 일이 터지기 전까지는 말이지요.

얼마나 어마어마한 일인지, 이젠 실시간으로 다 전해지는 세상이니 여기만 모른다고 할 순 없습니다. 그런데 뉴스보다 더 빠른 게 있습니다. 엄동설한에도 여기는 관광객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로 요 며칠 손님이 뚝! 끊겨 버렸습니다. 그처럼 도시의 환란이 바로 바로 전해집니다. 실시간 중계와 같습니다.

저는 요새 무얼 해도 힘이 나지 않고, 무엇을 바라보아도 시큰둥할라 합니다. 엄청난 두 사건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겠습니다. 이러면 안 되잖아요. 이제 겨우 한 달인데. 삼촌들에게 귤 하나라도 들고 가서 방바닥은 따뜻한지, 아무도 없는 집안이 썰렁하진 않은지 안부를 전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어요. 벼르고 별러서 왔는데, 이불 속에서만 뒹굴고 있으면 안 되잖아요. 여러분에게도 새해의 경쾌한 인사는 경박해 보일까봐 전하지 못합니다.

제발 제가 여기서 올 한 해 동안 무탈하게 지내고 갈 수 있도록 나랏일 하시는 분들 정신 좀 차려주세요. 그리고 참 미미하지만 제 온 힘을 끌어 모아 어려운 상황에 놓인 분들에게 위로를 전하니, 제 마음을 받아주세요.

2025년 새날 가파도에서 드립니다.

푸른 사월, 청보리가 바람에 일렁일 때쯤엔 모든 것이 제자리였으면 좋겠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가파도_주민이_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