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해녀에게 관심이 생긴 뒤로 인사동 제주갤러리에 자주 들렀다. 2024년 2월, 공필화가 최미선을 갤러리에서 처음 만났다. 중국에서 20여 년 활동을 하던 그녀는 귀국해 제주에 집을 지음으로써 버킷리스트 하나를 완성했다. 정착한 지 십여 년. 최미선은 꽃 그리길 즐기던 화가였다. 꽃과 제주를 한 화면에 담을 순 없을까. 고심 끝에 꽃그림을 주요 테마로 삼고, 거기에다 제주의 풍경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벚꽃과 한라산, 억새와 오름, 수국과 박수기정, 유채와 제주 마, 추자나무와 하귀 옛집, 동백과 수산리, 해국과 구엄 바닷가 등. 꽃바람이 흩날리는 캔버스 위로 한라산이 우뚝 선 그림을 보는 순간, 걸음을 멈추었다. 신선했고, 자신만의 화법을 개척하고자 했던 화가의 길고 긴 시간이 느껴졌다. 그림의 명암은 부드럽고, 인사동의 소란이 차단된 전시실은 고요했다. 분주하던 내 마음에 위로가 찾아왔다. 제주를 만나 더 풍성해진 그녀의 그림이 맘에 착 안겼다.
2.
화가는 단아했다. 60대 중반,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인내와 집중이 몸에 배어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림을 설명하는데, 조곤조곤한 말씨가 붙임성이 있었다. 자신의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의견도 간간이 물었다. 이 그림은 어때요? 어떤 기분이 들어요? 말끝에 내가 제주를 즐겨 찾고, 특히 제주해녀에 관심이 많다고 하자 딸이 해녀라는 것이 아닌가. 너무 반갑고 놀라 나도 모르게 화가의 손을 부여잡고 말았다. 정말요?
3.
간간이 소식을 주고받다 가파도에 짐을 풀고 나서 방문날짜를 잡았다. 엄마와 딸을 같이 만날 수 있는 날로 정했다. 정말 궁금했다. 화가의 딸은 어떻게 해녀가 되었을까. 가수 효리가 살던 애월읍 소길리는 중산간 마을인데, 모녀 가족이 사는 애월읍 구엄리는 작은 포구에 면한 동네였다. 바닷가에 집과 작업실이 마주보고 있었다. 마침내 딸을 만났다. 어머니는 동글동글하고 부드러운 인상인 데 반해 딸은 키가 크고,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했다. 해녀로 사는 게 좋으냐고 묻자 서슴없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공필화: 동양의 전통화법으로, 공을 들여 대상물을 세밀하고 정교하게 그리는 회화기법을 말한다.
공필화가 최미선, <한라산Ⅱ>.
공필화가 최미선, <오름>.